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인의 선거철 “페스티벌 같은 우리 정치”[시차적응]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2일 11시 00분


《‘저 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지?’ ‘우리와는 왜 다르지’ 국내외 뉴스 속 궁금증을 콕 짚어 새로운 시각에 적응시켜 드립니다.》

총선이 8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동네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있고 길거리에 나와 인사하는 후보들이 보입니다. 다른 나라의 선거철 분위기가 궁금하셨던 적 있으실까요?

‘슈퍼 선거의 해’ 첫 선거로 전 세계적 관심을 받으며 총선을 치른 국가가 있는데요. 대만입니다. 대만은 1월 13일 국회의원(입법위원)과 총통(대통령) 선거를 동시에 치렀습니다. 1월 11~13일 타이베이시 등 대만 수도권 일대에서 취재하며 목격한 축제같은 풍경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월 13일 투표가 종료된 후 지역구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개표방송을 보는 시민들. 타이베이시 지역구 입법위원으로 출마한 민진당 우페이이 후보 선거사무소다.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1월 13일 투표가 종료된 후 지역구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개표방송을 보는 시민들. 타이베이시 지역구 입법위원으로 출마한 민진당 우페이이 후보 선거사무소다.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 동네 마실 나오듯…간이 유세장이 된 공원

선거를 이틀 앞둔 11일 낮 다다오청마토우(大稻埕碼頭) 광장에서 민중당 유세가 열렸습니다. 커다란 강 옆에 만들어진 공원이라 한국의 한강공원과 분위기가 비슷했습니다.

민중당은 2019년 당시 타이베이시 시장이던 커원저 대표가 창당한 신생 정당입니다. 젊은층에서 특히 호응이 컸는데요. 이번 대선에서 총통 후보로 나선 커 대표는 득표율 26.1%를 기록하며 양당 체제를 깬 주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날 커 후보는 타이베이시 일대를 도는 자동차 순회 유세에 나섰습니다. 개조한 픽업트럭 트렁크에 타고 다니며 길가에서 유권자를 만나는 방식으로 대만 정치인들의 선거철 필수 코스입니다.

이날 유세의 종착지인 다다오청마토우 광장에 도착했는데 ‘유세에 가면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커다란 앰프 소리나 단체복을 입은 당직자가 없어 두리번거리는데 민중당의 상징생인 민트색 깃발을 손에 쥔 사람이 보여 따라갔습니다.

1월 11일 낮 타이베이 단수이(淡水)강 옆 다다오청마토우(大稻埕碼頭) 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커원저 후보의 자동차 순회 유세 현장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1월 11일 낮 타이베이 단수이(淡水)강 옆 다다오청마토우(大稻埕碼頭) 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커원저 후보의 자동차 순회 유세 현장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굴다리 앞에 유권자 수십 명이 모여있었습니다. 이들은 당에서 나눠준 깃발과 손수 만든 팻말을 들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20~40대였고 아이를 데리고 마실 나온 부모들도 보였습니다. 민중당 지지자를 상징하는 ‘새싹’ 모양 핀을 머리에 꽂은 지지자들도 있었습니다.

흰색 외투를 입고 마이크를 쥔 채 서 있는 사람이 커원저 후보다.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조금 지나 커 후보가 도착했습니다. 서서 마이크를 잡고 말하고 있었는데요, 차량의 속도를 줄이기에 잠시 멈춘 뒤 연설하는 건가 싶었지만 금방 지나갔습니다. 커 후보의 얼굴을 3분도 못 보고 유세가 끝났습니다. 지지자들은 깃발을 둘둘 감아 가방에 넣었습니다. 그리곤 흩어졌습니다.

이날 직접 만든 팻말을 들고 유세에 나온 대학생 천잉잉 씨(22·왼쪽)와 천 씨의 삼촌.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이날 직접 만든 팻말을 들고 유세에 나온 대학생 천잉잉 씨(22·왼쪽)와 천 씨의 삼촌.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공원을 찬찬히 둘러봤습니다. 민중당 지지자를 포착하는 단서는 ‘민트색 깃발’이었습니다.

공원 마실 나온 나들이객 같지만 가방 틈새로, 외투 주머니에서 눈에 잘 띄는 민트색 깃발이 삐져나와 있었습니다. 20대 친구들은 네컷사진 부스로 들어가고 있었고, 아버지와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는 잔디밭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공원 앞 횡단보도에서는 초면인듯한 지지자들이 손가락으로 숫자 ‘1’(커 후보 기호)을 만들며 눈웃음을 주고받았습니다.

