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마우스 저작권이 사라지자 미국에서 나온 감탄사[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0일 14시 00분


당신이 꿈꾸는 ‘second act’
대통령이 알려주는 은퇴 후 인생 설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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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시카고 어린이집을 찾은 모습. 오바마 재단 홈페이지


Life’s Second Act.”
(인생 2막)
얼마 전 크리스마스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산타클로스로 변신했습니다. 산타 모자를 쓰고 어린이집을 찾아 선물을 나눠주고 동화책을 읽어줬습니다. 아이들은 대통령을 보자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잡아보려고 난리였습니다.

이 어린이집은 시카고의 낙후된 지역에 있는 곳입니다. 주로 흑인, 히스패닉 아이들이 많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젊은 시절 꿈은 소외된 지역 주민을 위한 활동가였습니다. 퇴임 후 그 꿈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바마 산타에 감동한 어린이집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For him to take the time to come here out of his busy schedule to read a book just shows that he is still a leader.”(바쁜 일정 중에 이곳에 와서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그가 아직 리더라는 것을 보여준다)

대통령은 세상의 모든 주목을 받는 자리입니다. 그런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뒤의 삶은 허무할 수 있습니다.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가 한 말입니다. “There is nothing more pathetic in life than a former president”(전임 대통령의 삶보다 더 처량한 것은 없다). 하지만 은퇴 후의 삶은 계획하기 나름입니다. 5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퇴한 오바마 대통령은 ‘하이어 그라운즈’라는 콘텐츠 회사를 만들어 양질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가 제작한 영화들을 넷플릭스 등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산타 부캐로 변신합니다. 허무할 틈이 없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의 관심사인 은퇴 후의 삶, 또는 삶의 방향 전환을 ‘life’s second act’ ‘second act in life’라고 합니다. ‘act’는 ‘행동’이라는 뜻도 있고, 연극에서 ‘막’을 말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제2막이 열린다는 의미입니다. 새해를 맞아 인생 2막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통령이라는 화려한 자리에서 내려온 뒤 어떻게 삶을 개척하는지는 국민에게 산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세컨드 액트’를 알아봤습니다.

자신의 농장에서 앵거스 소를 쓰다듬고 있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미국 국립공원청(NPS) 홈페이지


I tell all the same thing — I just want to be a one mule farmer in Virginia or Georgia or Tennessee.”
(똑같은 얘기를 매번 한다 – 나는 버지니아든, 조지아든, 테네시든 노새가 끄는 농부가 되고 싶다)
미국 대통령 중에는 농촌 출신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단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면 농촌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퇴임 후 손에 흙을 묻히는 농촌 라이프로 돌아간 대통령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입니다.

펜실베이니아 농촌 출신인 그는 집에서 키운 채소를 시장에서 팔아 학비를 마련했습니다. 연합군 총사령관 시절 자주 했던 말입니다. ‘mule’(뮬)은 노새를 말합니다. 농사를 지을 때 많이 활용합니다. ‘one-mule farmer’는 노새 한 마리로 땅을 일구는 농부를 말합니다. 소박하지만 정직한 땀의 대가를 얻는 농부의 삶이 그리웠던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자 귀촌 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부인과 함께 농장을 보러 다녔습니다. 정착한 곳은 펜실베이니아 게티스버그. 고향 부근이자 그가 존경하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연설 장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에 23만 평의 용지를 사들였습니다. 부임지마다 옮겨 다니며 살았던 그가 최초로 소유한 집입니다. 그런데 귀촌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농장 계약을 마치고 며칠 후 해리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총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입니다. NATO 총장에 이어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백악관에 들어갔지만, 마음속에는 게티스버그 농장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휴가 때마다 농장을 찾았습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을 이곳으로 초청해 회담을 열었습니다.

퇴임 후 마침내 농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종목은 소 목축. 한국에도 잘 알려진 앵거스 품종을 키웠습니다. 인생 2막에 ‘Angus Cattle Breeder’(앵거스 목축업자)로 불렸습니다. 건강 악화로 귀촌 6년만인 1966년 9만 달러에 가축을 모두 처분했습니다. 3년 뒤 세상을 떠나면서 열성을 다해 가꾼 농장을 국가에 헌납했습니다. 농장은 국가역사시설(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됐습니다. 아이젠하워 농장은 링컨 연설 장소와 함께 게티스버그 관광 명소로 통합니다.

