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 간부들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둘러싼 파장이 갈수록 커지면서 그 책임론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로 향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 지지율은 취임 이후 가장 낮아졌고, 경질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아베파 인사들마저 반발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정권 2인자인 아베파 관방장관 불신임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해 기시다 총리 흔들기에 나섰다.
일본 산케이신문과 민영방송 후지TV가 1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기시다 총리 책임을 묻는 질문에 ‘많이 있다’와 ‘약간 있다’를 합한 응답이 87.7%나 됐다. 10명 중 9명 가까이가 당 총재인 기시다 총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22.5%로 산케이-후지TV 지난달 여론조사보다 5%포인트가량 하락해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이번 주 잇따라 발표될 주요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에서 10%대 지지율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적 곤경에 처한 기시다 총리는 당 사무총장 시절 비자금을 1000만 엔(약 9000만 원) 이상 챙긴 혐의를 받는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을 비롯해 아베파 소속 장·차관 15명 전원을 이번주 중 경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내각 및 당 간부를 맡고 있는 아베파 의원들 경질을 비롯한 인사 여부에 대해 “적절한 시기에 적절히 대응하겠다”며 개각 방침을 시사했다.
하지만 군소 파벌 출신으로 당내 기반이 약한 기시다 총리가 인사 카드로 당 혼란과 국민 불안을 잠재울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당장 아베파 인사들이 기시다 총리의 경질 방침에 불만을 표시했다. 마쓰노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주어진 직책을 완수해 나가고 싶다”며 총리 인사 방침에 사실상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일본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지난주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기시다파 회장을 지낸 만큼 당내 파벌 정치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국민이 높은 지지율로 뒤를 받쳐 주지 않는 기시다 총리로서는 다른 파벌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아베파까지 반기를 든다면 정권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내년 예산에서 대폭 늘어난 방위비 확보를 위해 시행하려던 증세를 당분간 연기하기로 하는 등 주요 정책 추진에 차질이 빚어지는 형편이다. 기시다 총리 임기는 내년 9월까지지만 내각책임제에서는 정권 기반이 약해지면 언제라도 물러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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