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1·2기(2013~2023년) 중국공산당 서열 2위였던 리커창(李克强) 전 국무원(정부) 총리가 27일 갑작스러운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세. 중국중앙(CC)TV는 이날 “상하이에서 휴식을 취하던 리커창 동지에게 26일 갑자기 심장병이 발병했다”면서 “즉시 구조대원들이 전력을 다해 구호작업을 펼쳤지만 실패해 27일 오전 0시 10분 사망했다”고 전했다.
● 시 주석 ‘마지막 경쟁자’
리 전 총리는 시 주석의 마지막 경쟁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리 전 총리 이후 중국 핵심 권부에 속한 누구도 시 주석에 대해 쓴 소리를 한 적이 없다. 리 전 총리는 2012년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잇는 최고지도자 자리를 두고 시 주석과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결국 밀렸다.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정치·외교·국방을 맡고 총리가 경제를 총괄하는 권력 분점 시스템은 시 주석에게 권력이 집중되며 무색해졌다. 그 10년간 리 전 총리는 자유시장 경제를 강조했지만 시 주석은 공산당이 전면에 서는 사회주의 통제경제를 주장하며 갈등이 축적됐다.
자신의 권력이 차츰 소멸돼 갔지만 리 전 총리는 소신 행보를 이어갔다. ‘중국 빈곤층 6억 명’ 발언과 ‘노점 경제 활성화’ 주장이 대표적이다.
리 전 총리는 2020년 5월 기자회견에서 중국 빈곤 문제를 지적하며 “중국인 6억 명 월수입은 1000위안(약 17만 원)에 불과하다”고 말해 중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시 주석은 “2015년 5600만 명에 달한 절대빈곤 인구를 2019년에 550만 명까지 줄였다”면서 “2020년까지 0명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할 때였다. 리 전 총리가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었다.
리 전 총리는 그해 6월에는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노점상을 전면 허용하는 ‘노점 경제’를 주장했지만 철저히 외면당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 활동이 거의 중단되고 방역이 최우선시 되면서 그의 권한과 역할도 사라졌다. 한때 ‘미래의 태양’이라 불리며 ‘제5세대 지도부는 시진핑-리커창의 쌍두마차 시대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던 그는 ‘유령 총리’로 전락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그는 중국 역대 최약체 총리”라면서 “하지만 그의 문제는 무능력(incompetence)이 아니라 무기력(impotence)에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유령 총리’로 전락
리 전 총리는 1955년 7월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 출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수재였다. 1968년 들어간 허페이 바중(八中)은 4년제 대학 진학률이 80% 이상인 명문이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1977년 대입 시험이 부활하자 경쟁률 29 대 1을 뚫고 베이징(北京)대 법학과에 합격해 가장 성적이 좋은 1반에 들어갔다. 공부뿐 아니라 학생회 활동동 열심히 해 동기이자 미국으로 망명한 반체제 인사 왕쥔타오(王軍濤) 등과도 친했다. 하지만 “정치적 야심을 위해 베이징대 민주화운동을 붕괴시켰다”는 평가도 받았다.
리 전 총리는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다. 1985년 쓴 ‘중국 경제의 3원 구조를 논한다’는 중국 경제학계 최고상인 ‘쑨예팡(孫冶方) 경제과학상 논문상’을 받았다. 부인 청훙(程虹) 여사는 미국 자연주의 문학을 전공한 영문학자로 두 사람은 평소 영어로 대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주의적 사고를 갖게 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일부 한국의 중국 전문가들은 극강(克强)이라는 이름에 빗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다’(以柔克强·이유극강)’고 평가했다.
지난해 10월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후 전 주석의 석연찮은 퇴장과 ‘리틀 후’ 리 전 총리의 죽음으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리 전 총리가 퇴임 5개월여 만에 간쑤성 둔황 모가오(莫高·막고)굴을 찾았을 때 중국 관광객들이 환호했던 것은 현재 어려운 경제 상황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이를 반영하듯 27일 중국 소셜미디어(SNS) 웨이보(微博)에는 “침통한 마음으로 애도한다” “인민은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 “왜 위대한 사람이 일찍 가는가” 같은 추모 글이 50만 건 넘게 올랐다.
그는 올 3월 퇴임하면서 국무원 직원 800여 명에게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天在看)”고 했다. 무소불위 시 주석 권력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정부는 27일 “한국의 가까운 친구로서 한중 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그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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