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또한번 충돌했다.
이스라엘은 19일(현지 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동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이스파한의 군사 기지를 공격했다. 이스파한은 이란의 핵 관련 시설을 비롯한 군사 시설이 대거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미국 ABC방송 등은 이스라엘이 현지 목표물을 미사일로 공격했다고 전했다. 이란 국영TV는 이스파한 상공에서 무인기(드론) 3기가 목격됐고 모두 격추했다고 보도했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앙숙인 이스라엘과 이란이 공격을 주고받는 ‘보복의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이번 공격은 이란이 1일 주시리아 자국 영사관을 이스라엘이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13일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한 것에 대한 재보복이다.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인식된다.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많은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대규모 지상군도 보유하고 있다. 중동의 대표적인 두 군사강국 간 충돌이 확대될 경우 중동 정세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확전, 나아가 전면전에 들어갈까. 이스라엘과는 우방, 이란과는 적대 관계인 미국은 두 나라 간 충돌을 어떻게 바라볼까.
● 네타냐후, 확전 은근히 원하지만 미국 눈치도 봐야
이스라엘에게 보복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카드였다. 해야만 하는 조치였다. 엿새 전 이란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당시 이란으로부터 날라 온 미사일과 드론의 99%를 요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란으로부터 300여 기나 되는 미사일과 드론이 처음으로 본토를 향해 날라 왔는데 아무 대응도 안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란은 1979년 이후 계속 이스라엘과 앙숙이었던 나라다. 이란의 고위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을 ‘작은 사탄(큰 사탄은 미국을 의미)’, ‘지도에서 지워야 할 나라’로 표현해 왔다.
이란이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에서 다양한 ‘반이스라엘’ 성향 무장정파를 지원하며 이스라엘을 괴롭혀왔다는 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7일 발생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 배후에도 이란이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레바논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로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충돌해 온 헤즈볼라도 이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왔다.
다시 한 번, 이란에 대한 보복은 이스라엘로서는 꼭 해야 하는 조치였다.
특히 현재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의 공격을 제대로 못 막았고, 개인 비리 혐의 등으로 정치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총리직을 유지하려면 연정을 이룬 극우 보수 세력과 협력을 강화해 ‘전시 내각’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또 중도 보수층의 지지도 더 확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적 이란과의 충돌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시 내각, 나아가 정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다. 이란과의 직접적인 충돌이 벌어진 계기였던 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에 대한 공격이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시도한 조치였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란과의 갈등이 심해질수록 네타냐후 총리에게는 유리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란과의 대규모 확전을 시도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미국 때문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심 우방국이다. 또 이스라엘처럼 이란을 영내 정세를 혼란스럽게 하는 ‘문제 국가’로 생각한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면서도 “확전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내고 있다. 이스라엘은 안보 면에서 미국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13일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을 요격할 때도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 만큼, 이스라엘로서는 미국이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무작정 이란과의 확전을 추진한다는 건 부담이다.
● 이란, 확전 피하고 싶은 의지 강해
이란은 전면전은 물론이고 확전도 피하고 싶어 한다.
13일 이스라엘로 발사한 미사일과 드론이 99% 요격됐다는 이스라엘 측 발표에도 “목적을 달성했다”며 더 이상의 공격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19일 이스라엘의 이스파한 공격 뒤에는 “공격도 아니었다”고 폄하했다. 현재로서는 추가 대응에 나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의 중심 국가다. 나아가 전체 이슬람권의 대표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원한다. 1979년 시아파 성직자들이 중심이 돼 일으킨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신정공화정을 이룩한 이란에게 이스라엘은 반드시 응징해야 할 대상이다. 이슬람의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예루살렘을 유대교의 나라인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다는 건 이란이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해외작전을 수행하는 엘리트 부대 이름이 ‘쿠드스군(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인 것도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란은 1979년 이후 미국과 서방의 다양한 제재를 경험해 왔다. 1980~1988년에는 당시 아랍권의 대국이었던 이라크와 전쟁도 치렀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핵무기 개발 의혹으로 더욱 강한 제재에 노출돼 왔다. 이란이 세계적인 석유와 천연가스 보유국이며, 동시에 중동 국가로는 드물게 곡창지대도 갖췄지만 경제난을 겪는 이유다. 아프가니스탄(아프간)과 더불어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한 나라이기도 하다.
경제난과 억압된 사회 분위기로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은 커지고 있다. 2022년 이른바 ‘히잡 시위’가 터지며 성난 민심은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왜 다른 나라의 안보와 전쟁에 개입하느냐’는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과의 심각한 충돌은 정부와 체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감안하면 오랜 기간 전쟁을 수행하는 것도 어렵다. 또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인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치룰 경우 승리를 장담하기도 어렵다. 재래식 무기가 동원되는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에 비해 공군력이 크게 뒤처지고, 무기도 낙후돼 있어 역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뒤에 있는 미국도 의식해야 한다.
이란으로서는 이스라엘과의 직접적인 충돌은 피하면서, 헤즈볼라 등을 동원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게 더 효과적이다.
● 미국, ‘조용한 중동’ 원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대한 중동이 조용하길 바란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우방이고, 이란이 마음에 안 들어도 ‘불안한 중동’은 큰 악재다. 특히 11월에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중동이 시끄러워질수록 재선에 도전하는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불리하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진영에서는 불안한 중동 정세를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공격 포인트로 삼고 있다.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는 ‘가자지구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중동에서 새로운 전쟁, 그것도 지역 내 최고 군사강국인 이스라엘과 이란이 정면충돌 하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한 직후부터 중동과의 거리두기를 나름대로 분명히 해 왔다. 집권한 지 7개월 뒤인 2021년 8월 아프간에서 미군을 전격 철수시킨 게 좋은 예다.
아프간 전쟁의 피로는 전쟁이 시작된 2001년 10월부터 누적돼 왔다. 또 미군의 철수는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그렇게 신속하게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군시킬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미군 철수 뒤 아프간은 완전히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정파인 탈레반에 넘어갔다. 탈레반의 강압적이고 전근대적인 통치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개입할 의사가 전혀 없다.
● ‘그림자 전쟁’ 대신 새로운 갈등 벌어지나
현재로선 이스라엘과 이란 간 확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두 나라는 자신의 자존심은 세우고, 상대방에게는 어려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두 나라 사이에 벌어져 온 이른바 ‘그림자 전쟁’ 대신 새로운 형태의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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