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핵심 경제 참모’로 꼽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3일(현지 시간) 보호무역론을 펼치기 위해 한국 철강을 사례로 거론했다. 한국이 값싼 전력이나 철광석, 다른 자연적 이점을 갖지 못했는데도 철강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린 배경에는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이날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자유무역, 그 이후(After Free Trade)’에서 “무역에서의 비교우위는 산업정책, 보조금, 무역 규제를 통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미 대선에서 재집권할 경우 미 제조업을 되살리기 위해 1기 당시의 보호무역과 고율관세 기조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 승리 시 차기 행정부에서 유력한 재무장관 후보로 꼽히는 그가 불 지핀 보호무역주의를 놓고 미 보수 진영에서도 격론이 이어지고 있다.
● “무역정책은 美 노동자에 도움 돼야”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대중(對中) 강경책을 이끈 데 이어 트럼프 2기 집권 계획 마련에서 통상 분야를 총괄하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그가 지난해 6월 고율 관세와 무역 장벽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아 펴낸 ‘공짜 무역은 없다(No Trade Is Free)’는 미국은 물론이고 각국 통상 당국자들이 주목하는 저서가 됐다.
그는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이 저서에 대한 비평에 답하는 형식으로 “미 무역정책은 미 노동자들이 좋은 보수를 받는 일자리를 찾고 유지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십 년간 미국이 펼쳐온 자유무역 정책은 기업의 이익에만 중점을 뒀다”며 “그 결과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수조 달러의 무역 적자가 누적됐다”고 비판했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무역에서의 비교우위는 전적으로 정부 정책의 결과”라며 한국 철강 산업과 대만의 반도체 산업 등을 대표적 사례로 꺼냈다.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를 지칭해선 “대만 정부의 보조금과 세금 감면 덕”이라고 주장했다. “국가 개입을 통해 미 제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처럼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폐지는 물론이고, 10%의 보편적 기본관세 부과 등의 파격적인 보호무역 공약을 내놓고 있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의 최근 발언들은 향후 통상 공약에서 이런 기조가 더욱 강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트럼프 보호무역론’ 놓고 보수 진영 격론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의 주장은 보수 진영 내 뜨거운 논쟁을 촉발시켰다. 보수 경제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는 1월 2일 새해 첫 사설에서 “무역전쟁은 어리석은 짓이며 고통스러운 보복을 불러올 뿐”이라고 그를 직접 겨냥했다. 공화당 필 그램 전 상원의원과 자유주의 성향의 도널드 J 부드로 미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일주일 뒤 공동 기고문에서 보호무역은 물가 상승을 불러 수백만 명의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고 지적했다.
중국 경제 전문가인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고든 핸슨 교수도 13일 포린어페어스 맞기고를 통해 “중국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대신 더 대담한 무역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보호무역의 역효과를 지적했다. 또 “대만의 반도체 경쟁력은 보조금이나 세금 감면보다는 공학 고등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한 결과”라고 반박했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만든 정책보고서 ‘프로젝트 2025’에서 자유무역을 지지한 켄트 래스먼은 “트럼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미국이 희생당하고 있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며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 등 매파 참모들은 이 믿음을 활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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