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대부’ NRA 라파에르, 횡령 스캔들로 33년 만에 사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7일 20시 05분


지난해 4월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전미총기협회(NRA)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웨인 라피에르 NRA 최고경영자. 인디애나폴리스=AP 뉴시스

전미총기협회(NRA)를 미국 보수 진영 최대 로비단체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총기 옹호 세력의 얼굴’ 웨인 라피에르 최고경영자(CEO) 겸 부회장이 기부금 횡령 스캔들로 33년 만에 사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 시간) “라피에르가 자신에 대한 기부금 횡령 관련 민사재판 개시를 이틀 앞두고 사임 의사를 표명한 입장문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2020년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이 “라피에르가 NRA 자금 수백억 달러를 사적 용도로 사용해 비영리법인법을 위반했다”며 제기한 민사재판이다. 이번 재판은 라피에르가 배상할 금액 뿐 아니라, 연간 모금 액수가 수억 달러에 이르는 NRA의 독립 회계감사 도입 여부와도 연관돼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검찰 측은 라피에르가 가족여행에 50만 달러(약 6억6000만 원)를 썼으며, 업무 관련성이 없는 제3자의 전용기 대금에도 5년간 총 100만 달러(약 13억2000만 원) 대신 결제해주는 등 NRA 자금 수백만 달러를 무단 횡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라피에르는 미 총기옹호 진영의 대표적인 얼굴로 꼽히는 인물이다. 대학 졸업 후 처음 총기를 구매했을 정도로 총기와 인연이 깊지 않으나, 뛰어난 정무적 감각을 발휘해 CEO까지 올랐다. 그는 2010년대 연이은 대규모 총기난사 참극 국면에서도 “총은 총으로 막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총기 규제를 집요하게 막아냈다.

원래 정치권 진입을 노리다가 NRA에 발을 들인 라피에르는 NRA 지도자 중 처음으로 ‘사격문화권’ 밖에서 자란 인물로 꼽힌다. 버지니아주 서부 최대 도시인 로아노크 출신으로 총기를 소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만 1978년 29세에 NRA 로비팀에 입사한 그는 13년 만에 CEO 자리에 오를 정도로 고속 승진했다. 조직이 내홍을 겪고 총기 구매자 신원 조회를 의무화하는 규제가 도입되던 1990년대에 실력을 발휘하며 NRA 부활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라피에르는 총기 이슈를 정치적 시각에서 풀어낸다. (그의 정체성은) 총기 애호가가 아닌 정치 중독자”라고 평가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라피에르 사임으로 NRA의 한 시대가 저물었으나 현실은 공화당 대선 주자들이 NRA의 횃불을 이어받은 형국이다. 무장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2조를 옹호하고 총기 규제에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당시 NRA는 트럼프 캠프에 선거 자금 3100만 달러(약 408억 원)를 보태 보수진영의 큰손으로 통하기도 했다. 이 시기 회원 수는 600만 명, 연간 모금액은 4억 달러(약 5300억 원)를 넘겨 위세를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NRA는 최근 미국 전역에서 수십 건의 반(反)규제 소송을 장기간 진행하며 연간 재정 상황이 어려워졌다. 여기에 라피에르 스캔들까지 겹치며 지난해는 회원 수가 420만 명까지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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