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의 전설 베켄바워 별세
선수-감독으로 월드컵 우승 기록
리베로 정립… 펠레 “축구 제일 잘해”
분데스리가 함께 뛴 차범근과 각별
독일 축구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던 프란츠 베켄바워가 영원한 레전드로 이름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축구 스타들은 베켄바워의 영면을 애도했다.
유족은 8일(현지 시간) “베켄바워가 전날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알렸다. 향년 79세. 사망 원인은 알리지 않았다. 베켄바워는 2019년부터 건강이 나빠져 한쪽 눈 시력을 잃었고 판단력과 기억력도 많이 흐려졌다. 심장 수술도 두 번 받았다. 최근 몇 달 새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베켄바워는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와 행정가로도 축구 역사에 거인의 발자국을 남겼다. 선수 시절 뛴 모든 팀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선 고향 팀 바이에른 뮌헨과 함부르크에서 뛰었다. 뉴욕 코스모스(미국)에서도 3년간 선수 생활을 했는데 입단 첫해인 1977년엔 ‘축구 황제’ 펠레(1940∼2022)와 함께 뛰었다. 생전에 베켄바워는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보다 펠레와 함께 뛴 게 내게는 더 영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펠레 역시 베켄바워를 두고 “같이 뛰어본 선수 중 최고”라고 했다. 국가대표로는 1974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때 서독 대표팀 주장으로 우승을 이끌었다.
선수 시절 베켄바워는 수비수와 미드필더, 공격수 역할을 가리지 않는 ‘리베로’로 포지션 패러다임을 새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아하고 경쾌한 그의 움직임은 축구사 명장면으로 남아 지금도 유튜브 등에서 감상할 수 있다. 베켄바워는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를 수비수로는 유일하게 두 번 받았다.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카리스마도 넘쳤다. 그라운드에서 때로는 거만해 보일 정도의 제스처로 동료 선수들에게 명령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독일인들은 이런 그에게 ‘카이저(황제)’란 닉네임을 붙여줬다.
감독을 맡았던 모든 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프로에선 올랭피크 마르세유(프랑스)와 뮌헨 감독을 지냈다. 서독 대표팀 사령탑으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당시 서독 국가대표로 뛰었다. 베켄바워는 5일 93세로 눈을 감은 마리우 자갈루 전 브라질 대표팀 감독, 디디에 데샹 프랑스 대표팀 감독과 함께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모두 제패한 3명뿐인 축구인 중 한 명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회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독일 월드컵 유치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들에게 돈을 뿌린 의혹이 제기돼 스위스 검찰의 수사를 받는 불명예를 겪었다.
베켄바워는 차범근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71)과 가깝게 지냈다. 베켄바워와 차 전 감독은 소속 팀은 달랐지만 1980∼82년 분데스리가에서 함께 뛰었다. 차 전 감독의 아들 차두리 한국 대표팀 코치가 2010년 스코틀랜드 리그의 셀틱으로 이적할 당시 취업비자를 받는 데 도움을 주려고 베켄바워가 추천서를 썼다.
메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베켄바워의 선수 시절 사진과 함께 “고이 잠드소서”라는 글을 남겼다. 프랑스 ‘아트 사커의 창시자’ 미셸 플라티니는 “베켄바워는 독일뿐 아니라 세계의 축구를 바꿔 놨다”고 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도 “축구의 친구이자 챔피언 베켄바워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며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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