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선진국’ 유럽마저 저출산 공포
유럽 등 남녀 만남 줄어들며 인구 감소에 일조
韓-日-佛 등 저출산국 공통 현상… 젊은 세대는 연애-결혼도 기피
사회경제적 스트레스 등 원인
“낭만적인 프랑스 파리마저 ‘섹스리스(sexless)’ 문화가 번지고 있다.”(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의도적이건 아니건 프랑스는 오랫동안 ‘사랑이 꽃피는 나라’로 여겨졌다. 20세기 로맨틱코미디의 아이콘이던 멕 라이언이 출연한 영화 ‘프렌치 키스’(1995년)처럼, 파리는 커플들의 성지로 불렸다. 하지만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최근 프랑스는 기존 이미지와 달리 심각한 ‘로맨스 불황’을 겪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프랑스여론연구소(IFOP)는 최근 “만 18세 이상 프랑스 성인 19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약 24%가 지난 1년간 성관계를 한 번도 갖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50년 동안 최대 수치로, 2006년만 해도 9%에 그쳤다.
성관계는 각자의 자유지만 인구통계학적 관점에선 출생률과 연관되는 중요한 문제다. IFOP의 프랑수아 크라우스 에디터는 “섹스리스 문화는 저출산으로 고민하는 프랑스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는 단지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출산으로 인구 절벽 공포에 빠진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텔레그래프는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인 일본도 기혼 부부의 60% 이상이 거의 섹스리스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염유식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성인의 약 30%는 1년 넘게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
주목할 건 이런 섹스리스 풍조가 출산과 높은 상관관계를 지닌 젊은 세대에서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올 2월 미국 학술지 ‘성연구저널(JSR)’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2010∼2018년 이탈리아와 그리스, 러시아 등 33개국 청년 18만 명을 조사한 결과, 성경험 숫자가 25개국에서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과거에 섹스리스는 노화가 주원인이었다면 지금은 사회·경제적 스트레스 등이 큰 이유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심리학계나 의학계에선 환경적 요인이 청년들의 섹스리스를 야기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특히 치솟는 물가와 대출 등 재정적 부담에 연애나 결혼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젠더 및 성생활 연구로 유명한 미국 인디애나대 킨제이 연구소의 저스틴 레밀러 선임연구원은 “우울, 불안과 돈 걱정 등이 젊은이들의 성욕을 감퇴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범람이 성생활에 타격을 줬다는 의견도 있다. 프랑스 IFOP 조사에 따르면 35세 미만 부부 중에 절반가량이 “넷플릭스 등을 보기 위해” 성관계를 피한다고 답했다. 인디애나대 연구진도 “온라인의 성적 동영상이나 자극적 채팅 등에서 성적 즐거움을 찾는 청년이 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 신경과학자인 오로르 말레 카라스 박사는 “최근 많은 상담자들은 ‘굳이 노력해서 실제 만남을 갖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는다”고 전했다.
사회가 발전하며 성평등 의식이 높아진 게 오히려 섹스리스 확산에 일조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프랑스에선 1981년 “원치 않는데 성관계를 가질 때가 있다”고 답한 여성의 비율이 76%에 이르렀으나, 올해 기준 52%로 떨어졌다. 크라우스 에디터는 “현대 여성은 남성의 성관계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과거의 그릇된) 의무감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며 “남성 역시 성욕이 적으면 남성성이 부족하다는 편견의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