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지?’ ‘우리와는 어떻게 다르지’ 국내외 뉴스 속 궁금증을 콕 짚어 새로운 시각에 적응시켜 드립니다.
“마지막 줄에 숫자가 ‘마이너스’로 나와야 돌려받는 거지? 맞지?” 이 회사에 들어온 지 햇수로 두 자릿수가 됐는데도 여전히 동기 채팅방에는 이 시기마다 똑같은 질문이 올라옵니다. (알면서도 물어보는 것이겠지만요.)
해도 해도 헷갈리는 2023년도 귀속 연말정산의 시즌도 슬슬 마무리되어 갑니다. 과세 체계는 복잡하지만, 납세자 입장에서는 절차 자체는 꽤 간편하게 느껴집니다. 국세청에서 제공하는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를 이용하면 클릭 몇 번으로 웬만한 건 마무리되니까요.
필요한 서류를 인사팀에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 국제부 기자로서 자연스러운 궁금증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연말정산이 있을까요?
찾아보니 마침 미국에서는 지난달 29일(현지 시간)부터 4월까지 세금신고서 접수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제도가 있다고 하고요. 전 세계에서 복잡한 세금신고 때문에 머리를 싸매는 사람이 많다는 소식도 많이 올라오네요. 해외 각국의 ‘세금 시즌’의 모습을 둘러봤습니다.
DIY 세금신고, 미국의 ‘택스 시즌’
우리나라의 직장인 납세자가 연말정산을 하려면 우선 홈택스에 접속한 뒤→ 내역을 뽑아서→ 서명본을 회사에 제출하면 됩니다. 대부분의 정보가 이미 전산상에 입력돼있고, 이후의 복잡한 일도 거의 원천징수자, 즉 회사의 책임입니다.
“연말정산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것 같은데요. 한 해의 합산 소득을 산출하는 과정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뤄지죠. 하지만…. 쉽게 말해 우리나라처럼 연말정산을 ‘회사에서 다 해주는’ 나라는 거의 없어요. 소득세 세율구간이 매우 단순한 영국에서는 전 과정을 ‘나라가 해주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 사실상 연말정산 제도가 없는 셈이고요. 반면 미국 같은 경우엔 정부에서 해주는 게 없다고 봐도 무방해요.”
무슨 말일까요? 미국은 회사가 아니라 납세자 본인이 직접 지난 1년간의 소득을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터보택스’ 등 세무 프로그램을 직접 구입하거나, 수백 달러의 비용을 내고 세무사무소를 찾아야 하는 것이죠.
미 국세청에서 올해부터 온라인 무료 세금 신고 웹사이트를 운영하긴 합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직은 상당수 납세자가 이 프로그램의 적용 대상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며 “터보택스 킬러가 되려면 멀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미국 언론에는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 ‘택스 시즌(tax season)을 맞는 납세자의 자세’에 관한 수많은 정보성 기사가 올라옵니다. 여전히 온라인 대신 우편으로 접수되는 세금 관련 서류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온라인 접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만,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인터넷 접속이 원활하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도 적잖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연방 국세청에 도착한 세금신고 관련 서류가 지난해에만 2600만 건에 이릅니다. 전국 지부에 보관된 종이는 다 합하면 10억 장이 넘고, 보관 비용만 연간 4000만 달러(약 532억 원)라고 합니다. 한 국세청 관계자는 미 CNN방송에 이렇게 자조했습니다. “여긴 그야말로 전설 속 서류의 땅이에요.”
문제는 이렇게 접수된 종이 서류들을 직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전산에 입력해왔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 아니라, 틀리는 일도 많았습니다. 2021년엔 종이로 접수된 세금 신고건 중 약 22%에서 전산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팬데믹 기간엔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는 통에 서류 처리가 1년 가까이 늦어졌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납세자들은 세금신고 후에 환급을 받아요. 신고서 처리가 늦어진다는 건 국민들이 진작 받아야 했을 환급금을 제때 못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집세나 식료품, 의약품에 쓸 돈이 부족해지고, 어떤 사람들은 주택자금이나 학자금 대출을 못 받게 되는 거죠.”
세계 1위 경제 대국인데도 납세 방식이 이렇게 시대에 뒤처진 이유는 뭘까요? CNN은 ‘동네북’ 같은 국세청의 예산 삭감이 주된 원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미 의회예산처에 따르면 국세청 예산은 2010년에서 2018년 사이에 20% 깎였고, 직원 22%가 해고됐습니다. ‘국민의 혈세’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22년엔 민주당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국세청에 800억 달러의 예산을 증액했습니다. 고소득 납세자들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세금을 징수하고, 구식 시스템을 개선해 ‘페이퍼리스 세금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명목입니다. 하지만 공화당은 이번에도 이 예산이 중산층 납세자들과 중소기업을 괴롭히는 데에 쓰일 것이라며 통과를 막았습니다.
양당의 기 싸움 끝에 지난해 600억 달러로 합의가 이뤄졌고, 이 돈으로 지난달까지 고속 스캐너 132대를 구매했다고 하네요. 전국에 흩어진 10억 건의 서류를 내년까지 모두 전산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스캐너를 사더라도, 봉투를 뜯고, 접힌 가장자리를 펼치고, 스테이플러 심을 손으로 제거해 분류하는 건 사람의 일입니다. 스캔뿐 아니라 접수단계부터 완전한 전산화를 이루겠다는 ‘페이퍼리스’ 계획은 무탈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일본에 연말정산 도입된 계기는 전쟁?