1월 10일 민중당 커원저 후보의 자동차 순회 유세를 보러 팻말을 들고 길가로 나온 대만 유권자들의 모습. 커원저 페이스북 캡처


대만에 입국한 후 처음 간 유세장이었는데요. 제 예상 밖의 풍경이었습니다. 민중당이 젊은이들의 분노와 무력감으로 세를 불렸다는 평가를 받았던지라 저는 부정적 에너지가 유세장을 감돌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니 다들 즐거워 보였습니다. 이유는 변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다오청마토우 광장에서 인터뷰한 유권자들은 입을 모아 “커원저가 정치의 새 흐름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콘서트장인지 유세장인지

대만 선거철을 상징하는 또 다른 풍경은 ‘초대형 유세’입니다. 어느 정도의 초대형인가 하면 수만 명이 운집하는 규모입니다.

초대형 유세가 열리는 단골 장소는 두 곳인데요. 타이베이시 총통부 앞 카이거란대로와 수도권인 신베이시 반차오 경기장입니다. 카이거란대로는 왕복 10차선이라 광화문광장이 세종대로(왕복 12차선)였던 시절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교통을 통제하고 이곳에서 유세를 열기만 하면 10만 명대 유권자가 모인다고 합니다. 반차오 경기장에도 5만 명씩 모인다고 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선거 유세에 오는 걸까요. 모여서 대체 무엇을 하고요?

12일 저녁 반차오 제1경기장에서 열린 국민당(제1 야당) 선거 전야 유세에 다녀왔습니다. 이날 유세는 국민당 집계로 5만 명이 참석했습니다.

열기는 유세장 인근 지하철역 출구부터 느껴졌습니다. 길가에는 관광버스가 줄지어 정차되어 있었고요. 물어보니 지역이나 조직에서 버스를 빌려 참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지지자들은 총통 후보 허우유이(侯友宜)의 이름과 “승리”를 외치며 걸어갔습니다.

1월 12일 대만 신베이시 반차오 제1경기장 인근 도로가 지지자들과 관광버스로 가득 찬 모습. 신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유세 시작 약 50분 전 유세장 입구 풍경. 신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유세 시작 약 50분 전 유세장 입구 풍경. 신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5만 명이 모였다는 이날 유세는 입구부터 사람이 가득했습니다. 틈새를 비집고 걸어가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응원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소풍 나온 것만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무대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앞으로 가다 보니 30분 뒤에야 무대가 보였습니다. 뒤돌아서 제 눈 앞에 펼쳐진 수만 명의 인파를 구경했습니다. 지지자들이 손에 쥔 대만기가 빨강과 파란색 물결처럼 보였습니다.

인기 가수의 대형 콘서트와 견주어 손색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수만 명이 전부 한 곳을 응시하며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12일 오후 7시 대만 신베이시 반차오 제1경기장에서 열린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의 투표 전 마지막 유세 현장. 신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행사 사회는 국민당 정치인이 봤습니다. “이제는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선거 광고 영상을 상영한 후 지역구 후보들이 하나하나 나와 인사를 했습니다. 이어서 국민당 유력 정치인들이 나와 연설했습니다.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 2020년 국민당 총통 후보였던 한궈위(韓國瑜), 장제스의 증손자로 차기 총통 후보로 유력한 장완안(蔣萬安) 타이베이 시장 등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행사 막바지에 드디어 주인공이 등장했습니다. 총통 후보 허우유이(侯友宜)는 제법 인상적으로 입장했는데요. 입구부터 무대까지 지지자들 사이를 비집고 걸어왔습니다. 지지자들이 “허우를 총통으로”라는 구호를 외친 지 15분쯤 됐을까요, 무대 위로 허우 후보가 올라왔습니다.

지지자들을 가로질러 온 허우유이 총통 후보(가운데)와 바로 뒤로 보이는 안경을 쓴 자오샤오캉 부통령 후보의 모습. 신베이=AP 뉴시스


허우 후보는 대만어로 연설했습니다. 그리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요. 수만 명의 지지자와 무대 위 정치인들이 다 같이 즐겁게 노래 2곡을 연달아 열창했습니다. 노래를 마친 뒤 후보자들이 인사를 했고 무대 조명이 꺼졌습니다. 오후 9시 57분, 공식 선거운동 종료 3분을 앞두고 행사가 종료됐습니다.

연설하는 허우 후보를 중심으로 일렬로 선 국민당 입법위원 후보들. 신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연설하는 허우 후보를 중심으로 일렬로 선 국민당 입법위원 후보들. 신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국민당 선거 전야 유세가 종료된 후 풍경. 신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제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지지자들이 순식간에 해산했습니다. 오후 10시 5분, 반차오 제1경기장에는 조금 전까지 인파에 가려 있는 줄도 몰랐던 붉은색 의자만 잔뜩 보였습니다.