버지니아주 마운트버넌 농장에 보존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위스키 양조장 시설. 마운트버넌 홈페이지
버지니아주 마운트버넌 농장에 보존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위스키 양조장 시설. 마운트버넌 홈페이지


Two hundred gallons of Whiskey will be ready this day for your call, and the sooner it is taken the better, as the demand for this article is brisk.”
(200갤런의 위스키가 오늘 너의 주문에 맞춰 준비될 것이다. 빨리 가져갈수록 좋다. 상품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회에 소개했듯이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4년 중임, 8년 임기의 전통을 세우고 미련 없이 물러났습니다. 퇴임 후 인생 2막은 어땠을까요. 사업가로 변신했습니다. 그다지 이미지가 좋다고 할 수 없는 술 사업을 벌였습니다. 위스키 양조장을 운영했습니다.

워싱턴 대통령은 위스키와 악연이 깊었습니다. 당시 정치인들은 위스키를 유권자들에게 돌려 표를 얻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워싱턴은 신인 정치인 시절 위스키 돌리기를 거부하다가 선거에서 떨어진 전력이 있습니다. 독립전쟁 총사령관 시절에는 위스키를 마시는 군인들 때문에 근무 기강이 해이해져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당시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Troops are incessantly drunk, and unfit for service”(군인들이 계속 마셔대서 근무할 수 없는 상태다). 대통령 시절에는 ‘위스키 반란’(Whisky Rebellion)을 겪었습니다. 농민들이 위스키에 부과된 세금에 반발해 폭동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워싱턴은 대통령의 신분으로 군대를 통솔해 위스키 반란군을 강경 진압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대통령이 직접 출정한 사건입니다.

이렇게 악연이 깊은데도 위스키 사업에 뛰어든 것은 돈에 쪼들렸기 때문입니다. 워싱턴 대통령은 은퇴 후 버지니아 근교 마운트버넌 농장으로 돌아갔습니다. 900만 평의 광활한 면적에 노예가 수천 명에 달하는 곳입니다. 엄청난 농장 운영비용을 대려면 수익성 좋은 사업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위스키 제조는 유망 사업이었습니다. 위스키를 물처럼 마셔 수요가 많았습니다. 마운트버넌 농장 관리인은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위스키 제조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관리인의 도움을 받아 워싱턴 대통령은 양조장을 버지니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성장시켰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사업 시작 2년 만에 1만1000갤런의 위스키를 판매해 연 7500달러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15만 달러(2억 원)입니다.

국정 운영이건 기업 운영이건 한번 시작하면 전력을 다하는 것이 워싱턴 대통령의 성격입니다. 사업 시작 2년 후 위스키 판매업을 하는 조카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치인이 아닌 사업가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여기서 ‘article’은 ‘기사’라는 뜻이 아니고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brisk’는 ‘바람이 불다’라는 뜻입니다. 순풍에 돛단 듯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brisk demand’라고 합니다. 워싱턴 대통령이 운영했던 마운트버넌 양조장은 오늘날까지 보존돼 관광객들이 위스키를 시음하고 구입할 수 있습니다.

1986년 카터 센터 완공식에서 지미 카터 전임 대통령 부부와 로널드 레이건 현직 대통령 부부. 카터 센터 홈페이지
1986년 카터 센터 완공식에서 지미 카터 전임 대통령 부부와 로널드 레이건 현직 대통령 부부. 카터 센터 홈페이지


If I had to choose between four more years and the Carter Center, I think I would choose the Carter Center.”
(만약 재선과 카터 센터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카터 센터를 택하겠다)
대통령학 연구기관인 버지니아대 밀러 센터는 재임 때보다 퇴임 후에 더 빛난 대통령으로 지미 카터 대통령을 꼽았습니다. 카터 대통령 때문에 새로운 명칭까지 생겨났습니다. ‘great ex-president’(위대한 전임 대통령). 은퇴 계획을 철저히 세운 덕분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은퇴를 맞았습니다. 2015년 자서전에서 물러날 때의 기분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When we came home, I had no idea what I would do with the rest of my life.”(퇴임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모든 대통령은 은퇴 라이프를 자서전 집필과 대통령 도서관 건립 계획으로 시작합니다. 카터 대통령은 이 과정을 단순한 업적 과시가 아닌 냉철한 장단점 분석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어느 날 밤 몇 시간을 자고 난 뒤 이런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고 합니다. “I would not just build a presidential library, but would set myself up as a freelance global mediator, statesman and global health advocate.”(대통령 도서관을 짓는데 그치지 않고 프리랜서 글로벌 중재자, 원로, 보건 활동가가 되겠다)

