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테러 현장에서 100명 이상을 구한 중앙아시아 출신 이민자 소년이 ‘시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25일 뉴욕포스트와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테러 당시 8학년(중학생)인 ‘이슬람 할릴로프’(15)는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의 1층 물품 보관소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이 소년은 키르기스스탄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다.
할릴로프는 평소처럼 일하던 중에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취객 난동’ 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총격과 비명이 점점 커지고 겁에 질린 사람들이 우왕좌왕 달리는 것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알게 됐다.
할릴로프는 공포에 질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저쪽으로, 저쪽으로, 모두 저쪽으로 가세요!”라고 소리치며 안전한 방향으로 유도했다.
소년은 채용 교육 때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고객을 어떻게 대피시키는지 잘 숙지했고, 건물 내부 구조와 비상구 위치를 익혀둔 상태였다.
당시 정문에는 총격범이 있었다. 반대편에는 직원 카드로 열 수 있는 비상구가 있었는데 할릴로프는 이 비상문을 열어 100여 명의 사람들을 무사히 밖으로 탈출시켰다고 한다.
당시 할릴로프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부모에게 알리기 위해 동영상 촬영을 켜두고 있었는데, 영상에는 사람들이 소년의 인도에 따라 대피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소년은 “이 모든 일이 내 눈앞에서 일어났다. 한 남자가 눈앞에서 총에 맞았는데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며 “나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할릴로프는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끝까지 확인하고 마지막에 탈출했다고 한다.
할릴로프의 영웅적인 행동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이 감사를 표했다. 러시아 프로축구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구단은 소년을 경기장으로 초청해 1군 선수들을 만나게 해주고 시즌티켓과 유니폼을 선물했다. 할릴로프는 수업이 없을 땐 이 구단 유소년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또 러시아 래퍼 모르겐시테른은 감사의 표시로 100만루블(약1450만원)을 전달했다. 러시아 무슬림 지도자인 무프티 셰이크 라빌 가누트딘은 그에게 최고 무슬림상을 수여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지난 22일 모스크바 북서부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발생했다. 테러범들이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139명이 숨졌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했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배후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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