● 선거대책본부에 차린 ‘팝업스토어’

카이거란대로에서 11일 열렸던 민진당(여당) 초대형 유세에 갔을 때 눈에 띈 점이 있습니다. ‘팀 타이완’이라고 적힌 야구점퍼를 입은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 점퍼를 입은 사람이 전부 다 선거 캠프 관계자일 수는 없을 만큼 많았는데요. 알아보니 민진당에서 판매하는 ‘공식 굿즈’를 사 입은 지지자들이었습니다.

판매용 굿즈라니 새로웠는데요. 민진당은 굿즈 판매 공간까지 차려뒀다길래 가봤습니다. 위치는 타이베이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선거대책본부 1층이었습니다.

12일 방문한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역 인근 민진당 선거대책본부. 팝업스토어처럼 꾸며둔 모습이다.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다소 삭막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알록달록했는데요.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팝업스토어’ 같아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이곳은 라이칭더 (賴淸德) 총통 후보가 유소년 야구선수 출신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야구’를 콘셉트로 꾸몄다고 합니다. 인증샷을 찍고, 응원 메시지를 남기고, 간단한 게임을 할 수 있게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참고로 민중당은 유권자들이 직접 만든 팻말을 가지고 유세에 나오는 문화를 살려 선대본부 1층 전체에 책상과 의자를 깔아뒀다고 합니다. 종이와 마커펜을 갖춰 유권자들이 팻말을 만들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민진당 선거대책본부에서 공식 굿즈를 판매하는 모습.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선거를 하루 앞둔 날이라 다녀갈 사람은 이미 다녀갔을 것 같기도 하고, 평일 오후 2시라는 애매한 시간대였지만 그래도 한 아름씩 봉투를 손에 쥐고 나가는 사람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옷가지와 배지, 퍼즐, 달력 등을 판매했는데요. 제가 유세에서 본 야구점퍼도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품절된 인기 상품은 민진당의 상징색인 녹색 티셔츠였다고 합니다. 이어 녹색 여행 가방 벨트가 품절됐다고 합니다.

● 마지막까지 뜨거웠던 결전의 날

13일 오후 4시, 총통과 입법위원 선거 투표가 종료됐습니다. 대만은 재외국민 투표도, 부재자 투표도 불가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투표해야 하기 때문에 도심은 무척 차분한 분위기였습니다.

오후 5시가 조금 지난 시간 저는 타이베이시 완화구에 있었습니다. 이 지역 민진당 후보로 출마한 우페이이 후보의 사무소에 갔는데요. 앞서 유세장에서 만난 대만인이 말하길 동네 사람들이 지역구 후보 사무실에서 개표 방송을 보는 문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도심이나 신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여전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길래 한국의 종로구와 비슷한 타이베이시 구도심 완화구로 찾아갔습니다.

13일 투표가 종료된 후 민진당 우페이이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모여 개표방송을 보는 주민들.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우 후보의 사무소에 도착하고 보니 상가 건물 1층에 출입문이 없는 모습부터 제법 인상적이었습니다. 입구에 TV 모니터와 의자를 두어 사람들이 오가며 개표 방송을 보고 있었습니다.

자원봉사자에게 물어보니 이곳은 ‘대민 사무소’ 격의 공간이라고 합니다. 일반 사무를 보는, 통상 건물 2, 3층에 있는 사무실도 운영하지만 이처럼 건물 1층에 입구가 없는 대민 사무소를 두는 것이 대만 선거철 정치 문화라고 합니다. 이곳은 선거를 앞두고 3~4개월간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했다고 합니다.

우 후보 사무실 입구에 설치된 TV 모니터로 개표 방송을 보는 주민들.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사무소에는 선거 캠프 관계자도 많았지만요, 동네 주민들이 걸어가다 잠시, 또 자전거를 타고 가다 잠시, 심지어 차를 타고 가다 잠시 서행하며 개표 방송을 보는 풍경이 새로웠습니다. 취재하고 있는데 한국인 관광객 3명이 걸어가다가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엄청나다”라고 말하면서요.

