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이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국회의원 82명 중 39명에 대한 징계 처분을 4일 확정했다. 20% 안팎의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징계를 단행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를 통해 그는 28일 3개 지역구에서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의 선전은 물론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당의 최고 책임자인 기시다 총리는 물론 그가 속한 ‘기시다파’ 의원들이 징계 대상에서 빠진 것을 둘러싼 논란도 거세다. 일종의 ‘꼬리 자르기’로 총리가 책임을 회피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장 28일 선거에서 자민당이 실망스런 성적을 받는다면 당 내에서부터 ‘기시다 퇴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 아베파 간부에 ‘탈당 권고’ 중징계
자민당은 이날 회의를 열고 시오노야 류(塩谷立) 전 문부과학상,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전 당 참의원 간사장 등 2명에 ‘탈당 권고’ 처분을 내렸다. 명목상으로는 권고 형식이나 자진 탈당하지 않으면 제명이 뒤따르기에 탈당이 불가피하다. 시오노야 전 문부과학상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만든 파벌 ‘아베파’의 좌장 출신이다. 이런 그에게 중징계가 내려진 것이다.
이 외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전 당 정무조사회장,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전 경제산업상은 ‘당원 자격 1년 정지’ 처분을 받았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전 정무조사회장,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전 관방장관, 다케다 료타(武田良太) 전 총무상 겸 일한의원연맹 간사장 또한 1년간 당 간부직을 맡을 수 없게 됐다.
‘당원 자격 정지’ 이상의 처분을 받으면 징계 중 공천을 받을 수 없다. 사실상의 총리 선거인 당 총재 선거의 피선거권 및 투표권도 박탈된다. 무엇보다 비자금으로 징계받았다는 이력 자체가 불명예로 남기에 정치 생명에 상당한 타격이 뒤따른다.
징계 대상 39명 중 36명은 아베파다. 나머지 3명은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전 간사장이 만든 파벌 ‘니카이파’에 속했다. 대부분은 장관, 당 간부 등을 지내며 정계를 쥐락펴락하던 인사들이다.
반면 기시다 총리는 징계 대상에서 제외됐다. 비자금 추문에 연루된 몇몇 기시다파 의원도 징계받지 않았다. 시라토리 히로시(白鳥浩) 호세이대 교수(정치학)는 “비자금 사건을 마무리 지은 뒤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될 미일 정상회담에서 외교 성과를 거둬 지지율을 끌어 올리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 재보선 패배 시 ‘기시다 퇴진론’ 가능성
지난해 말 아베파 등 주요 파벌이 정치자금을 받아 일부를 뒷돈으로 챙긴 ‘비자금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주요 여론조사에서 10~20%대로 추락했다. 과거 일본에서 이 정도까지 지지율이 하락하면 총리가 퇴임했다. 기시다 총리는 당내에서 별다른 차기 총리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리직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탈당 권고 중징계를 받은 시오노야 전 문과상은 “부당한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당 운영이 독재적”이라며 반발했다. 자민당은 이번 징계를 발표하며 500만 엔(약 4500만 원) 이상 비자금을 받은 의원을 처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 500만 엔 기준을 정했는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아 징계 대상자의 반발을 사고 있다. 동시에 적지 않은 국민은 아예 국회의원직을 내놓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 않은 징계는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당 내부에서도, 국민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나오는 상황에서 28일 선거에서 자민당이 고전하면 ‘기시다 퇴진론’이 불거질 수 있다. 자민당은 전직 의원들의 불명예 퇴진에 정치적 책임을 지고 이 3곳 중 시네마현 1곳에만 공천하기로 했다. 1996년 이후 줄곧 자민당이 승리한 일종의 ‘텃밭’이나 최근 여론이 좋지 않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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