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소프트파워 강국’ 놓고 겨루는 UAE와 카타르
2017년부터 기술 개발 발판 다져… 세계 첫 AI 부처에 20대 장관 발탁
지난해 7월엔 ‘팰컨180B’ 선보여… 거대언어모델로 구글에 도전장
최초의 아랍어 AI ‘자이스’도 출시, ‘챗GPT 아버지’ 올트먼도 UAE에 관심… 국영 AI 기업 G42와 파트너십 체결
《‘오일머니’에만 의존하는 중동 주요국과 달리 산업 다각화에 비교적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가 또 다른 도약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UAE는 인공지능(AI), 카타르는 대형 스포츠 행사 개최 및 관광업을 새 먹거리로 삼아 서구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중동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 예멘 시아파 반군 ‘후티’의 민간 선박 공격 등으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다. 두 나라는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이에 영향받지 않는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11월과 12월 각각 UAE 아부다비와 카타르 도하를 방문해 이 열기를 직접 취재했다.》 지난해 11월 14일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미디어산업 박람회 ‘글로벌 미디어 콩그레스(GMC) 2023’ 현장. 이곳에서는 AI 기반 미디어 솔루션을 선보이는 UAE의 국영 통신사 ‘WAM’ 측의 설명이 한창이었다.
이날 WAM은 AI를 탑재한 자체 개발 콘텐츠관리시스템(CMS)을 선보였다. 박람회 부스에서는 CMS 개발에 참여한 여성 개발자 3명이 방문객에게 사용법을 시연했다. 한 개발자는 “AI가 작성한 초고를 바탕으로 기자가 자신의 취재 내용을 더해 기사를 출고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기사의 밑작업을 AI가 담당해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고, 여기에 인간 기자만이 할 수 있는 취재를 통해 녹여낸 정보를 더해 품질을 높인다는 의미다. 그는 “상당수 WAM 기자들이 이미 AI 기능을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간 UAE는 두바이, 아부다비라는 중동의 양대 허브도시를 보유한 물류 강국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기자가 직접 찾은 UAE 현지에서는 AI 강국이 되려는 열기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 2017년 세계 첫 ‘AI 부처’… 20대 장관 발탁
UAE는 2017년 세계 주요국 최초로 AI 전문 부처를 신설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장으로 재직 중인 오마르 빈 술탄 알올라마 AI·디지털경제·원격근무 특임장관(34)은 당시 27세에 장관에 올라 놀라움을 안겼다. 알올라마 장관은 UAE 내 샤르자 아메리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총리실 등에서 근무한 공무원 출신이다.
알올라마 장관은 19일 미 시사매체 타임 기고를 통해 취임 직후 만났던 한 외국 고위 인사가 한 말을 공개했다. 당시 그의 부모뻘이었던 이 인사는 “AI라는 가상기술을 규제하기 위한 부처를 세운 것도 놀라운데 아들뻘 되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했다. UAE가 시간과 자원이 남아도는 것이냐”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7년이 흐른 지금 알올라마 장관의 나이와 경력을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UAE 정부 산하 기관인 아부다비첨단기술연구위원회(ATRC)는 지난해 5월 자체 개발한 고성능 AI ‘팰컨40B’를 공개했다.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이다. 두 달 후 출시한 차기작 ‘팰컨180B’는 구글의 ‘LLM 라마2’와 맞먹는 성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 반응도 뜨겁다. 팰컨40B는 1200만 회 이상 다운로드돼 ‘오픈소스’ LLM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사용하려는 특정 기업이나 개인이 ATRC에 민감한 정보를 넘길 필요도 없다. 직접 팰컨의 코드를 내려받아 자체적으로 활용하면 된다. 알올라마 장관은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 인터뷰에서 팰컨40B의 성공을 두고 “20년 투자의 결실”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8월에는 UAE의 AI 국영기업 ‘G42’가 최초의 아랍어 LLM ‘자이스’를 출시했다. G42는 자이스 출시를 위해 UAE의 AI 전문 대학 ‘MBZUAI’, 미 AI 반도체 스타트업 ‘세레브라스’ 등과 협력했다. 티머시 볼드윈 MBZUAI 교수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영어로 구동해도 구글 등 타사 LLM에 준하는 경쟁력을 갖는다”고 자신했다. 세계 4억 명의 아랍어 사용자에게 상당히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도 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 AI 국가 지위를 놓고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UAE가 유력 주자로 부상했다”며 영국 등 AI 강대국을 꿈꾸는 서구 선진국의 관심과 부러움을 동시에 사고 있다고 평했다.
● 올트먼도 UAE 주시
‘챗GPT의 아버지’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또한 최근 UAE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일 블룸버그통신은 “올트먼이 AI용 반도체 생산을 위한 파트너를 찾기 위해 G42, 일본 소프트뱅크 등과 만났다”고 보도했다. 이어 올트먼이 G42로부터 최대 100억 달러(약 13조4000억 원)의 투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G42는 아부다비 국부펀드 무바달라의 투자금 등을 받아 2018년 아부다비 정부가 설립했다.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3위 기업인 미 글로벌파운드리 또한 무바달라가 소유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최근 올트먼이 접촉한 상대는 타흐눈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국가안보보좌관 겸 G42 회장(53).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의 친동생이며 경제 실권자로도 꼽힌다. 특히 비(非)석유 부문의 신사업 개발을 도맡고 있다.
타흐눈 보좌관은 UAE 최대 국부펀드 아부다비투자청(ADIA), 최대 상장사 인터내셔널홀딩컴퍼니(IHC), 최대 은행 퍼스트아부다비뱅크 등 돈줄 5곳을 관장하고 있다. 그가 굴리는 자금만 약 1조7390억 달러(약 2316조 원). 1990년대부터 아부다비의 통치 가문인 나하얀 일가의 재산을 관리해 2022년 기준 3000억 달러(약 401조5500억 원)로 불린 수완가다.
올트먼과 타흐눈 보좌관은 AI 합작사 설립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를 위한 작업의 암호명은 ‘티그리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이며 이라크 등을 관통하는 티그리스강의 이름을 땄다.
G42와 올트먼의 동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G42와 오픈AI는 파트너십을 체결해 중동 시장을 겨냥한 AI 제품을 선보이기로 했다. G42는 “자사의 금융, 에너지, 헬스케어, 공공서비스 분야 AI 제품에 오픈AI의 생성형 AI 모델을 접목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AI 시장을 선도하는 오픈AI와의 협력을 통해 G42는 관련 제품을 고도화할 수 있다. 오픈AI 또한 중동 시장에서 AI 상용화 경험을 쌓고 이슬람권 전체를 넘보기 시작했다.
올트먼 CEO는 지난해 6월에도 아부다비를 찾아 UAE의 선구안을 칭찬했다. 그는 “지금이야 모두가 AI 열풍에 탑승했지만 UAE는 세상 누구도 AI의 잠재력을 믿지 않았을 적부터 알아봤다”며 “각별한 감사함을 느낀다”고 추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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