저녁 시간대가 지난 뒤 등장한 70대 할아버지들은 대만어로 수다 떨고 있었습니다. “커원저랑 밥 먹어봤는데 느낌이 별로다”며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오후 8시경 투표 결과 윤곽이 드러나며 점점 더 많아지는 구경꾼들.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오후 8시경 투표 결과 윤곽이 드러나며 점점 더 많아지는 구경꾼들.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사무소 입구에 걸린 TV 모니터에서 우페이이 후보의 당선 소감이 방송되고 있다. 지지자들은 이 사무소 안쪽에서 말하고 있는 우 후보를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찍는 동시에 신기한듯 TV를 보고 있다.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우페이이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폭죽을 터트리는 모습.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오후 7시가 지나가니 구경 나온 시민이 족히 100명은 넘어 보였습니다. 오후 8시가 조금 지나 우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축하 폭죽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대체 왜 다들 이렇게 나오시는 걸까요. 타이베이 시민 린(林)모 씨(38)에게 여쭤봤습니다. 린 씨는 “분위기가 좋잖아요”라고 답했습니다.

● 꽃가루 뿌리며 끝난 대만 선거

오후 8시 40분경 민진당 라이 후보의 당선이 확정됐습니다. 제가 팝업스토어 구경을 갔던 민진당 선대본부 앞 도로에서 당선인이 내·외신 기자회견을 연다는 속보도 떴습니다.

저도 빨리 이동했습니다. 어제 보았던 한적한 풍경은 온 데 간 데 없고 왕복 6차선 도로가 300m 가까이로 깃발을 손에 쥔 지지자들로 가득 찼습니다. 다들 속보를 보고 모인 것이었습니다. 등에 테니스 라켓을 매고 운동복을 입고 온 사람도, 스마트폰과 깃발만 덜렁 쥐고 나온 사람도 보였습니다.

1월 13일 2024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라이칭더 당선인이 타이베이시 민진당 선거대책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지자들이 와 축하하는 모습.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1월 13일 2024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라이칭더 당선인이 타이베이시 민진당 선거대책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지자들이 와 축하하는 모습.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행사는 당선인들의 인사로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외신 기자회견을 진행했죠. 전 세계의 관심이 쏠렸던 선거인만큼 이번 선거를 취재하러 외신 기자 400명 이상이 대만에 왔습니다.

해외 방송사 기자가 방송 카메라 앞에 서 리포팅을 하는 모습. 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외신 기자회견이 끝난 뒤 무대에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올랐습니다. 곳곳에서 삼삼오오 셀카를 찍고 시끌벅적하던 행사장 분위기가 돌변했습니다. 들뜬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경건한 분위기가 흘렀습니다. 차이 총통의 연설을 듣는 사람들에게 애틋한 느낌도 났습니다. 시민 인터뷰를 하던 저도 잠시 멈췄습니다. 이 순간을 방해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단에 오른 차이잉원 총통(가운데)의 모습. 타이베이=AP 뉴시스


차이 총통이 연설을 마치자 다시 시끌벅적해졌습니다. 언제 울먹였다는 듯 다들 신난 표정으로 “총통 라이 총통 라이”라고 외쳤습니다. 역시나 마지막 순서는 라이 당선인의 연설이었고요.

그러고는 하늘에서 녹색과 분홍색 색종이가 내렸습니다. 꽃가루가 내리는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색종이를 줍길래 저도 주워봤습니다. 각각 “라이칭더 샤오메이친 2024년 하나로 연합하다” “올바른 사람을 선택하고, 올바른 길을 가세요. 2024년 승자! ‘팀 타이완’, 감사합니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작은 기념품으로 챙겼습니다.

민진당 승리 기자회견에서 색종이 가루가 비처럼 내리고 있다. 타이베이=AP 뉴시스


● 마치며

현장을 다녀보니 온 사회가 선거철 행사를 진심으로 즐기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습니다. 취재하며 만난 대만인들에게 “선거를 즐기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는데요.

돌아온 반응이 재밌었습니다. 대부분 “한국은 안 그래?”라고 제게 되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다시 물으니 “K-드라마”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드라마 속 한국인들이 삶을 열정적으로 즐기던데 선거철이라고 다르겠냐는 뜻이었습니다.

초대형 유세에서 만난 대만인 천(陳)모 씨(44)는 대만 선거가 ‘카니발’ 같다며 제 호기심에 공감했습니다. 그는 대만에만 살 때는 몰랐는데 브라질에서 6개월간 살아보니 ‘축제 중의 축제’라고 불리는 브라질의 카니발과 대만의 선거철 풍경이 닮아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합니다. 춤과 파티가 없을 뿐, 사회를 휘감는 즐거운 에너지가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천 씨가 기억하는 한 대만 선거철은 늘 축제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대만은 1996년부터 직선제를 실시했습니다.

왜 늘 즐거운 것일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대만인은 정치를 통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대만인들에게 어느 후보를 왜 뽑았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이래서 OO을 지지했다” 대만인 25명의 답변[시차적응]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40119/123139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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