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이 약 반 년간 계류 중이던 총 950억 달러(약 130조 원) 안보예산 패키지 법안을 20일(현지 시간) 통과시켰다. 지난해 10월 법안 마련 당시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공격 당한 이스라엘, 러시아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하지만 이날 통과된 법안엔 중국 소셜미디어 ‘틱톡’ 강제 매각, 이란산 석유 수입에 관여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 강화, 대만 지원 확충 등 패권 갈등 중인 중국을 겨냥한 법안이 대거 포함됐다.
11월 미 대선에서 격돌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일 중국을 겨냥해 고율 관세 부과 등 강경책을 내놓는 상황에서, 중국 또한 미 소셜미디어 ‘와츠앱’을 퇴출시키겠다는 뜻을 밝히는 등 맞불을 놓고 있어 미중 갈등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 美 “틱톡 매각” vs 中 “와츠앱 퇴출”
미 하원은 이날 안보예산 패키지 법안을 전체 435석 중 찬성 360표 대 반대 58표로 통과시켰다. 상원 통과가 남아있지만 집권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어서 23일 상원 표결 또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법안에는 틱톡 모회사인 중국 정보기술(IT) 기업 바이트댄스가 360일 안에 틱톡 지분을 매각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바이트댄스가 매각을 거부하면 미국 내 틱톡 앱 다운로드 자체를 금지해 사실상 미 시장에서 퇴출되도록 했다.
종전 법안은 매각 시한을 6개월 이내로 제시했지만, 이날 법안은 270일에 90일 연장 기한을 둬 360일로 변경됐다. 또 대만에 39억 달러를 지원하는 등 총 81억 달러의 인도태평양 안보 지원 예산도 포함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미 지지 입장을 밝힌 만큼 이르면 내년 틱톡 강제 매각은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인구의 절반 이상인 약 1억7000만 명이 이용하는 틱톡이 미국인의 개인정보를 중국공산당에 넘기고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이에 맞서 중국은 “바이트댄스의 틱톡 매각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양국의 디지털 냉전이 더 심화되고 있다. 앞서 중국 역시 안보 우려를 이유로 애플의 중국 앱스토어에서 미국의 소셜미디어 와츠앱, 스레드 등을 삭제하도록 명령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미국의 틱톡 매각 추진에 대해 “타인의 좋은 물건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건 완전히 강도 논리”라고 비판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19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틱톡 금지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위배되므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 이란산 석유 거래하는 中 기업도 제재
이번 예산안에는 최근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한 이란의 석유를 거래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이란산 원유를 취급하는 중국 정유소, 거래를 중개하는 중국 금융사 또한 대대적인 제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란이 수출하는 원유의 80% 이상은 중국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산 원유의 중국 수출에 제동이 걸리면 최근 오름세를 거듭하고 있는 국제 유가의 추가 상승 또한 예상된다. 일각에선 지금보다 배럴당 최대 8.4달러가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날 법안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예산 264억 달러도 포함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과 서구 문명 수호에 대한 미 의회의 초당적인 지지를 보여줬다”고 반겼다. 다만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는 “이번 지원으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더 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희생될 것”이라며 “이스라엘에 전쟁을 지속할 청신호를 줬다”고 반발했다.
이번 법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안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608억 달러다. 그간 야당 공화당 내 강경파는 이 돈을 불법 이민자 방지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에 밀리면서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등 공화당 내 온건파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를 도와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을 통해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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