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이란 영사관 공격은 차원이 달라
‘가자 전쟁’, 나아가 양국 갈등의 새로운 국면
네타냐후는 ‘정치생명’, 이란은 ‘국가 체면’ 때문에 충돌 피하기 어려워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대규모 도발로 지난해 10월 7일(현지 시간)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 6개월 만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번 공격으로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통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혁명수비대(국가 최고지도자의 직속 군사조직)의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 준장 등 최소 13명이 사망했다.
자헤디는 이란 혁명수비대에서 해외작전과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정예부대 ‘쿠드스군’에서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을 담당하는 지휘관이었다. 그는 2020년 1월 미국의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사망한 가셈 솔레이마니 당시 쿠드스 사령관 이후 사살된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고위 관계자다.
당연히 이란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란 국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알라의 증거란 뜻‧이슬람 시아파 최고 지도자에 대한 호칭) 알리 하메네이는 이스라엘에 대해 “매를 맞게 될 것”이라며 보복 의지를 밝혔다. 이미 이란군에는 최고 수준의 경계령이 내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이 이번 공격에 직접 대응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CNN은 빠르면 다음주(8~14일) 중 이란의 보복 공격이 진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동안 이란과 이스라엘은 ‘앙숙’이지만 전면전을 치르지는 않았다. 대신 두 나라는 이른바 ‘그림자 전쟁’을 치러왔다. 이란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무장정파들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을 일으켜 왔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가담한 인사들을 암살해 왔다.
가자지구 전쟁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이스라엘이 ‘이란 영토’나 다름없는 이란 영사관을 공격해 핵심 군 관계자를 살해했다는 건 의미가 다르다.
● 뿌리 깊은 갈등과 장기간 지속된 ‘그림자 전쟁’
두 나라는 서로를 주적으로 여긴다.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으로서 ‘이슬람 혁명’을 통해 신정공화정을 수립한 이란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중동 전역에 확대하려고 한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의 시아파 무장정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게 좋은 예다.
이런 이란에게 이슬람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하나인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있는 ‘유대교의 나라’ 이스라엘은 당연히 눈엣가시다.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무슬림인 팔레스타인인들이 조직적으로 추방됐다는 것도 이란에게는 좌시하기 힘든 부분이다. 수니파가 절대다수임에도 이란이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란이 해외작전을 담당하는 최정예 부대 이름을 쿠드스군으로 지은 것도 ‘반이스라엘 의지’를 담은 조치다. 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을 의미한다. 즉, 예루살렘 탈환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에게 이란은 만만치 않은 존재다. 시리아와 레바논 같은 주변의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은 내전을 겪으며 나라가 엉망이 됐다. 군사력도 형편없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적수가 못된다.
반면 이란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지만, 사정거리 2000km 수준의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대거 개발·생산해 온 군사 강국이다. 드론 역시 러시아가 대거 구입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할 만큼 수준급이다.
무엇보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 정부군, 이라크의 다양한 시아파 무장단체를 이용해 언제든지 크고 작은 국지전을 진행할 수 있다. 이른바 ‘저항의 축’ 혹은 ‘시아벨트 전략’이다. 이란은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의 시아파 정치인들을 통해 이 나라들의 외교안보 전략도 이스라엘에 부담 가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이스라엘이 아니다. 이스라엘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란을 괴롭혀 왔다.
정보기관 ‘모사드’가 중심이 돼 압도적인 정보력과 은밀한 작전을 바탕으로 이란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관련 유력 인사들을 암살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2020년 11월 유명 핵 과학자인 모센 파흐리자데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원격 조종 기관총으로 살해했다. 2010년 마수드 알리 모하마디 테헤란대 교수(핵물리학), 2011년 테라니 모가담 이란 혁명수비대 장군(미사일 담당), 2012년 무스타파 아흐마디 로샨 박사(우라늄 농축 업무 담당) 등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 네타냐후 정권은 ‘확전’, 이란은 ‘현상 유지’에 더 관심
과연 두 나라는 조만간 크게 충돌할까. 누가 더 전면전에 적극적으로 나설까.
이스라엘, 정확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이 대대적으로 반격해 오고, 이를 계기로 전쟁을 확대하는 것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네타냐후 총리는 ‘전시 내각’과 ‘극우세력의 지원’을 통해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자지구 전쟁 장기화와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석방이 지연되면서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이스라엘 국민의 불만은 상당하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제2의 도시이며 경제중심지인 텔아비브에서 10만 여 명이 총리 퇴진을 외치며 시위가 펼쳐졌다. 수도 예루살렘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전쟁이 터지기 전에도 개인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아왔고, 국민들의 지지를 크게 잃은 상태였다. 총리에서 물러나 면책 특권이 사라지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마스, 헤즈볼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이란과의 충돌 상황이 벌어진다면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자연스럽게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또 자신의 지지 세력인 극우 진영의 단합을 다시 한 번 도모하고, 중도 보수층의 지지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다. 반면 이란은 ‘국가 체면상’ 이스라엘에 보복을 하는 건 검토하겠지만 전면전 혹은 대규모 충돌은 피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저항의 축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제재로 가뜩이나 어려운 이란 경제를 더욱 파탄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경제난에 지친 국민들의 불만도 더 키울 수 있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사망자 수가 급증하며 관계가 냉랭해졌지만 어쨌든 이스라엘의 핵심 우방국인 미국이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다는 것도 이란에게는 큰 부담이다.
● 이란은 어떻게 보복할까
그렇다면 이란이 아예 보복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이스라엘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혁명수비대 최고위급 관계자), 장소(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 국가 최고지도자의 발언(분명한 보복 의지 표현) 등을 감안할 때 어떤 형태로든 이란의 보복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런 점에서, 솔레이마니가 사망했을 때 이란이 보여줬던 모습이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다. 당시 이란은 솔레이마니가 사망한지 5일 뒤인 2020년 1월 8일 이라크에 있는 미군기지 2곳(아르빌 기지,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에 22발의 미사일을 퍼부었다. 작전의 명칭은 ‘순교자 솔레이마니’였고, 미사일이 발사된 시간은 솔레이마니가 드론 공격을 당한 시간과 같은 오전 1시 20분이었다. 말 그대로, 이웃 나라에 있는 미군기지를 초토화시키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미군 사망자는 1명도 없었다. 이란은 이라크 측에 공격 계획을 비공식적으로 전했고, 이라크가 미국에 이를 알려 미군들은 기지에서 모두 대피했기 때문이다. 이란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전면 충돌은 피하면서도 최소한의 체면은 세우는 상징적인 보복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하지만 의도와 방식이 어떻든 간에, 이란이 이스라엘과의 충돌할 경우 중동의 긴장은 더 고조될 수밖에 없다. 또 충돌의 파장은 늘 그렇지만 정확한 예측이 힘들다. 더군다나 중동은 가자지구 전쟁으로 이미 6개월째 혼란스런 상황이다. 다시 한번, 전세계가 중동을 바라보며 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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