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는 ‘붉은 해변’으로 불리는 지역들이 있다. 붉은 해변은 중국군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해안 상륙 작전 교두보로 삼을 가능성이 큰 대만 해변 요충지 14곳을 말한다. 대만군은 지난해 말 타오위안 해변에서 육군 6군단 예하 부대를 동원해 대규모 실전 훈련을 실시했다. 이곳은 수도 타이베이시와 신베이시가 인접한 지역으로 타오위안국제공항과 육군사령부 등 핵심 인프라가 자리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침공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만군은 붉은 해변 지역을 20곳으로 확대했다.
“中, 통일 명분으로 침공 가능”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이 대만 독립 노선을 적극 추진할 경우 중국이 무력 통일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할 브랜즈 미국 존스홉킨스대 고등국제문제연구소 교수는 “중국이 통일을 명분으로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며 “중국은 최소 5가지 전략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랜즈 교수가 제시한 중국의 5가지 전략 가운데 마지막이 ‘전면 침공’이다. 브랜즈 교수는 “중국의 본격적인 침공은 대만군과 주요 기반 시설에 대한 대규모 공습 및 파괴, 대만 지도자 암살 시도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과의 대결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는 증거는 없다”면서도 “시 주석이 전면 침공 같은 충격적인 일을 시도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중국군은 대만 총통 선거 직후인 1월 17일 동부전구 소속 항공기와 군함을 대거 동원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중국군은 Su-30 전투기, Y-8 대잠초계기 등 공군기 18대를 대만 인근 지역으로 출격시켜 군함들과 합동 전투준비태세 훈련을 실시했다. 중국군 전투기 11대는 사실상 군사분계선인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기도 했다. 중국 군용기가 대만해협 중간선을 침범한 것은 1월 13일 실시된 대만 총통 선거 이후 처음이다. 대만해협 중간선은 1954년 12월 미국과 대만 간 상호방위조약 체결 후 선언된 양안의 비공식 군사분계선이지만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만군은 어느 때보다 중국군의 침공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대만 국방부 싱크탱크인 국방안전연구원(INDSR)은 총통 선거 직전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군이 동원하는 상륙작전 병력이 1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우시푸 국방안전연구원 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중국군이 대만 상륙을 결정하면 먼저 공습과 미사일 공격으로 대만군 지휘통제 시스템을 마비시킬 것이고, 공항·항만 같은 주요 인프라와 산업시설 등도 파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만 국방부도 “중국과 전쟁이 발발하면 모든 곳이 전쟁터가 될 것”이라면서 “전장의 전후방 구분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에선 라이칭더 당선인에 대한 중국의 강경 입장을 볼 때 자칫 대만 침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월 14일 “대만 독립은 대만 동포의 안녕을 위협하고, 중화민족의 근본 이익을 훼손하며,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끊어진 길이자 죽음의 길”이라고 밝혔다. 왕 부장의 발언은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분석이 많다. 사실상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며 위협한 것이다.
2가지 갈등 시나리오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경우 세계경제에 ‘최악의 재앙’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경제연구기관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 경우’와 ‘중국이 대만 봉쇄에 나선 경우’ 등 2가지 시나리오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고 미국이 개입한 경우 세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10조 달러(약 1경3000조 원)가 감소하는 경제적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그래프 참조). 이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과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 당시 피해보다 2배 이상 큰 규모다. 이 경우 대만이 입는 경제적 피해는 GDP의 40%에 달할 것이며, 해안에 집중된 대만 산업시설은 전쟁 중 대부분 파괴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TSMC 등 굴지의 대만 반도체 업체들이 전쟁으로 입을 타격이 엄청날 것”이라면서 노트북, 태블릿PC, 스마트폰 생산라인이 멈추고 저가형 반도체를 쓰는 자동차 등 다른 부문들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쟁 당사국인 중국의 경제적 피해는 GDP의 16.7%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등 주요 무역 상대국과 관계가 단절되고, 첨단 반도체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미국 역시 애플 등 주요 기업의 공급망이 중국·대만과 밀접하게 엮인 만큼 전쟁으로 GDP의 6.7%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됐다.
주목할 점은 한국이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피해 규모다. 한국은 경제적 피해 규모가 GDP의 23.3%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전쟁 당사국인 대만에 이어 두 번째로 심각한 수준이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이 파장은 산업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
북한 개입 가능성 有
주한미군이 전쟁에 차출될 경우 중국이 주한미군 기지를 공격할 가능성도 더해진다.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다음 전쟁의 첫 전투(The first battle of the next war)’라는 보고서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과 중국, 대만, 한국, 일본 등 관련국 모두 물적·인적 손실을 떠안게 된다고 분석했다. CSIS는 미국이 주한미군의 4개 전투비행대대 중 2개 대대를 차출해 대만에 투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중국이 해군을 대규모로 동원해 대만을 포위한다면 미군이 이곳과 가까운 한국 오산 공군기지와 군산 공군기지, 제주 해군기지 등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한국 의사와 별개로 주한미군이 전쟁에 개입했더라도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보복에 나설 수 있다고 예측했다. 최악의 경우 한중 무력 충돌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주목할 점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북한이 한국과 전쟁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엘브리지 콜비 전 미국 국방부 전략개발담당 부차관보는 “중국이 미국과 전쟁을 벌이기로 각오하고 대만을 침공한다면 북한을 부추겨 한반도와 주한미군 등에 문제를 일으키도록 만들어 전선을 2개로 늘리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버트 갈루치 미국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도 “미국과 중국이 대만 문제를 놓고 대치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의 독려로, 혹은 독려가 없더라도 한국에 핵 위협을 가해 중국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중국이 전쟁 없이 대만을 1년간 전면 봉쇄하는 두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 GDP 감소 규모가 대만(12.2%), 중국(8.9%), 세계경제(5%), 미국(3.3%) 순으로 높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 경우 세계경제가 대만 반도체에 대한 접근성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되지만 아시아 해운 중단, 금융시장 붕괴 등 여타 충격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훙쩐 비상임 선임연구원은 “대만은 전 세계 반도체의 63%, 첨단 반도체의 73%를 공급하는 글로벌 교역의 중요 국가”라며 “부분적인 해상 봉쇄만으로도 반도체 가격과 국제 공급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 투자컨설팅 회사 인디펜던스 스트래티지도 “앞으로 일어날 분쟁 유형은 대만에 대한 디데이(D-day) 식 상륙 작전이 아니라 혼란과 봉쇄가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대만 침공이 아닌 봉쇄만으로도 수요 감소, 인플레이션 상승 등 전 세계경제에 최악의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 역시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한국 무역 물동량의 43%가 대만해협을 통과하고, 수출입 화물의 99%가 선박으로 운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4연임도 변수
서방 전문가 대부분은 앞으로 양안 및 미·중 관계가 더욱 악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라이 당선인의 임기 중인 2027년 10월 시 주석의 4연임을 결정하는 제21차 중국공산당 대회가 열린다는 점도 변수다. 에반 메데이로스 조지타운대 교수는 “향후 5년간 미·중 및 양안 관계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대만해협 내 무력 충돌 리스크는 향후 일상화될 전망이다. 중국은 미국의 지원 의지와 억제력 등을 면밀히 검토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할지, 그렇다면 시기와 방법은 어떻게 할지 등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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