자신의 강점인 인권정책, 중동협상 중재 경험 등을 바탕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렇게 해서 고향 조지아주에 비정부기구 카터 센터가 탄생했습니다. 퇴임 1년 뒤인 1982년 착공해 1986년 문을 열었습니다. 이곳을 배경으로 수많은 내전을 중재하고 독재 국가들을 방문해 담판을 벌였습니다. 2015년 자서전 출간 기자회견에서 한 말입니다. 카터 센터가 4년 단임 대통령으로 끝난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명언의 품격
아마존 탐사 여행을 하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왼쪽)과 칸디두 론돈 대령.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아마존 탐사 여행을 하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왼쪽)과 칸디두 론돈 대령.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단조로운 업무 반복이 많은 현대인들은 은퇴 후 흥미진진한 일을 원합니다. 전 세계를 누비는 꿈을 꿉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이런 꿈을 현실로 옮긴 대통령이 있습니다. 시어도어(테디) 루즈벨트 대통령입니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맡은 역할입니다. 그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마자 탐험가가 변신했습니다.

미국 역사에는 2명의 유명한 루즈벨트가 있습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와 프랭클린 루즈벨트입니다. 시어도어가 프랭클린의 12촌 형입니다. 루즈벨트 가문은 권력 욕심이 많은지 2명의 루즈벨트 모두 8년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 3선에 도전했습니다. 프랭클린은 성공했고 시어도어는 실패했습니다. 55세에 은퇴 생활을 시작한 시어도어 대통령은 답답했습니다. 마침 아르헨티나로부터 강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아르헨티나에 가는 김에 브라질 아마존 여행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시어도어 대통령은 브라질의 유명 탐험가 칸디두 론돈 장군을 가이드로 고용했습니다. 이들의 아마존 여행을 ‘루즈벨트-론돈 과학 탐사’(Roosevelt–Rondon Scientific Expedition)라고 부릅니다. 주변에서 뜯어말렸습니다. 탐사하려는 아마존 다우트강 일대는 악어와 피라냐가 우글거리고, 원주민이 위협하는 곳이었습니다. 고집불통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It is my last chance to be a boy.”
(내가 소년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소년의 모험심을 펼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입니다. ‘My Last Chance to Be a Boy’ 구절은 나중에 시어도어 대통령의 아마존 탐사를 기록한 책의 제목이 됐습니다. 3개월간의 아마존 탐사는 흥미진진함을 넘어 목숨을 건 여행이었습니다.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하고,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여행이 끝났을 때 몸무게의 4분의 1(23kg)이 줄었습니다.

그래도 일생의 업적으로 탐사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브라질 정부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It was a hard and somewhat dangerous, but very successful trip”(힘들고 약간 위험했지만, 매우 성공적인 여행이었다). 브라질 정부는 다우트강의 이름을 루즈벨트강으로 바꿨습니다. 대부분 대통령은 퇴임 후 정치 강연을 하러 다니지만,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탐사기 강연을 하러 다녔습니다.

실전 보케 360
2024년부터 저작권이 해제된 오리지널 버전 미키마우스. 위키피디아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디즈니 인기 캐릭터 미키마우스가 올해 1월 1일부터 저작권이 풀렸습니다. 95년만입니다. 이제 누구나 걱정 없이 자신의 창작물에 미키마우스를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이번에 저작권이 해제된 미키마우스는 오리지널 버전입니다. 1928년 디즈니 영화 ‘Steamboat Willie’(증기선 윌리)에 나온 좀 더 쥐 같이 생겼고 홀쭉한 미키마우스를 말합니다. ‘young Mickey’(젊은 미키)라고 불리는 버전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통통하고 귀여운 미키마우스는 1940년대 만들어진 버전으로 아직 저작권이 살아 있습니다.