일본은 우리나라와 가장 체계가 비슷합니다. 연말정산 대신 ‘연말조정’과 ‘확정신고’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이 시스템의 유래가 꽤 인상적입니다. 바로 전쟁입니다.
1937년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략하면서 중일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많이 필요하죠. 국민들에게 많은 세금을 한 번에 확보하려면 추후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은 불리합니다. 그래서 1940년 원천징수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엄청난 인플레이션이라는 후폭풍이 몰려왔습니다. 전년도를 기준으로 세액을 계산해버리면 올해 기준으로는 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세수가 확 줄어듭니다. 정부로선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연간 소득을 미리 견적 내서 연중에 세금을 징수하고, 연말에 최종 세액을 조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일본 국세청은 홈페이지에 “자주(自主)신고, 자주납세가 전후의 민주주의에 적합한 제도로 받아들여졌다”는 배경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일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오는 주제이지만, 일본 특유의 ‘아날로그성’은 연말정산에서도 많이 드러납니다. 우선 현금 사용률이 높다보니 실제 번 돈 가운데 국세청이 파악한 소득의 비중을 뜻하는 ‘과세포착률’ 문제가 고질적으로 제기됩니다. ‘도고오산(十五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요, 급여소득자는 세금을 10할(100%) 내지만, 자영업자는 5할, 농업종사자는 3할만 낸다는 뜻입니다. 실제보다 다소 과장된 숫자입니다만 ‘유리 지갑 봉급쟁이’들의 불만이 느껴집니다.
신고과정에도 납세자가 수기로 입력할 부분이 상당합니다. 일본 도쿄의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이상권 씨(63)는 일본에서 몇 년째 살고 있는데도 확정신고에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본에선 의료비를 연간 10만 엔 이상 지출하면 초과분에 대해 의료비 공제를 받을 수 있는데, 이게 특히 스트레스라고 하네요.
“국민건강보험협회(우리나라의 건강보험공단에 해당)에서 매년 의료비 사용내역(医療費のお知らせ)를 보내주는데, 1~12월 전체 사용 내역이 아니라 10월까지 정도의 일부 내역만 보내주고, 그것도 전자 파일이 아니라 인쇄본이에요.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엑셀 파일 양식을 다운받아서 1년치 영수증을 보며 날짜, 외래 여부, 의료기관명, 금액을 일일이 입력해야 하니 시간이 꽤나 걸리지요.”
이상권 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아프지 말고 병원도 가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만 듭니다. 물론 일본 전자주민등록증인 ‘마이넘버 카드’를 사용하면 자동입력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병원이나 약국에서 마이넘버 카드를 사용한 국민은 4.29%에 그쳤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는 기존의 종이 의료보험증 발행을 올해 가을 종료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마이넘버 카드 이용율은 하락세가 8개월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산오류 등이 잇따르면서 많은 국민들이 불안감 때문에 전자신분증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거죠.
세금 신고서 접수도 전산이 아닌 우편으로 제출하거나 직접 세무서를 방문해서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마다 2, 3월이면 세무서 앞에 특별 신고창구가 임시로 십수 개씩 만들어지고 인산인해라고 하네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세금 제도, 브라질
남미 최대의 경제대국 브라질도 연말정산을 실시합니다. 갑자기 웬 브라질이냐고요? 세계에서 세금 징수체계가 가장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나라이다 보니 한 번 정도 소개하고 싶었거든요.
브라질은 연방정부뿐 아니라 각 주(州)와 기초자치단체도 소비세를 자율적으로 부과할 권한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땅덩어리도, 경제규모도 큰 브라질의 기초 지자체는 무려 5570개에 이릅니다.
세계은행(WB)은 기업이 각 나라의 세법을 준수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을 추산합니다. 국가별 세금 체계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입니다. 2019년 전 세계 평균은 연간 234시간이었습니다. 브라질은 1501시간으로, 무려 6배에 이릅니다.
영국의 경제전문매체인 이코노미스트가 지난달 29일 낸 보도에 따르면, 브라질에서 세금 공제와 관련해 법적 절차를 밟고 있는 사건들의 경제적 가치는 약 1조 달러가 넘습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330조 원, 브라질 국내총생산의 75%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익히 알려진 미국의 신발 회사 크록스를 예로 들어볼까요. 이 회사는 세금을 감면받기 위해 크록스 신발을 ‘갑피가 고무나 플라스틱으로 된 신발’이 아닌 ‘슬리퍼’로 인정받으려는 법적 공방을 2015년부터 이어가고 있다고 하네요. 회사별로 이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니, 골치 아픈 일이죠.
그랬던 세금 제도가 올해부터야 비로소 간소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지난해 12월 브라질 의회에서 지자체의 재량권을 줄이고 시스템을 간소화하는 내용의 소비세 개편안이 통과된 것입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개편안이 통과되자 기립박수를 치며 “역사적”이고 “혁명적”인 “기적”이라고 치하했습니다. 30년 넘게 이어져왔던 개혁 시도들을 생각한다면 온갖 수식어를 붙이는 마음을 이해할만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개혁다운 개혁이 되려면 아직 남은 과제가 많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여전히 수많은 세금면제 조항들을 정리하는 것”이 다음 숙제라며 룰라 대통령이 추진하는 이번 구조개혁이 향후 각종 로비 단체들의 큰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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