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이민자 대책 골몰하는 유럽
‘이민자 때문에 범죄가 늘어난다’는 잘못된 편견
극우세력, 이민자 문제 주장하지만… 과거에 비해 범죄율 꾸준히 감소
“자국민보다 준법정신 높은 편”
“불법 이민자들은 대부분 마약 딜러나 강간범 같은 범죄자들이다.”(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반(反)이민 정책을 설파하는 세계 정치인들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논리가 있다. ‘불법 이민자들은 사건·사고를 일으켜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다. 이에 동조하는 극우 매체들은 불법 이민자가 연루된 사건들을 대서특필하기도 한다.
서구 사회는 불법 이민자들이 갈수록 늘어나며 유권자 표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미국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에서 불법 이민이란 답이 28%로 1위를 차지했다.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불법 이민자 이슈에 강경한 자세로 바뀐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민자=범죄자’라는 인식은 현실과는 다른 선입견일 수 있다. 지난해 란 아브라미츠키 스탠퍼드대 교수와 레아 부스탄 프린스턴대 교수 공동연구팀이 1850∼2020년 미 인구조사국 자료를 분석했더니, 최근 170년간 미국에 유입된 이민자 범죄율은 미국 태생보다 유의미하게 낮았다.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커져 오늘날 이민자 범죄율은 60% 이상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트럼프가 매번 문제 삼는 ‘멕시코 출신 이민자’들도 1960년대 이후 한 번도 미국 태생보다 범죄율이 높은 적이 없었다. 연구자들은 “해당 연구에서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이민자 집단이 일반적으로 범죄와 연루될 가능성이 높은 요인으로 꼽는 젊은 연령대와 저소득, 저학력 경향이 강한데도 범죄율은 오히려 낮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브라미츠키 교수는 또 “일부에선 이민자들이 넘쳐나며 나라를 빼앗긴다는 공포를 조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미국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민자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14%로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은 어떨까. 튀르키예의 아이셰귈 카야오을루 이스탄불공과대 경제학과 교수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직후인 2012∼2016년 튀르키예 남부 국경지대는 이민자들이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해당 지역의 범죄율은 다른 지역보다 낮았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있다. 독일 연방 형사청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대비 범죄 발생 건수의 비율은 2015년 10%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감소했다. 2020년엔 5.8%까지 떨어졌다. 현지에선 이민자 유입 초기엔 혼란이 가중돼 범죄 건수가 일시적으로 늘었지만, 이후에는 오히려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옥스퍼드대 국제이주연구소(IMI) 소장을 지냈던 헤인 데 하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민자들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취득해 그 나라에 뿌리내리길 간절히 바란다”며 “대다수는 자국민보다 더 법을 잘 준수하려고 애쓰는 사회 구성원들”이라고 말했다.
하스 교수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봐도 이민자의 비율은 크게 늘지 않았다. 국제 이민자는 1970년 약 9300만 명에서 2017년 2억4700만 명으로 크게 증가한 건 맞다. 하지만 같은 기간 동안 세계 인구 역시 크게 늘어 이주자 비율은 약 3%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민자 사상 최대’라는 수치가 틀린 건 아니지만, 사회를 뒤흔들 만큼 영향을 주는 위협 요인이 될 순 없단 설명이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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