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대만 총통 선거…중국의 문무(文武) 개입과 미국 의심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2일 09시 52분


총통 선거 앞둔 대만…현지 전문가 인터뷰

중국의 ‘원공우허’ 선거 개입

“원공우허(文攻武嚇·문공무하)로 중국은 1996년 이후 계속 대만 선거에 개입했다.”
13일 치러지는 대만 총통 및 입법원 선거에서 최대 쟁점과 화두는 중국의 선거 개입이다. 타이베이에서 4일 만난 웡밍셴(翁明賢) 단장대 명예교수는 중국의 개입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대만이 총통을 직접 선거로 선출하기 시작한 1996년 이후 계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문무(文武)의 방법이 모두 동원됐다는 것. 문은 선전 여론전 통일전선전술 등을 지칭하고 무는 무력시위로 투표에 영향을 주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통 선거를 4일 앞둔 9일 중국은 대만 상공을 지나는 위성을 발사했고, 대만 당국은 경보를 발령됐다. 중국은 1996년 총통 선거에 나선 리덩후이(李登輝) 국민당 후보가 ‘두 개의 중국론’으로 사실상 대만 독립을 내세우자 선거 전 대만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하지만 이같은 ‘북풍(北風)’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리 총통은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2020년 현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재선된 데는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 대한 중국의 강경 대응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중국은 4년 마다 치러지는 대만 총통 선거에서 강력한 변수가 되고 있다.

웡밍셴 대만 단장대 명예교수가 4일 타이베이의 한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총통 선거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타이베이 =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민진당 후보 당선 가능성에 개입 확대” 주장

웡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더욱 중국의 개입이 격렬하고 여러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독립 성향의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정부가 8년간 집권한 데 이어 다시 민진당 이 집권하면 양안 관계는 더욱 멀어질 것이라고 중국은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만은 2000~2008년 천수이볜(陳水扁·민진당), 2008~16년 마잉주(馬英九·국민당), 2016~24년 차이잉원 총통(민진당)까지 8년씩 교대로 집권해 왔다. 차이 총통은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의 기조를 담은 ‘92공식(共識)’을 인정하지 않아 냉랭한 관계가 지속되어 왔다. 13일 선거에서 현 부총통인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 중국의 ‘원공우허’가 더욱 활발하다는 것이 웡 교수의 분석이다.

웡 교수는 중국 인민해방군 비행기가 비행금지구역에 진입하거나, 중국 당국이 비용을 내고 대만의 촌장(村長) 이장(里長)들의 대륙 방문을 진행토록 하는 것을 대표적인 선거 개입 사례로 지목했다. 다만 국민당 지지자로 타이베이에서 만난 장훙위안(張弘遠) 즈리과기대 부교수는 촌장 이장 초청 행사가 양안 교류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온 것으로 선거 개입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웡 교수도 중국이 ‘대만 독립을 지지하면 전쟁이고, 반대하면 평화’라는 원칙을 나타내고 있지만 대만 선거에서 총통 선거 외의 지방선거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풀이했다.

웡밍셴 명예교수(오른쪽)가 장영희 박사(충남대 평화안보연구소)와 4일 타이베이의 한 사무소에서 대만의 총통 선거에서 중국의 개입 논란 등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타이베이 =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웡 교수 인터뷰에 동행한 장영희 박사(충남대 평화안보연구소)는 ‘성균차이나 브리프’ 최근호에서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와 독재 사이의 선택’(민진당), ‘전쟁과 평화 사이의 선택’(국민당)의 프레임속에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독립 성향의 민진당과 친중 국민당간에 중국에 대한 태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장 박사는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면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만남을 갖고 싶다” “중국과 전제조건없이 대등하게 교류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대만독립의 아이콘’이어서 라이칭더가 집권하면 양안(중국과 대만)간 긴장은 높아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대만 선거, 미중 대리전 아니다”

일부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격화하면서 대만 총통 선거가 미중간의 대리 전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은 친중 성향의 국민당 허우여우이(侯友宜) 후보를 지지하고, 미국은 라이칭더 후보를 지지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웡 교수는 “대만은 어느 정당의 총통 후보든 모두 선거가 있기 전 미국을 방문해 조야의 인물들을 만나고, 미국이 생각하는 대만 정책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며 미국이 일방적으로 어느 후보를 지지한다는 견해에는 의견을 달리했다.
웡 교수는 “미국의 양안 정책 기조는 크게 세 가지다. 중국은 무력행사를 하면 안되고, 대만은 독립을 해서는 안되며, 양안 인민은 평화적으로 협상하고 담판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대만은 어느 후보도 독립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웡 교수는 다만 대만이 독립을 주장하지 않는 것은 법률적인 의미로 별도의 ‘대만민주공화국’이 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대만은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미중 패권 갈등의 사이에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 민진당 출신의 뤼수롄(呂秀蓮) 전 부총통은 “대만은 갈등에 개입되지 말고, 중립화의 길을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뤼 부총통은 ‘하나의 중국’이 아닌 ‘하나의 중화(中華)’를 강조한다.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나 중화민국(대만) 모두 ‘중화’가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양안도 통일이 아닌 ‘양안의 통합(integration)’을 추구해 양안의 교류를 강조한다. 이는 중국의 일국양제를 정면으로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대만인들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인식을 절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웡 교수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중국의 강대국화(强起來)를 추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풀이했다. 이는 미중 사이에서 중립 노선을 고수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웡 교수는 그렇지만 “중국과 군사적인 방면에서 오판을 피하기 위한 소통이 중요하며 중국으로 하여금 대만이 법률적으로 독립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왕훙룬 대만 중앙연구원 사회학연구소 부소장이 6일 타이베이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 =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대만의 ‘미국 의심론’(疑美論)
북핵 위협이 높아지면서 한국은 미국과의 확장안보체제에서 미국의 핵우산을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지가 큰 관심이다. 김정은이 핵으로 뉴욕과 워싱턴을 위협하면서 남한을 공격하려 할 경우 이들 도시의 희생을 무릎쓰고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할 수 있는지 이른바 ‘드골의 의심’이다.
왕훙룬(汪宏倫) 중앙연구원 사회학연구소 부소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만에서 ‘미국 의심론(疑美論)’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미중간 패권 경쟁이 치열해졌을 때 미국이 어느 정도 대만을 보호해 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의구심은 언제나 있었지만 ‘미국 의심론’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지정학적 갈등이 불거지고 미국이 개입해야 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미국의 개입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소 야대되면 견제와 심판의 의미”

왕 부소장은 이번 선거에서 총통은 민진당 후보 당선 가능성이 높지만 입법원은 야당인 국민당이 다수당이 될 것이라는 여론 조사가 나오는 것에 대해 ‘견제 심리와 심판’의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왕 부소장은 박빙의 상황이어서 결과를 봐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총통과 입법원 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선택이 다를 경우 이는 대만의 민주화 과정에서 일당 독주를 싫어했던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의회 격인 입법원 선거에서 여당인 민진당은 현재 전체 113석 중 61석, 야당 국민당은 38석을 차지하고 있으나 국민당이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국민당이 과반을 넘기지 않더라도 다수당이 된다면 이는 지난 8년 민진당 집권으로 중국과 긴장 관계가 이어지면서 불안이 커지고, 민생 경제 정책에도 불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왕 부소장은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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