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레암(Ream) 해군기지는 남중국해와 타이만을 접한 자그마한 항구였다. 캄보디아 정부는 1970년대 수도 프놈펜에서 서남쪽으로 168㎞ 떨어진 시아누크빌주에 속한 이곳에 영국 해군 지원으로 연안을 순찰하는 경비정 서너 척이 정박할 수 있는 기지를 만들었다. 캄보디아 정부는 2020년 10월 대형 함정들이 정박 가능하도록 항구와 인근 해역 일대를 준설 작업했다. 지난해 6월부터는 기지 확장 공사도 시작했다. 당시 기공식에는 왕원톈 주캄보디아 중국대사가 참석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캄보디아 정부에 이 기지의 준설과 확장 공사를 위해 수억 달러 자금 및 건설 기술 등을 제공해왔다.
중국, 캄보디아에 항공모함 두나
미국 상업위성 영상 제공·분석 기업 블랙스카이가 최근 촬영한 위성사진을 보면 레암 해군기지는 중국이 동아프리카 지부티에 건설한 해외 해군기지와 매우 비슷하다. 이곳 부두는 길이가 335m나 돼 항공모함이 기항할 수 있다. 중국은 2017년 지부티에 첫 해외 해군기지를 만들었다. 지부티 해군기지에도 항공모함 등 대형 함정이 정박할 수 있는 길이 335m의 부두가 있다.
서방 언론들은 중국이 레암 해군기지 확장 공사를 적극 지원해온 것은 자국 항공모함 등 해군 함정들을 주둔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정부가 2019년 캄보디아 정부와 레암 해군기지의 3분의 1인 5만㎡를 30년간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이후 10년 단위로 자동 갱신되는 비밀협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레암 해군기지에서는 지부티 중국 해군기지와 동일한 형태의 항공모함 정박용 부두가 완성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도 레암 해군기지 확장 공사를 중국 해군기지 구축을 위한 것이라 보고 중국 정부와 캄보디아 정부에 투명한 정보 공개를 요구해왔지만 양국은 이를 부인했다.
실제로 중국이 레암 해군기지를 제2 해외 해군기지로 만들어 자국 함대를 주둔시키려는 움직임이 관측된다. 중국 군함 2척이 12월 3일 레암 해군기지에 기항하는 등 준비 작업을 벌인 것이다. 당시 중국 군함의 기항은 허웨이둥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캄보디아를 방문한 것과 같은 시기에 이뤄졌다. 이는 레암 해군기지에 외국 군함이 정박한 첫 사례다.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크레이그 싱글턴 선임연구원은 “레암 해군기지에 중국 군함이 도착한 것은 중국이 오랫동안 숨겨왔던 군사적 목표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레암 해군기지에는 길이 300m인 중국 항공모함 푸젠함을 포함해 모든 중국 군함이 정박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군이 이곳에 주둔하면 동남아시아의 첫 해외 군사 거점이자 지부티에 이어 두 번째 해외 군사기지가 된다고 평가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연말까지 기지 확장 공사를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말라카 딜레마 겪은 중국
중국이 이곳에 해외 해군기지를 만들려는 이유는 말라카해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은 그동안 ‘말라카 딜레마(Malacca Dilemma)’를 겪었다.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은 2003년 중국이 말라카해협을 통과해야만 에너지를 운송할 수 있다며 이를 말라카 딜레마라고 표현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이자 수입국이다. 말라카해협을 통해 중동과 아프리카 등으로부터 전체 에너지의 80%를 운송해왔고 이는 안보 불안으로 작용했다.
