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선거 D-1]
부재자 투표 없어 ‘귀향전쟁’ 본격화
中, 대만인에 항공권 최대 90% 할인… 反中 여당 “부정한 선거 개입” 반발
1,2위 초박빙… 막판 긴장감 고조
11일 대만 타오위안 국제공항은 오전부터 인파로 북적거렸다. 특히 상대적으로 차분한 출국장과 달리, 입국장은 고국으로 돌아오는 대만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고향을 찾은 기업인 여모 씨(49)는 “이번 선거에 꼭 투표하겠다. 지난 8년간 중국과의 관계가 망가진 탓에 회사 매출이 크게 줄었다”면서 집권당을 비판했다.
반면 은퇴 후 영국에서 지내다 고국을 찾은 왕위시아 씨(63)는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가 중국 정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된 일을 떠올리며 “친중 성향의 국민당이 이긴다면 대만도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게 분명하다”고 우려했다. 13일 대만 대선 격인 총통 선거를 앞두고 소문으로 무성하던 ‘귀향 투표 전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슈퍼 선거의 해’ 주요국 가운데 첫 주자인 대만 총통 선거는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으로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막판으로 갈수록 현지는 긴장감마저 흐르는 모습이었다.
● ‘타이상 귀향 독려’로 승부수 던진 中
대만 재외국민들은 전체 인구(2300만 명)의 10% 수준인 약 200만 명. 이 가운데 100만 명 정도는 중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부재자 투표제가 없는 대만은 표를 행사하려면 총통과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4년마다 귀국길에 올라야 한다.
중국은 이번에 투표 독려를 위해 ‘타이상(臺商·중국 진출 대만 기업)’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항공권 할인도 해주고 있다. 쯔유(自由)시보 등 대만 언론은 10일 “중국이 주중 대만 기업인 10만 명을 목표로 귀향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고 10일 보도했다. 중국 당국이 지난해부터 할인 항공권을 제공하도록 항공사를 압박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내에서 대만 국적자에겐 대만행 항공권을 최대 90%까지 할인해주고 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대만 기업인들은 친중 성향 제1야당 국민당 지지자들이 많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가 회복되면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집권당이자 친미 성향의 민주진보당(민진당)은 “중국의 부정한 선거 개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1·2위 초접전 “50만 표 박빙 승부”
투표일을 이틀 앞둔 11일 각 후보 측은 수도 타이베이나 최대 도시 신베이를 집중 공략하며 밤 늦게까지 유세전을 펼쳤다. 이는 현재 1·2위 후보가 초접전 양상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직전인 2일 대만 롄허보 발표에 따르면 민진당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32%, 제1야당인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 후보가 27%를 기록했다. 두 후보의 격차가 5%포인트로 오차범위 내라 누구도 우위를 장담할 수 없다.
라이 후보는 ‘대만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신주시를 시작으로 타이베이시 총통부 앞에서 유세를 벌였다. 그가 “민진당에 투표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길”이라고 호소하자 유세장에 모인 수백 명의 지지자는 민진당의 상징색인 녹색 깃발을 흔들며 화답했다.
허우 후보는 이날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양안 관계 강화뿐 아니라 대만과 미국 간 정보 교류와 군사 협력을 강화하겠다”며 막판 지지율 역전을 위해 중도층 흡수에 주력했다. 주로 젊은층의 지지를 받는 민중당 커원저(柯文哲) 후보 유세장에서 만난 한 지지자는 “세 후보 가운데 커 후보가 가장 탐욕적이지 않아 신뢰할 만하다”고 치켜세웠다.
2020년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은 홍콩 반정부 시위 당시 중국의 강경 진압에 따른 반사 효과로 당시 국민당 후보를 264만 표라는 큰 표차로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2012년 총통 선거에선 80만 표 차이로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이 당선됐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도 50만 표 안팎의 박빙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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