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대치 중인 이란이 히잡(이슬람 여성 전통의상)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며 내부의 반정부 여론도 옥죄기에 나섰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이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서 보복 공격을 감행한 13일 이란 경찰은 히잡 미착용에 대한 전국적인 단속 계획을 발표했다. 이란의 보복 공격 몇 시간 뒤 압바살리 모하마디안 테헤란 경찰청장은 “히잡과 정조에 대한 사회적 금기를 깨고 히잡 규정을 위반하려는 사람들과 맞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지 매체가 ‘누르(Noor·빛)’라고 부른 히잡 단속 계획에 따르면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은 체포가 가능하며, 고객의 히잡 의무 준수를 보장하지 못한 기업은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란 경찰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을 강제로 차에 태우거나 전기충격을 가하는 등 폭력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는 영상이 속속 공유되고 있다.
이란이 히잡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배경을 두고 이스라엘과의 충돌로 커진 국내 불만을 억누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제재와 정권의 부패로 경제난이 가중하면서 이란 내부에선 정권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뉴욕에 기반한 이란 인권센터 하디 가에미 소장은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에 “중동 긴장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이란은 국내 반대 여론에 대한 탄압을 강화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란에서는 2022년 9월 히잡 미착용으로 구금됐던 여대생 마흐사 아마니가 의문사하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인권단체들은 이후 지난해에만 800건 이상의 사형이 집행되는 등 정부가 정권 유지를 위해 잔인한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그룹(IHR)의 마무드 아미리-모하담 이사는 TOI에 “정부는 여전히 마흐사 아마니 사건 이전에 가졌던 통제력을 되찾지 못했다”며 “이스라엘과의 긴장이 고조돼 국제적 관심이 쏠린 지금이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외적 위기 상황에서 폭력적인 진압이 이어지자 이란 여성들은 두려움을 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30세 이란 여성 디자이너는 미국 ABC방송에 “전쟁과 국가적 위험에 대한 뉴스를 보려고 TV를 켜면 화면에 나오는 것은 도덕 경찰의 단속 소식”이라며 “전쟁으로 집이 무너지고 내가 죽든 말든, 내 시신이 잔해에서 건져질 때 머리에 히잡을 두른 상태여야 한다는 건가”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란의 여성 인권 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21일 교도소에서 남긴 음성메시지를 통해 “히잡 강제는 정권이 권력과 통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라며 “이슬람 정권이 이란 여성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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