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정적’ 나발니, 옥중 편지서 “우리도 한국처럼 민주주의 가능”

  • 동아닷컴
  • 입력 2024년 2월 20일 16시 56분


러시아 독립미디어 소타(SOTA)가 공개한 15일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에서 화상 재판을 받고 있는 나발니의 생전 마지막 모습. 소타 채널 화면 캡처
러시아 독립미디어 소타(SOTA)가 공개한 15일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에서 화상 재판을 받고 있는 나발니의 생전 마지막 모습. 소타 채널 화면 캡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최근 감옥에서 의문사한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48)가 생전 옥중 편지에서 한국을 언급하며 러시아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나발니가 사망 전 마지막 몇 달간 지인들에게 보낸 자필 편지 발췌본을 공개하며 그의 삶을 조명했다.

나발니는 지난해 9월 지인이자 미디어 사업가인 일리아 크라실쉬치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과 대만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했다며 러시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겠다고 적었다.

2021년 1월 수감된 나발니는 가혹한 교도소 환경을 비판하면서도 적극적인 생활 태도를 보였다고 NYT는 전했다.

나발니는 자신의 교도소 생활을 ‘우주 여행’(space voyage)이라고 불렀다.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경험해 보지 않으면 러시아 감옥 생활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굳이 경험해 볼 필요도 없다”고 썼다.

그는 네덜란드로 망명한 러시아 자유주의자 언론인 미하일 피시먼에게 보낸 편지에선 “나는 우리 주변의 뉴스, 음식, 월급, 가십과 같은 일상의 고단함조차 정말 그립다”고 말했다.

17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러시아 영사관 앞에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진과 꽃들이 놓여 있다. 프랑크푸르트=AP/뉴시스
17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러시아 영사관 앞에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진과 꽃들이 놓여 있다. 프랑크푸르트=AP/뉴시스
나발니는 1968년 암살당한 미국 정치인 로버트 F 케네디의 딸인 케리 케네디와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편지에 “아버지 관련 책을 읽다가 두세 번 울었다”고 적었다. 이어 ‘희망의 물결은 수백만 개로 퍼져 억압과 저항의 벽을 무너트린다’는 로버트 케네디의 연설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보내준 것에 감사를 표하며 언젠가 사무실 벽에 이 포스터를 걸 수 있길 희망한다고 했다.

나발니는 케네디의 책을 비롯해 감옥 생활을 책과 함께 보냈다. 지난해 4월 크라실쉬치크에게 보낸 편지에선 책 10권을 동시에 보고 있다며 이전엔 경멸했던 회고록을 좋아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스탈린 시대 수용소를 다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다시 읽었다며 단식 투쟁 후 몇 달간 허기에 시달리면서 소련 시대 노동 수용소의 부패를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편지에선 크라실쉬치크에게 1980년대 소련 반체제 인사 아나톨리 마르첸코의 1012쪽 분량 3권짜리 책을 포함해 이 주제에 관한 9권의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마지막 편지는 사망 3일 전인 지난 13일 도착했다. 새로운 교도소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호프의 고전뿐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나발니는 지난 16일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에서 돌연 사망했다. 연방 교정청은 그가 산책 후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고만 밝혔을 뿐 정확한 사망 이유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나발니의 시신이 정확히 어디에 안치됐는지도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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