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대형 테러 저지르는 ‘IS-K’ 대해부
러시아 vs 이슬람, 뿌리 깊은 악연
러시아, 19세기부터 이슬람 탄압… 푸틴이 IS 몰락 기여하며 갈등 심화
모스크 건립 등 다종교 정책 냈지만… 지난달 모스크바 테러로 갈등 최고조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K(호라산)’의 3월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로 이슬람과 러시아의 뿌리 깊은 갈등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양측은 제정 러시아의 남진(南進) 정책에 따른 오스만튀르크 제국과의 영토 및 종교 갈등, 옛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슬람 탄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체첸 분리독립 시도 진압 등으로 오랫동안 극한 대립을 해왔다. ‘유일신’ 이슬람 신앙과 사회주의 ‘무신론’ 간의 세계관 차이 또한 상당하다. 역사, 종교, 사상적 갈등에 따른 양측 대립이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제정 러시아는 19세기 후반 오스만튀르크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현재의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영토를 넓혔다. 러시아가 이슬람이 뿌리 내린 중앙아시아에 기독교 분파인 러시아 정교까지 전파하려 하자 영토 및 종교 갈등이 가속화했다.
1922∼1952년 스탈린의 공포 통치는 이슬람권 전반의 반(反)러시아 감정을 고조시켰다. 당시 소련 인구의 약 4분의 1이 무슬림이었지만 스탈린은 자신보다 알라신을 숭배하는 이들을 독재의 방해 요인으로 여기고 잔혹하게 탄압했다.
스탈린은 무슬림이 많은 캅카스의 체첸 주민 40만 명을 1944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당시 최소 10만 명이 객사했다. 이슬람 사원(모스크) 철거, 이슬람 신학교 폐쇄, 무슬림 성직자 숙청 등도 단행했다. 또한 중앙아시아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이른바 ‘스탄’ 국가 5곳으로 쪼갰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10년간 점령한 것도 이슬람권의 분노를 키웠다. 소련 붕괴 후 중앙아시아 일대에는 경제난, 이념적 공백 속에 급진적인 이슬람 원리주의가 발호했다. 특히 가난한 젊은이들이 이에 매료됐다.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 4명이 타지키스탄 출신이라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세진 한양대 러시아학과 교수는 “중앙아시아 내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를 넘어 러시아에 대한 저항수단의 성격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1999년 말 집권한 푸틴 대통령도 무슬림을 탄압했다. 당시 그는 체첸의 분리독립 시도를 잔혹하게 탄압하며 체첸 수도 그로즈니를 사실상 폐허로 만들었다. 분노한 체첸 반군은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 사건, 2004년엔 체첸 인근 북(北)오세티야 초등학교 인질 사건 등 대형 테러로 끈질기게 저항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IS-K의 모(母)조직 IS를 사실상 몰락시키는 데 기여하면서 양측은 철천지원수가 됐다. 시아파 국가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2011년 내전 발발 후 IS 등 수니파 세력을 탄압했다. 중동 내 영향력 확대를 노린 푸틴 대통령은 아사드 대통령의 후원자를 자처하면서 자국군과 무기를 대거 지원했다.
러시아는 최근 들어서는 다종교 정책을 내세우며 변화를 과시해왔다. 2015년 9월 모스크바에 세계 최대의 모스크가 들어섰고, 2020년 ‘러시아 민족 통합의 날’(11월 4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탁상에 성경과 꾸란, 토라(유대교 율법)를 모두 올려놓은 모습을 공개했다.
하지만 두 세력 간 해묵은 갈등이 지난달 모스크바 테러로 다시 터져나오며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푸틴 정권이 테러 직후 일부 용의자의 귀를 자르고 신체를 고문하는 장면을 공개한 것은 이슬람권의 추가 분노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러시아가 최근 중동에서 군사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에 반감을 가진 이슬람 무장세력이 결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