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 사회에서 낙태권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 연방대법원에서 ‘먹는 낙태약’의 허용 여부를 결정짓는 세기의 재판이 본격 시작됐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26일 먹는 낙태약 ‘미페프리스톤’(사진) 처방을 규제하는 구두 변론을 시작으로, 미 대선의 주요 쟁점 중 하나인 낙태권에 결정적인 이정표가 될 재판이 열린다”고 전했다. 연방대법원이 2022년 6월에 임신 24주까지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1973년)을 뒤집은 이래 낙태와 관련된 사안을 심리하는 건 처음이다.
미페프리스톤은 2000년 미 식품의약국(FDA)의 사용 승인을 받은 경구 낙태약이다. 2021년 투약자의 사망률이 0.00027%였을 정도로 부작용도 적다.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무효로 만든 뒤에도, 이 약은 여전히 미 전역에서 원격 처방을 받아 배송받을 수 있다.
이에 같은 해 11월 낙태 반대론자들은 텍사스주 연방지방법원에 “미페프리스톤의 의약품 허가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이듬해 승소했다. 2심 격인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제5연방항소법원도 미페프리스톤 사용조건을 기존 ‘임신 10주’ 이내에서 ‘7주’ 이내로 줄이고 원격 처방도 금지했다. 이에 반발한 법무부와 제약업체가 상고해 연방대법원이 최종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WSJ는 “이번 재판의 결과가 여성들에게 미칠 영향은 낙태권 폐지 판결보다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낙태권 폐지 판결은 낙태 허용 여부를 주별로 판단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재 낙태를 전면 금지한 주는 14곳뿐이다. 하지만 낙태약 사용 자체를 제한하면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약품을 통한 낙태의 비중이 전체의 약 3분의 2에 이른다.
또 연방대법원 심리의 핵심 쟁점은 FDA가 미페프리스톤의 처방을 더 엄격하게 규제했어야 했는가이다. 이 때문에 재판 결과에 따라 FDA의 신뢰도가 정치에 휘둘려 흔들릴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이다.
텍사스대 로스쿨의 엘리자베스 세퍼 교수는 “FDA는 절대적(gold standard)인 전문성을 통해 미 제약업의 중심을 지켜왔다”며 “중요한 정책들이 소송을 통해 결정될 수 있다는 여지를 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만일 사법기관이 규제기관의 기술적 평가를 뒤집는 결론을 내린다면, 앞으로 누구라도 도덕적 이유나 음모론 등으로 FDA를 고소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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