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시장 일각의 3월 금리 인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 주요 물가상승률 지표는 이미 연준의 목표 범위인 2%대에 들어섰지만 ‘라스트 마일(last mile·목표에 이르기 전 최종 구간)’에서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겠다는 신중론을 택한 것이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4회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연준은 이후 성명과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신중론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2%대로 지속 가능하게 내려가고 있다는 자신감(confidence)이 필요하다”고 수차례 밝혔다. 연준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한국은행도 인플레이션 완화에 대한 확신이 들기 전까진 긴축 긴장을 풀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 “인플레 2% 자신 전엔 금리 인하 없다”
이날 파월 의장은 약 20차례 물가 안정에서의 자신감을 언급했다. 기자회견의 주요 키워드로 ‘자신감’이 꼽힐 정도로 신중론을 강조했다. 연준은 FOMC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도 ‘금리 인상은 없겠지만 즉각적 인하도 피하겠다’는 시각을 담았다.
연준이 중시하는 물가지표인 지난해 12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이 2.9%로 2%대에 진입했음에도 물가 하락 수준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언제 자신감이 생기느냐’는 질문이 쏟아지자 파월 의장은 “최근 6개월 치 물가 데이터는 좋은 신호였다. 더 나은 지표가 아니라 (최근처럼) 좋은 지표가 더 필요하다”며 “올해 어느 시점에선 금리를 내리겠지만 아직 승리를 선언할 순 없다. 매우 중요한 결정이라 제대로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경제 성장세가 강력한 데다 중동에서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너무 빨리 금리를 내렸다가 물가가 다시 오르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확실히 피하겠다는 의미다. 파월 의장은 인하 시점을 두고 “위원들 간 견해차가 컸다”면서 “오늘 토론을 바탕으로 볼 때 3월 회의까지 (물가 안정) 자신감에 이를 것 같지 않다”며 3월 인하 카드를 제외했다.
파월 의장이 시장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자 나스닥지수는 2.23% 떨어져 지난해 10월 이후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달러 가치도 최근 7주 고점 수준으로 높아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 선물 투자자들도 FOMC 이후 5월 인하 가능성을 90%대로 평가하고 있다.
● ‘라스트 마일 리스크’ 경계하는 한은
이창용 한은 총재(사진)는 1일 ‘한국최고경영자포럼’에서 “미국의 성장세가 강하다 보니, 연준이 금리를 금방 내리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통화정책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금리를 내리는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요국의 통화정책과 물가, 금융안정 데이터를 확인하며 긴축 기조는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라스트 마일’ 경계심을 높여가며 금리 인하 시기를 저울질하겠다는 것이다.
한은은 올 들어 라스트 마일 리스크를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이 총재는 지난달 신년사에서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등산에서 정상 직전의 오르막길 또는 마라톤에서의 마지막 구간, 즉 라스트 마일이 가장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물가 안정을 이뤄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지난달 2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역사적으로 물가 안정 기로의 진입에 실패한 사례를 보면 큰 폭의 인플레이션 충격 이후 라스트 마일 리스크에 대한 부주의로 정책 당국이 성급하게 완화 기조로 전환한 사례가 다수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연준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으로 한은은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3.5%로 9번 연속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환율 불안정성 등의 이유로 한은이 연준보다 앞서 금리를 인하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