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를 움직이는 고액 기부 단체
미국 ‘돈의 정치’ 가능케 하는 슈퍼팩
루스벨트 재집권 위해 1944년 결성… 2010년 美대법원 “무제한 후원 가능”
선거후보, 모금 활동에 더 힘쏟기도
미국 비영리 정치단체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붙은 2020년 미 대선에 쓰인 비용은 최소 140억 달러(약 18조2000억 원)다. 지난해 한국 대선 비용(약 1216억 원)의 150배가 넘는다. 이처럼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배경으로 개인, 기업, 특정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액 상한선이 없는 미국만의 독특한 제도 슈퍼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이 꼽힌다.
PAC(Political Action Committee)은 1944년 미 산별노조위원회(CIO)가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 재집권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결성했다. 그 전해에 제정된 스미스코널리법은 특정 노조가 개별 정치인에게 직접 자금을 기부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PAC이란 단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 돈을 모아 특정 정치인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에는 연 5000만 달러(약 650억 원)의 상한선이 존재했다.
이 상한선은 2010년 연방대법원 판결로 사라졌다. 당시 대법원은 “특정 후보자와 협의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정치광고에 필요한 기부액 상한선은 없다”고 판결했다. 직접 후원이 아니라면 PAC을 통한 무제한 후원이 가능해진 것이다. 다만 모금 내용은 세세히 공개해야 한다.
이 같은 규제 완화가 미국 주요 선거를 정책 대결이나 후보 개개인에 대한 평가를 넘어 이른바 ‘쩐의 전쟁’으로 변질시켰다는 비판 또한 상당하다. 이종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 선거는 ‘머니 토크스(money talks·돈이 좌우한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금권 선거 양상이 짙다”며 돈이 좌우하는 선거일수록 소수 기득권층 이해관계가 강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거물급 정치인조차 선거자금을 얻기 위해 억만장자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슈퍼팩이 해당 후보와 별개로 운영돼야 함에도 사실상 한몸처럼 움직인다는 비판도 많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6일(현지 시간) 공화당 제4차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에 불참하고 자신의 슈퍼팩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금 행사에 참석했다.
당내 독보적인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겐 다른 후보자와의 대결보다 지지층 모금을 독려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기에 소속 정당 주요 행사조차 경시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후보에게 직접 돈을 건네주지만 않을 뿐 슈퍼팩과 후보는 서로 교류한다”고 진단했다.
슈퍼팩 자금 규모는 후보의 영향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조 바이든 대통령은 7300만 달러(약 949억 원), 트럼프 전 대통령은 6100만 달러(약 793억 원)를 모금했다. 다른 후보들 모금액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자금이 많다는 사실이 후보를 자동적으로 승자로 만들지는 않지만 풍부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후보에게 엄청난 이점”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11월 미 대선이 역대 가장 많은 비용을 쓴 대선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CNN방송에 따르면 올 들어 노동절인 9월 첫째 주말까지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선광고에 쓴 비용은 1억2100만 달러(약 1600억 원)다. 2020년 대선을 앞둔 2019년 한 해 동안 양당이 쓴 비용(6000만 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한국 정당이나 정치인은 하나의 후원회를 둘 수 있다. 개인은 이 후원회에 기부할 수 있으나 국내외 법인이나 단체는 기부할 수 없다. 후원인 1명은 특정 대선 후보에게 연 1000만 원까지 쓸 수 있다. 특정 대선 후보의 후원금 모금 한도 또한 선거 비용 제한액의 5%에 불과하다. 지난해 대선 때는 25억6545만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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