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집권-경제 침체에 민심 이반
추모열기 빌미 ‘제2 톈안먼’ 경계
일부 대학에 ‘발언-행사 말라’ 지시
李부고, 하루새 검색상위서 사라져… 런민일보 등 관영매체 축소 보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마지막 경쟁자’로 꼽히는 리커창(李克强) 전 총리가 27일 갑자기 타계한 가운데 당국이 추모 열기 확산을 잔뜩 경계하고 있다. 장기 집권과 경제 침체로 시 주석에 대한 반발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리 전 총리의 사망이 자칫 반(反)시진핑 정서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운동 역시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추도식이 계기가 됐다는 점도 당국이 경계하는 부분이다. 당시 개혁 의지가 강했던 후 전 서기에 대한 추모 열기가 반정부 시위로 번졌고, 무력 진압과 유혈 사태가 빚어지자 큰 후폭풍이 일었다. 비슷한 일을 우려하는 당국이 일종의 ‘언론 통제’에 나서는 모습도 관측된다.
리 전 총리의 사망 이유를 둘러싼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2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그가 과거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은 적이 있으며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수영하던 중 심장마비가 발생해 숨졌다고 보도했다. 후 전 총서기의 사인 역시 심장마비였다.
● 젊은층 추모 단속 나선 中
28일 SCMP는 중국 당국이 일부 대학에 리 전 총리에 대한 개인적인 조문 활동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베이징 한 대학의 관계자는 SCMP에 “학생들이 자체적인 애도 행사를 조직하는 것을 학교가 원치 않는다. 30여 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소란이 있었다”고 했다. ‘불필요한 소란’은 톈안먼 시위를 뜻한다. 당국은 34년이 흐른 지금도 톈안먼 시위를 ‘1989년 춘하계 정치풍파’라고 지칭한다. 중국 명문대인 상하이자오퉁대의 한 강사 역시 “학교로부터 리 전 총리의 사망과 관련한 부적절한 발언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들었다”고 공개했다. 하이난대는 리 전 총리의 정치적 기반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으로부터 ‘학생들이 소셜미디어 등에 추모글을 올리지 않도록 지도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당국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젊은층의 민심 이반이 상당한 탓이다. 중국의 올 6월 청년실업률은 21.3%로 통계 작성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당국은 이후 아예 청년실업률을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층이 ‘분배’를 중시하는 시 주석보다 ‘성장’을 외쳤던 리 전 총리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것이다.
젊은층이 지난해 말 ‘백지 시위’를 주도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엄격한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에 반발한 이들은 ‘시진핑 퇴진’ 구호를 외치며 백지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 ‘댓글 차단’ 온라인 통제
리 전 총리가 유년기를 보냈던 안후이성 자택에는 그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고인이 살았던 집 앞에는 추모객 행렬이 이어지고 국화가 수북이 쌓여 발 디딜 틈이 없고, 일부 시민이 눈물을 흘리는 영상들도 소셜미디어에 등장했다.
그러나 현재 웨이보, 바이두 등 중국의 주요 포털과 소셜미디어에서는 리 전 총리 사망 관련 소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사망 다음 날인 28일 실시간 상위 검색어에는 대부분 사망 관련 소식이 올라왔으나 29일 이후 이런 모습이 싹 사라졌다. 이에 추모 열기가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 중국 당국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관영매체 또한 리 전 총리의 죽음을 축소 보도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 관영 신화통신 등은 부고만 간단히 처리했다. 이후에도 그의 업적을 조명하는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환추시보 등의 웨이보 계정은 아예 그의 사망 소식에 대해 다른 사람이 쓴 댓글을 볼 수 없도록 조치했다.
리 전 총리의 시신은 장례식을 위해 베이징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장례식 일정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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