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政敵)으로 꼽히는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48)가 16일(현지 시간) 감옥에서 의문사한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명확한 사망 이유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시신의 행방 또한 묘연하기 때문이다.
나발니의 측근들은 “그가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살해됐고 당국이 시신을 은폐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 러시아 정보요원이 나발니의 사망 이틀 전 그가 수감된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를 찾아 내부 페쇄회로(CC)TV를 껐으며, 그의 사망 시각이 조작됐다는 보도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에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등 서방 주요국 정상은 러시아 당국의 투명한 정보 공개를 촉구했다. 러시아 현지에 사실상 마지막으로 남은 푸틴의 정적이었던 나발니를 추모하는 집회도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푸틴 정권은 러시아 내 추모 인파 수백 명을 체포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며 추모 움직임을 차단하고 있다.
● 시신 행방 묘연… “정보요원, 교도소 CCTV 끊어”
나발니는 16일 ‘북극의 늑대’라고 불릴 만큼 혹한으로 악명 높은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에서 돌연 사망했다. 연방 교정청은 그가 산책 후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고만 밝혔을 뿐 며칠 째 정확한 사망 이유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당국은 그의 사망 직후 관영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사인을 ‘혈전’이라고 밝혔다. 정작 나발니의 모친에게는 “아들이 ‘돌연사 증후군’으로 숨졌다”고 했다. 이에 BBC 등은 뚜렷한 원인 없는 급사를 가리키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용어가 돌연사 증후군이라고 꼬집었다. 그의 모친은 아들의 시신이 교도소 인근 살레하르트 마을로 옮겨졌다는 말을 듣고 해당 마을을 찾았다. 그러나 당국은 “영안실 문이 닫혀 있다”는 이유로 시신을 보여주지 않았고 아직까지 시신의 행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나발니의 죽음을 전후해 수상스러운 정황도 속속 제기되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러시아 정보기관 연방보안국(FSB) 요원들이 14일 교도소를 방문해 일부 보안 카메라, 도청 장치 연결 등을 끊었다고 보도했다.
사망 시각을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국이 밝힌 그의 공식 사망 시각은 16일 오후 2시 17분이나 교도소는 불과 2분 만에 관련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교도소에서 약 1900km 떨어진 수도 모스크바의 러시아 대통령실(크렘린궁) 또한 사망 7분 만에 이를 언급했다. ‘사전 계획된 죽음’이라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대표적 반정부 언론 노바야가제타는 수감자들을 인용해 “해당 감옥에서는 이미 16일 오전 10시에 나발니 사망 소식이 퍼졌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021년 수감된 나발니가 수감 기간의 4분의 1 이상을 ‘냉동 감방’에 갇혀 있었다며 “그가 ‘슬로 모션(slow motion)’으로 사형당할 것이란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됐다”고 전했다.
● 바이든 “푸틴과 깡패들” vs 러 “용납 못 해”
나발니 사망을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16일 “나발니의 죽음은 푸틴과 그의 깡패들이 한 행동의 결과”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등도 “그가 푸틴 대통령과 그의 정권에 의해 살해당했다”며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반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완전한 광기”라며 반발했다.
푸틴 정권의 탄압 분위기에서도 러시아 곳곳에서는 추모 열기가 퍼졌다. 로이터통신은 인권 단체인 오비드인포(OVD-info)를 인용해 32개 도시에서 적어도 400명 이상이 구금됐다고 전했다. 이는 2022년 9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예비군 동원령 반대시위에서 1300여 명이 체포된 뒤 최대 규모다.
나발니의 죽음으로 러시아 내 반정부 활동은 사실상 끝났으며 다음달 15~17일 치러질 대선 또한 푸틴 대통령의 5선을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일말의 반대파조차 용납하지 않은 푸틴 정권의 통치 방식에 대한 전세계적인 비판 여론은 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현지 독립 언론 메두자는 “푸틴 대통령이 (서방으로부터) 다시 손에 피를 묻힌 독재자 겸 살인자로 불릴 것”이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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