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륙 직후 벽 한쪽 뜯겨나간 보잉기…승객들 ‘20분 공포의 비행’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7일 2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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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하는 충격음이 들렸어요. ‘아, 이렇게 죽는구나’라고 생각했죠.”

주말을 앞둔 5일 금요일 저녁(현지 시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캘리포니아주 온타리오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던 비 응우옌 씨(22)는 좌석에서 앉자마자 살짝 졸고 있었다. 이륙한 지 5분쯤 지났을까. 갑작스런 굉음에 눈을 뜬 그 앞에는 산소마스크가 내려와 펄럭거렸다.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여객기 벽 한쪽이 뭔가로 뜯어낸 듯 구멍이 나 있었다. 그는 뉴욕타임스(NYT)에 “구멍 너머 깜깜한 밤하늘을 보며 죽음이 도래했다는 걸 실감했다”고 전했다.

연초 일본 하네다 공항 비행기 충돌 사고에 이어 미국에서도 대형 비행기 참사가 벌어질 뻔했다. 날아가던 여객기의 기체가 부서지며 20여 분 동안 ‘죽음의 운항’이 이어져, 탑승객 177명은 충격과 절망에 떨어야 했다. 다행히 긴급 비상 착륙하며 인명 피해는 비껴갔으나, 규제당국은 기체 결함 등을 의심하며 정밀 조사에 나섰다.

● 옆자리 청소년 셔츠가 빨려들어가
CNN에 따르면 5일오후 5시 7분경 포틀랜드공항을 출발한 알래스카항공 1282편은 출발 6분 만에 회항을 결정해 5시 27분경 다시 포틀랜드 공항으로 돌아왔다. 알래스카항공은 6일 “승객 171명과 승무원 6명 등 177명 모두 무사하다. 일부가 (가벼운) 부상을 입었으나 현재 는 모두 귀가했다”고 밝혔다.

사고는 현재는 사용하지 않아 벽으로 개조한 비상구가 뜯겨져 나가며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비행기는 시속 440마일(약 708km)로 운항 중이었으나, 해당 비상구 옆 좌석에는 승객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그 옆 쪽에 앉아있던 10대 소년은 입고 있던 셔츠가 통째로 벗겨져 밖으로 빨려 나갔다. 승객 스테파니 킹 씨는 “소년의 엄마가 너무 놀라 ‘우리 아이 옷이 찢어졌다’고 비명을 질러 승무원들이 즉시 다른 자리로 옮겨줬다”고 CNN에 전했다.

갑작스런 소란이 승무원들의 노력으로 잦아들자 기내에는 ‘절망의 적막’이 찾아왔다. 킹 씨도 “나 역시 죽겠구나 싶어서 남자친구와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며 “비행기가 무사 착륙해 완전히 멈춘 뒤에도 한참 동안 으스스할 정도로 조용했다. 다들 너무 큰 충격을 겪어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던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아기 울음소리만 들려오던 기내는 “잠시 자리에서 기다려 달라”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자 긴장이 풀어졌다. 그제야 승객들은 눈물을 터뜨리며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고 한다.

● “벽으로 개조한 비상문 뜯어진 듯”

다음날인 6일 미 영방항공청(FAA)은 사고기종인 ‘보잉 737MAX 9’ 기종의 운항을 전면 중단시키고 “모두 즉시 점검을 받으라”고 명했다. 현재 미 항공사가 보유했거나 미국 내에서 운항이 예정된 보잉 737MAX 9은 171대인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기종은 이미 점검을 마치고 다시 운항에 투입되고 있다. 보잉은 “FAA 결정에 전적으로 따르겠다. 사고 조사를 위해 규제당국, 고객사와 긴밀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즉시 포틀랜드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현장 사진 분석을 토대로 보면, 사용하지 않아 벽으로 개조한 비상문이 떨어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해당 기종은 크기가 작은 순서대로 7, 8, 9, 10로 구성된 737MAX의 하위기종으로 2017년 출시됐다. 항공정보 웹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에 따르면 사고가 난 알래스카항공 1282편은 지난해 11월 첫 운항을 시작해 지금까지 145번 비행했다.

737MAX의 다른 하위기종 8은 2018년 인도네시아와 2019년 에티오피아서 두 차례나 운항 중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당시 출시 2년도 안 된 MAX 8에서 참사가 잇따르자, 안전시스템 결함 의혹이 제기됐으며 보잉 측의 과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FAA는 2019년 3월 해당 기종 운행을 중단시켰고, 결함 보완 후 2020년 12월 운항을 재개했다.

이번 사고로 737MAX 기종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지며 ‘탑승 기피 운동’도 번지고 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선 해당 기종을 보유한 항공사 명단이 공개되고 있으며, 예약번호를 통해 항공기 기종을 확인하는 법도 공유되고 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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