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중국 성향이 강한 부모님 앞에서는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후보를 지지하는 척해요. 하지만 투표는 민중당 커원저(柯文哲·65) 후보에게 할 거예요.”
11일 대만 타이베이 단수이강 인근 커원저 후보의 유세 현장에서 만난 23세 대학원생 량(梁)모 씨(여)는 “민진당과 친중 성향인 제1야당 국민당 모두 집권 기간 동안 주택, 임금, 연금 등 민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했다. 또래 친구 중에서도 커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며 “민진당과 국민당은 각각 반중, 친중이라는 이념 대립에만 골몰한다. 양당 체제를 깨고 생활 수준 향상을 도모할 제3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까지 국민당을 지지했지만 역시 이번 선거에서는 민중당을 지지하겠다는 식당 주인 천(陣)모 씨(36)는 2014~2022년 타이베이 시장을 지낸 커 후보가 당시 더럽고 노후한 ‘난먼(南門)’ 재래시장을 현대화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그는 “이전 시장들은 손도 못 대던 곳을 커 후보가 성공적으로 탈바꿈시켰다. ‘난먼의 성공’은 이념 장사에 빠진 양대 정당이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하는 민중당을 택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 커 후보, 득표율 20% 넘길지 관심
13일 대만에서는 대선 격인 총통 선거와 113명의 입법위원(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동시에 치러진다. 투표는 오전 8시(현지 시간)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된다.
1996년부터 총통 선거가 직선제로 치러진 후 민진당과 국민당은 권력을 양분하며 확고한 양당 체제를 구축했다. 제3정당 출신의 총통 후보에 대한 관심도 미미했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세 차례의 대선에 모두 나선 친민당의 쑹추위(宋楚瑜) 후보는 2016년 대선을 제외한 나머지 두 차례의 대선에서 모두 5% 미만 득표율을 얻었다.
올해 대선은 커 후보의 선전으로 확연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해 말 롄허보 조사에 따르면 커 후보의 지지율은 21%를 기록했다. 13일 선거에서도 제3정당 후보 최초로 득표율 20%를 넘길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그의 지지자들은 민중당의 선거 구호 ‘약속을 지킨다(Keep Promise)’의 약자인 ‘KP’를 두고 ‘커원저 총통(Ko Wen-Je President)’이라고 외친다.
11일 롄허보는 민중당 또한 이번 총선에서 4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의석을 얻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현재 입법원 113석 중 5석만 차지하고 있지만 이번에 두자릿 수 의석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커 후보가 총통 선거에서는 당선될 확률이 낮다는 점을 알면서도 허우유이(侯友宜) 국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하지 않고 완주를 선언한 것 또한 일단 의회 권력을 다져 차기 대선을 노리려는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통신 등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대만 유권자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를 ‘경제’(34.2%)로 꼽았다. ‘양안(兩岸·대만과 중국) 관계’는 18.1%에 그쳤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커 후보 또한 12일 외신 기자 인터뷰에서 “그간 총통 선거에서 민생 문제가 외면당했다”며 자신이 집권해야 낮은 임금, 비싼 집값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전·현직 총통도 출동
민진당과 국민당에서는 각각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 또한 유세에 나서 각각 라이 후보와 허우 후보를 지원했다.
차이 총통은 11일 타이베이 도심 유세에 라이 후보와 같이 나타났다. 차이 총통은 라이 후보의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나를 믿는다면 라이 후보를 찍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같은 날 중부 타이중 유세에서는 “나는 이미 ‘국가 운영’이라는 자동차의 열쇠를 라이 후보에게 넘겼다”고 했다.
마 전 총통은 허우 후보를 칭찬하는 것보다 라이 후보를 직접 공격하는 데 주력하며 “라이 후보가 당선되면 대만의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최근 마 전 총통이 “대만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믿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 반중 성향 유권자를 결집시키는 바람에 그의 유세가 오히려 허우 후보의 지지율을 깎아먹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투표 하루 전날인 12일 거대 양당은 타이베이 인근 신베이 유세에 주력했다. 두 정당은 약 1km도 안 되는 곳에서 마지막 유세를 벌이며 지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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