말라카해협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사이에 있는 국제 해협이다. 길이 900㎞, 폭 2.8~100㎞, 평균 수심 25~27m로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통로다. 중국은 그간 미국이 말라카해협을 봉쇄해 자국 생명줄을 옥죌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왔다. 중국이 레암 해군기지에 제2 해외 해군기지를 만들려는 것도 에너지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중국 입장에서 레암 해군기지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다. 레암 해군기지는 말라카해협에서 800㎞ 떨어져 있다. 중국이 이곳에 항모 전단을 배치할 경우 유사시 말라카해협으로 즉각 출동이 가능해 전략적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미국에 맞서 남중국해 제해권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레암 해군기지 동쪽에는 남중국해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이 레암 해군기지에 항모 전단을 주둔시키면 남중국해 제해권 확보에도 상당히 유리하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이른바 ‘남해 구단선(南海九段線·nine dash line)’이라는 가상의 선을 긋고 이 안쪽을 자국 바다라고 주장해왔다. 남해구단선은 중국이 남중국해 관할권 경계를 표시한 9개 선으로, 연결하면 알파벳 유(U)자 형태가 된다. 남중국해 전체 면적 350만㎢ 중 90%가 이 선 안쪽에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남중국해를 접한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과 갈등을 빚어왔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인공섬 7개를 건설해 군사기지를 만들었다. 중국이 레암 해군기지에 함정을 주둔시키면 인공섬들과 연계해 미국의 ‘항행의 자유’ 작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게다가 인공섬 기지와 달리 레암 해군기지는 캄보디아 영토다. 미국과 중국 간 무력 충돌이 벌어질 경우 미국의 대응이 쉽지 않다. 한 전직 미국 정보기관 관리는 “미국이 이 기지를 폭격한다면 캄보디아 영토를 공격하게 되는 셈”이라며 “하이난섬과 남중국해 여러 도서에 기지를 가진 중국이 굳이 캄보디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WSJ는 “중국 해군 함정들이 레암 해군기지를 사실상 전진 기지로 사용할 경우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물론, 양안(중국과 대만)의 무력 충돌 등 지역 안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WP도 “남중국해 서쪽에 대형 해군 함정을 주둔시킬 수 있는 기지를 확보하는 것은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 측 야심에서 중요한 요소”라며 “이는 동남아시아 주요 해상 항로에서 중국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과 캄보디아 운명 공동체”
레암 해군기지는 중국 항모가 남중국해는 물론, 태평양과 인도양까지 작전을 펼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중국은 아직까지 핵추진 항모를 보유하지 못해 연료 공급 등 병참에 문제가 있다. 랴오닝함과 산둥함의 경우 원양 작전 훈련 일수가 보름 정도다. 출항한 지 보름쯤 되면 모항으로 돌아갈 연료가 부족할 수 있다. 중국군이 항모 전단이 출동할 때마다 4만8000t급 대형 종합보급선을 항모 전단과 함께 배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레암 해군기지는 중국 항모 등 해군 함정의 병참기지도 될 수 있다.
게다가 중국군은 레암 해군기지를 중국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인 베이더우(北斗) 시스템의 지상기지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더우 시스템은 군 병력과 각종 함정·전투기의 작전, 미사일의 정밀유도를 위한 정확한 위치 정보 및 항법 기능 등을 제공한다.
캄보디아는 대표적 친중 국가다. 특히 중국은 훈 센 전 캄보디아 총리와 그의 장남인 훈 마넷 총리의 세습체제를 적극 지원해왔다. 38년간 캄보디아를 철권통치해온 훈 전 총리는 8월 7일 총리직을 장남인 훈 마넷 군 부사령관이자 육군 대장에게 물려줬다.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의 승인에 따라 훈 마넷 총리는 8월 22일 공식 취임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캄보디아의 권력세습을 적극 지지한다면서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허 부주석은 12월 4일 프놈펜에서 훈 마넷 총리와 그의 아버지인 훈 센 전 총리를 만나 양국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허 부주석은 “양국 군은 고위층 교류, 메커니즘 구축, 합동 훈련, 개인 훈련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협력을 지속해왔다”며 “중국과 캄보디아는 양국 운명 공동체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해군은 3월 캄보디아 영해에서 처음으로 캄보디아 해군과 연합 해상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프놈펜과 시아누크빌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지원했다. 시아누크빌에 거주하며 사업 등을 하는 중국인이 10만~25만 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이 레암 해군기지를 제2 해외 해군기지로 활용할 경우 지정학적으로 미국에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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