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내 번지는 자강론]
유럽 최대 방공생산 佛공장 르포
우크라戰 사용 군용 레이더 ‘GM200’… “주문전부터 생산, 2배 확대 검토”
트럼프 ‘나토공격 용인’ 압박 위기감… 佛-英 이어 獨마저 군비확대로 전환
‘위이이이잉∼.’
16일(현지 시간) 유럽 최대 방공 생산시설인 프랑스 리무르의 탈레스 군수 공장. 탱크 크기의 장비 위에 접혀 있던 사각 레이더가 굉음을 내며 위로 펼쳐졌다. 별도의 모니터에 뜬 프랑스 지도 위에는 수십 개의 점이 나타났다. 레이더가 전파로 포착한 비행물체들 위치다. 점마다 비행 속도와 높이, 물체의 종류 등 세부 정보가 깨알같이 제시됐다.
이 장비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상공 반경 250km 내 무인기(드론), 미사일 등을 찾아내는 ‘그라운드마스터(GM) 200’ 레이더다. 지난해 2월 1일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곳에서 GM 200 레이더 1대를 구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유럽에서 군용 레이더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탈레스는 리무르 공장에서 제작된 제품의 80%를 다른 국가로 수출한다. 전 세계 지정학적 불안이 커지고, 주요국들이 국방비 지출을 늘리며 레이더 주문도 급증했다. 탈레스 대변인은 “생산량을 늘리려 최근 리무르 공장 시설을 재정비했다”며 “조만간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의 군수품 생산 경쟁이 치열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다른 유럽 국가들도 넘보고 있는 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 미 대선에서 재집권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을 향해 국방비를 늘리지 않으면 러시아 공격을 용인하겠다며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 “주문 전부터 생산, 납품 속도 높여”
한국 언론에 처음 공개된 GM 200 레이더 공장에는 안테나 등 레이더 부품 수백 개가 생산 공정에 신속히 투입되기 위해 미리 쌓여 있었다. 에리크 마르소 레이더 부문 부회장은 “레이더 수요가 급증해 얼마 전부터 주문이 들어오기 전 미리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정부는 국가적으로 방위 산업 육성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군부대 연설에서 “방산 업계가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자기만족에 빠져 (전쟁에) 무감각했다”며 업계에 ‘속도전’을 주문했다.
서방에서 미국에 이어 국방비를 두 번째로 많이 쓰는 영국도 무기 생산을 서두르고 있다. 벤 브리지 에어버스 디펜스 앤드 스페이스 영국법인 회장은 최근 영국 매체 시티AM과의 인터뷰에서 “중요한 건 생산 속도”라며 영국이 군수품 조달 속도를 가속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 군비 확대를 자제했던 독일은 작년 2월 군비 지출의 ‘자이텐벤데(역사적 전환점)’를 선언하고 군수 산업을 키우고 있다. 세계 최대 방산 기업인 라인메탈은 12일 독일 북부 니더작센주 운터뤼스에서 공장 기공식을 열며 “최우선 목표는 최대한 빨리 생산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독일이 탄약을 자주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생산을 서두르겠다”고 했다.
● 푸틴-트럼프 ‘쌍둥이 위협’
유럽 국가들이 국방 산업 육성에 나선 이유는 러시아가 정부 지출의 30% 이상을 국방에 쏟으며 유럽 국가를 침공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최근 “푸틴 대통령이 5∼8년 안에 나토 회원국을 공격할 수 있다”며 “우리는 지난 30년간 보지 못했던 위협을 경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나토 회원국들에 러시아의 공격을 용인할 수 있다며 국방비 지출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 넘게 이어지며 자국 군수품이 소진돼 재고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커졌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이 미 하원의 반대로 난항을 겪어 유럽이 지원을 두 배로 늘려야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 안팎의 위협 요인에도 유럽 자체 국방력은 허술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필립 셰틀러존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인도태평양 안보 선임연구원은 “나토의 여러 동맹국은 여전히 군 현대화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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