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둘째 주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소탕전을 시작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서 해안 지역에 구축한 교두보에서 감행한 이번 소탕전은 기존 시가전과 아주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전에 벌어진 최근 시가전 사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바흐무트·세베로도네츠크·마리우폴에서 벌어진 시가전 양상을 보면 공격 전 엄청난 양의 포격과 폭격을 퍼부은 뒤 지상군을 밀어 넣는 방식이었다.
반면 이번 가자지구 시가전에서 이스라엘군이 가장 먼저 퍼부은 것은 포탄이 아니라 전단이다. 최근 이스라엘군 수송기는 가자지구 상공을 돌며 “곧 공격이 시작되니 민간인은 안전지대로 대피하라”는 전단을 매일 살포하고 있다. 이스라엘 측은 공격 대상 지역의 휴대전화 기지국에 잡힌 번호로 대피 안내 전화를 걸거나,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문자메시지(SMS), 심지어 음성사서함 메시지로 대피를 안내한다고 한다. 그리고 최소 30분이 지난 뒤부터 폭격을 시작하는 것이다.
전단부터 뿌리는 이스라엘군
시가전은 공격하는 측이 방어하는 측보다 더 많은 핸디캡을 안고 하는 싸움이지만, 이번 가자지구 전투는 조금 다르다. 이스라엘군은 압도적인 감시·정찰 자산과 화력을 가진 데다, 지난 수십여 년간 하마스, 헤즈볼라와 크고 작은 시가전을 겪으며 교리·전술을 가다듬었다. 이 덕분에 이스라엘군은 미리 공격을 알리고 민간인이 대피하는 것까지 신경 쓰면서 작전을 펼치고 있음에도, 큰 피해 없이 하루 1㎞ 이상 꾸준히 소탕 지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이렇게까지 배려하는 것은 그들이 착한 사람이어서만은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전 첫날 하마스가 어떤 짓을 했는지 분명히 봤다. 하마스는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게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죽이고 욕보였다. 이것을 본 많은 이스라엘 주민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외치며 군복을 입고 총을 들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보호하는 데 이처럼 공을 들이는 이유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아랍권 전체의 분노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마스, 전투 아닌 ‘인질극’ 벌이는 중
하마스는 아랍어로 ‘이슬람 저항 운동’의 약자이자, 그 단어 자체로 ‘알라를 따르는 헌신과 열정’이라는 뜻을 가진 조직이다. 팔레스타인 해방과 시오니즘 척결을 지상 목표로 천명했지만, 실상은 신의 이름을 팔아 가자지구 주민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군벌 집단이다. 이들은 이번 전쟁 전부터 주민을 착취하며 극소수 간부만 호의호식하는 형태로 존속해왔다. 전쟁 발발 후에도 지도부는 외국 고급 호텔과 리조트에 머물며 주민들을 선동해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하마스 말단 조직원들은 지금 가자지구에서 전투라기보다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 개전 첫날 230~250여 명에 달하는 민간인 인질을 납치해 억류 중이고, 이스라엘군 폭격을 막고자 주민들을 인간방패로 쓰고 있기도 하다. 현재 가자지구 도심 진입 작전을 수행하는 이스라엘군 제36사단이 공개한 영상들을 보면 하마스 대원들은 유치원·학교·병원은 물론, 모스크에도 로켓·박격포 진지를 세우고 이스라엘군을 공격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대(對)포병 레이더로 발사 원점을 역추적해 포격하면 유치원·학교 어린이들이나 병원 내 환자들이 죽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노약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하마스는 희생자 수를 크게 부풀리면서 최대한 잔혹하고 불쌍한 장면을 연출해 선전전에 나설 테다. 10월 17일 알아흘리 병원 포격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폭격해 471명이 죽고 314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하면서 이스라엘이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마스의 충격적인 주장에 외신들은 앞다퉈 현장으로 갔지만, 이스라엘군이 폭격했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마스는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가 “이스라엘군의 폭격이라면 미사일 잔해를 보여달라”고 요청하자 “잔해가 물에 닿자마자 소금처럼 녹아내려 남은 것이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후 병원 인근 폐쇄회로(CC)TV와 현장 탄착흔 등 물증으로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PIJ)가 쏜 오발탄이 병원에 떨어진 것으로 결론 났다. 그럼에도 하마스는 지금까지 이 사건을 이스라엘에 의한 민간인 대량 학살로 규정하면서 아랍세계의 분노와 공동 대응을 촉구하는 선전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마스의 이 같은 선전은 중동 지역의 극단주의 군벌 세력에 좋은 명분이 되고 있다.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참전을 선언했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 조직도 하나 둘 개입하기 시작했다. 헤즈볼라는 이미 이스라엘 북부 국경에서 교전 중이고, 후티 반군은 연일 미사일과 드론을 이스라엘 방향으로 날리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 군벌 역시 이스라엘, 미국을 완전히 몰아내겠다며 중동 내 미군 거점을 거세게 공격하고 있다.
