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평화’ 중시하는 라마단 앞두고도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협상 실패
이스라엘, 대규모 정착촌 건설 계획 라마단 직전에 발표
2021년, 2018년 라마단 때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간 대규모 충돌 발생
라마단 기간 중 팔레스타인 피해 커지면 이슬람권 분노 더욱 커질 전망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 6개월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0월7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격으로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의 결과는 참담하다.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에선 3만 명, 이스라엘에선 13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시티를 중심으로 한 가자지구 북부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실상 초토화됐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으로 여겨졌던 가자지구 남부 라파 일대(이집트와의 국경 인근)에도 이스라엘의 공습이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카타르, 이집트 등이 중재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도 성과가 없다. 최근에는 이슬람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시기로 여겨지며 동시에 명절이기도 한 ‘라마단’을 앞두고 휴전 협상에 진척이 없다는 점 때문에 실망이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 ‘너그러운 라마단’
라마단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알라(신)’로부터 ‘쿠란(이슬람 경전)’의 계시를 받은 신성한 달(성월·聖月)을 의미한다.
이 시기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철저히 금식(물 마시기 포함)한다. 하지만 밤에는 ‘이프타르’로 불리는 성대한 만찬을 즐긴다. 가족, 친척, 친구, 이웃, 직장 동료 등과 돌아가며 이프타르를 즐기는 게 무슬림의 정서다.
올해 라마단은 한국 기준 10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이어진다. 라마단은 나라마다 시차와 달의 모양을 감안해 시작과 종료 시기가 정해진다.
라마단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화해와 평화다. 가족, 이웃 간의 갈등을 피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전쟁도 라마단 기간 중에는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라마단 기간 중 가장 많이 쓰이는 인사말 중 하나가 ‘라마단 카림’이다. ‘너그러운 라마단’이란 뜻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슬람권에서는 더욱 안타까운 눈으로 가자지구를 바라본다.
● 평화롭지 않았던 팔레스타인의 라마단
가자지구 전쟁 때문에 이번 라마단은 유독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비극적인 라마단’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올해 라마단을 앞두고 팔레스타인에게는 또하나의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 3426채의 정착촌을 추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마스에 비해 온건 성향인 파타 정파가 관할하고 있는 서안에 이스라엘은 정착촌 확장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정착촌 확장 정책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주택 단지를 짓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도 정착촌 인근에 배치된다.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영토 늘리기 전략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불법 행위로 간주한다. 아랍권에서도 가장 심각한 팔레스타인 탄압 정책으로 여기다. 한국 외교부도 9일 이스라엘의 신규 정착촌 건설 계획에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극우 성향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정착촌 확장 정책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는 2022년 12월 취임식에서부터 정착촌 확장 의지를 밝혔다.
사실 올해 뿐 아니라 최근 수년간 라마단은 팔레스타인에 유독 가혹했다.
2021년 라마단 중에는 팔레스타인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이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모스크 방문을 제한했다. 당연히 시위는 더욱 격화됐다.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도 이어졌다.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2018년 라마단도 팔레스타인에는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이란 뜻)’로 남아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라마단 시작 이틀 전인 5월14일(이스라엘 건국일)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요국들은 이스라엘(유대교)과 이슬람권에서 모두 성지로 여기는 예루살렘 대신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삼았고, 대사관 이전을 촉구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에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취지에서 경제 중심지인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설치했던 것.
아랍권에선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5월 7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추방된 사건을 나크바로 부른다. 지금도 이스라엘과의 충돌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때 나크바라고 표현한다.
● 가자지구 전쟁에 영향 받을 라마단 민심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번 라마단 중 중동에서는 적잖은 긴장감이 감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은 여전히 홍해 일대에서 미국 등 서방 선박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후티 반군에 대한 미국 등의 보복도 진행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이 심해지고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면 아랍권의 민심은 더욱 격화될 수 있다.
라마단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기간이다. 당연히 이프타르 중 진행될 ‘라마단 대화’에서 가자지구 전쟁은 비중 있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해의 라마단 때도 중동 나라들은 ‘라마단 민심’에 긴장한다. 한국 정치권에서 추석과 설 명절 뒤 민심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점에서, 아랍권은 물론이고 미국 등 서방 나아가 이스라엘도 라마단 민심을 어느 정도는 신경 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만약 라마단 기간 중 가자지구 공격으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종교 시설 등이 파괴된다면 팔레스타인은 물론이고 아랍권, 나아가 이슬람권의 분노 게이지는 급상승할 것이다. 당연히 가자지구 전쟁 휴전을 위한 협상이나 중재에도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