미국은 저작권 보호가 철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미키마우스 같은 국민 캐릭터는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저작권 보호 기간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저작권 자유화 운동가 코리 닥터로우 씨는 미키마우스 저작권 해제 소식이 전해지자 이렇게 기뻐했습니다.

Now, the audience is going to set the terms.”
(이제부터는 관객이 조건을 정한다)
‘term’(텀)은 ‘기간’ ‘학기’ ‘용어’ 등 뜻이 다양합니다. 동사로도 씁니다. ‘be termed’는 ‘불리다’라는 뜻입니다. “He has been termed the father of modern science”는 “그는 현대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라는 뜻입니다. 닥터로우 씨는 ‘terms’(텀즈)라는 복수형을 썼습니다. ‘조건’이라는 뜻이 됩니다. 계약이 성사되는 조건을 말합니다. 미국에서 물건을 사면 사용설명서나 영수증 아래쪽에 ‘Terms and Conditions’라는 제목으로 깨알같이 적힌 내용이 나옵니다. 구매에 따른 조건들을 명시한 것입니다.

‘set the terms’는 ‘조건을 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는 디즈니가 미키마우스 사용 조건을 정했다면 지금부터는 관객이 정한다는 것입니다, ‘관객이 주도권을 쥔다’ ‘관객 마음이다’라는 의미입니다. ‘set the terms’와 비슷한 ‘come to terms’도 미국인들이 즐겨 씁니다. ‘조건으로 오다’ ‘받아들이다’라는 뜻입니다. 뒤에는 비극을 의미하는 단어들이 와서 ‘come to terms with death’(죽음을 받아들이다) ‘come to terms with loss’(상실을 받아들이다) 등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8년 11월 20일 소개된 미셸 오바마 여사의 자서전에 관한 내용입니다, 은퇴 후의 삶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대통령뿐만이 아닙니다. 퍼스트레이디도 해당합니다. 백악관 생활 은퇴 후 자신의 삶을 찾아 알차게 꾸려나가는 퍼스트레이디가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과 미셸 오바마 여사가 대표적입니다. 힐러리 여사는 능력 있는 정치인이 됐고, 미셸 여사는 저술가, 강연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서전 ‘Becoming’(비커밍)은 미셸 여사의 인생 2막을 알리는 작품이었습니다.

▶2018년 11월 20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81120/92939589/9

자서전 ‘비커밍’ 출판 사인회에서 미셸 오바마 여사. 오바마 재단 홈페이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의 자서전이 연일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내용은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습니다. 흥미로운 문장들이 많이 나와 있어 영어 공부에도 좋습니다.

Inequality seems as American as apple pie.”
(불평등은 애플파이만큼 미국적이다)
미셸 여사는 미국의 인종갈등을 얘기하면서 애플파이에 비유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자기 나라를 애플파이에 비교하기를 좋아합니다. 유럽은 파이 재료로 고기를 넣는 반면 초기 미국인들은 사과를 넣은 데서 비롯됐습니다. 사과는 미국 어느 지역에서나 재배되는 흔한 과일입니다. 유럽에 대항해 당당한 독립국으로 만들었다는 자존심의 상징이 바로 애플파이입니다. 애플파이가 자랑스러운 전통이라면 수치스러운 전통으로 인종적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I think I have as much of a chance of dancing in the Bolshoi Ballet in 2020 as the likelihood of her running for office.”
(그녀의 공직 출마는 2020년 내가 볼쇼이 발레단에서 춤을 추고 있을 가능성과 비슷하다)
미셸 여사는 자서전에서 “공직(대통령직)에 출마할 의도가 없다. 전혀”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미셸 여사와 친한 데이비드 액설로드 전 백악관 수석 고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의 대선 출마가 자신의 볼쇼이 발레단 출연만큼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You may live in the world as it is, but you can still work to create the world as it should be.”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버드대 법대 졸업 후 시카고 빈민가로 돌아와 지역 주민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 사귀고 있던 미셸 여사는 “대형 로펌에 취직할 수 있는데 왜 이런 희망 없는 곳으로 돌아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답입니다. 미셸 여사는 이 말을 듣고 남편을 존경하게 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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