중동 지역 군벌 세력 가운데 가장 강성 조직으로 평가받는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규군보다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다. 10만~15만 명에 달하는 병력과 전차·장갑차로 구성된 기계화부대는 물론, 중·단거리 지대공미사일과 지대함미사일 전력도 운용 중이다. 후티 반군 역시 2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지녔고, 10년 가까이 진행된 내전을 통해 상당한 전투력을 갖춘 세력이다. 이들은 최근 이란으로부터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제공받아 이스라엘 본토 공격까지 시도했다.
시리아·이라크 친이란 민병대라는 변수
헤즈볼라, 후티 반군이 일정한 정치 조직과 지도부를 갖춘 반면, 시리아와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대는 정확히 누가 조직을 이끄는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시리아에는 7대 무장세력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지역별 부족 연합체로 운영된다. 작은 조직은 병력이 800~900여 명, 큰 조직은 2만90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다만 부족마다 유력 가문들이 권력을 나눠 갖고 있어 정확히 누가 조직을 이끄는지 알기 어렵다. 이라크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이라크 민병대는 공식적으로는 인민동원군(PMF)이라는 조직으로 지휘체계가 일원화돼 있지만, 지역·정당·부족마다 ‘??여단’이라는 이름을 달고 독립적으로 운용되는 민병조직이 70여 개에 달한다. 이라크 정부 정규군이 존재함에도 이처럼 민병대가 난립하는 이유는 과거 이 지역을 휩쓸었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때문이다. ISIL이 커지자 각 지역 부족은 스스로를 지키고자 민병대를 만들었다. 시아파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은 이들 민병대에 막대한 지원을 해 그중 상당수를 영향력 아래 두는 데 성공했다. ISIL이 사라진 뒤 PMF에는 수니파 조직도 대거 합류했다. 현재는 튀르키예가 수니파 계열 조직을, 이란이 시아파 계열 조직을 지원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미군 시설을 공격하는 민병대는 대부분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계열 조직이다. 이란은 이들을 지원·관리하고자 혁명수비대에 별도 조직인 ‘쿠드스군’을 설치했다.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카타이브 헤즈볼라’와 ‘바드르 조직’ ‘카타이브 알이맘 알리’ 등이 규모가 크고 이란의 통제가 잘 먹히는 조직들이다. 이들 조직이 공개적으로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실제로 이라크 내 미군 시설을 겨냥한 공격 대부분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중동 전역으로 번지는 반미 무장 투쟁을 이란이 배후에서 지휘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문제는 시리아와 이라크 주둔 미군에 대한 민병대 공격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병력 증원이 이뤄지기 전 시리아에는 미군 900여 명, 이라크에는 250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이들의 주둔 명분은 ISIL 잔당 소탕과 지역 안정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 가스관 및 유전지대를 반미·반서방 진영으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사시 이란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펴는 데 필요한 전진기지 보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최근 민병대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이라크 동북부 알하어 공군기지의 경우 이란 수도 테헤란으로부터 640㎞ 떨어져 있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강력한 협상 카드 중 하나로 이 기지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란 입장에서는 이곳을 포함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미군을 반드시 몰아내야 한다. 친이란 민병대가 최근 연이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기지를 공격하는 명분은 표면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구하고 ‘전쟁 범죄자’ 이스라엘을 응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란의 전략적 필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란은 최근 자국이 사실상 통제하는 민병대에 탄도미사일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라크 내 미군 시설을 공격했던 민병대들은 기껏해야 박격포나 로켓, 드론 따위를 사용했다. 그런데 11월 6일 처음으로 이란제 탄도미사일 ‘파테-110’을 이용한 공격 사례가 보고됐다. 공격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강도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 미군기지에는 지상 전투 병력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 민병 조직이 합세해 사방에서 포위하고 들어오면 제아무리 미군이라 해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미국이 중동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단을 투입하고, 해병대 신속기동부대가 승선한 바탄 상륙준비전단을 대기시킨 것에 이어, 토마호크 미사일 154발로 중무장한 순항미사일원잠을 전진 배치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사시 대규모 화력 투발을 통해 민병대의 포위를 막고, 어떻게든 기지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미군도 현지 민병대는 버거운 상대
그러나 지난 20여 년 전쟁사가 증명한 바처럼, 기지 주변으로 모여드는 민병대는 아무리 폭격해도 규모가 줄어들거나 기세가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테러와 전쟁 당시 미국은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어 민병대를 제거했지만, 각 지역 민병대는 마치 화수분처럼 끝없이 병력을 동원해 미군을 괴롭혔다. 과거와 달리 지금 시리아와 이라크의 미군 병력은 크게 약화된 상태다. 민병대에는 팔레스타인을 도와 성전(聖戰)을 수행한다는 명분과 이란이라는 든든한 후원자도 있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도로 미군에 대한 공격이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크게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의 각 민병대를 개별적으로 상대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으로, 대선 패배로 직행하는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금적금왕(擒賊擒王)이라는 말처럼 모든 사태를 배후 조종하는 ‘최종 보스’ 이란을 직접 타격하는 방안도 고민할 수 있겠지만, 이는 핵전쟁을 비롯한 최악의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시나리오다. 지난 3년간의 외교 실책으로 임기 막판 외통수에 몰린 바이든 대통령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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