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대응을 일상으로 만든 ‘日 현미경 시스템’
한국에서 참사 뒤에도 재난 반복되는 이유
日, 압사사고 6개월 만에 대책 내놔… 美, 대통령 직속 ‘재난조사위’ 운영
타임지 “韓 정치권 양극화 심해… 재난 정쟁화하는 행태 바꿔야”
“한국의 긴급 상황 처리에 대한 준비 부족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시사 주간지 타임 등 외신들은 지난해 10월 한국의 이태원 참사 1주년을 맞아 재난 이후의 한국 사회를 조명하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충북 청주시 오송의 지하차도 수몰 참사, 8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혼란 등을 거론하며 “참사 뒤에도 한국의 재난은 변함없이 반복된다”고 짚었다.
로이터통신도 “이태원 참사 1년 뒤 서울시는 참사 방지를 위해 인파 관리에 나섰지만 서울시가 아닌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는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 삼았다. 구체적 발생 원인은 다르지만 사전에 경고등이 켜졌는데도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재해 대책 마련보다는 책임자 처벌에 몰두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문현철 재난관리학회 부회장은 “재난 시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제안하고 적용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노력 없이) 개인적 책임을 묻는 수사부터 들어가는 건 문제”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여름 충북 오송 참사 등은 지금까지도 재난 원인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에 따르면 2014년 재난 원인 조사가 도입된 뒤 최근까지 사상자가 5명 이상 발생한 재난 86건 가운데 23건(27%)만 원인 조사가 이뤄졌다.
일본의 경우 축제에 모인 인파로 11명이 압사했던 2001년 아카시 참사 당시 조사위원회가 외부 재난 전문가를 중심으로 참사 열흘 만에 곧장 꾸려졌다. 6개월 뒤에는 재발 방지 대책이 담긴 보고서가 나왔다. 1년 뒤 경찰은 혼잡사고 방지 지침서를 발간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혼잡경비’ 기능이 경찰 내부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져 2005년 11월 관련법이 개정됐다.
미국은 아예 상설 ‘재난조사위원회’가 마련돼 있다. 교통사고나 화학사고 등 재난 유형별로 특화된 조사위원회를 운영해 이와 관련해서 갈등이 벌어질 여지가 적다. 대통령 직속인 재난조사위원회는 분야별로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위원회는 원인을 규명하고 유사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 권고 조치 권한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조직이 고속도로와 항공, 철도, 선박 등을 조사하는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다. 5일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던 알래스카항공의 여객기 도어 플러그 이탈 사고 역시 사고 다음 날부터 NTSB가 바로 현장 조사에 나섰다.
타임지는 지난해 10월 재난을 정쟁에 이용하는 정치권의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은 “경쟁 정당의 어떤 실수도 도약의 기회로 간주되는 ‘복수의 정치’가 만연하다”며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는 (이태원 참사 등) 재난에 대한 대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관료 조직은 물론이고 국민 전체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이 재난이 반복되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정상만 한국재난기술원장은 “지자체에 대한 안전 평가 상시화 등을 통해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며 “대책을 마련해도 지자체에 대응 능력이 없으면 무용하다. 지자체가 재난에 1차적으로 대응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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