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북제재 위반을 감시하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해산됐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패널 임기 연장안에 거부권을 행사해서다. 점점 밀착하는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신임 주한 러시아대사는 이의를 제기했다.
“러시아는 꼭 전문가 패널을 해체하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우리가 제안한 (대북 제재에 일몰 조항을 신설하자는) 조건이 받아들여진다면 패널 임기 연장안에 ‘오케이(OK)’ 했을 것이다.”
“러, 국제법 따르면서 북한과 협력중” 제재위반 의혹 반박
2일 지노비예프 대사는 70분 넘게 이뤄진 동아일보와 채널A 공동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급격하게 북한에 기울고 있다는 관측에 수차례 선을 그었다. 1월 초 부임한 그는 지난달 26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기도 전부터 국내 언론들과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 의혹을 반박해왔다.
그는 이날도 시종일관 “러시아는 국제법과 국제의무를 따르면서도 ‘우호국’인 북한과 협력을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북한이 지난해 11월 첫 군사정찰위성인 ‘만리경 1호’ 발사에 성공한 것과 관련해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기술을 지원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즉답을 피했다. 그는 “한반도 민족은 높은 근면성과 넘치는 재능, 창의력을 갖고 있다”라며 “북한이 본국의 방어력을 강화하는 데 이뤄낸 성과는 북한의 힘과 역량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반박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 소속 전문가 3인이 우크라이나에 북한산 미사일이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는 최근 로이터통신의 보도에도 다른 의견을 내놨다. 이들은 지난달 25일 안보리에 비공개 제출한 보고서에서 “1월 2일 하르키우시에서 수거된 미사일 잔해가 북한산 화성-11형 계열 미사일에서 나왔다”며 발사지를 러시아 내로 추정했다. 사실이라면 대북제재 위반이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올해 초엔 이런 의혹들에 대해 “증거의 신뢰도가 낮다”이라며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의 결론이 필요하다고 수차례 주장해왔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해당 보고서는 패널 구성원 전원이 원칙적 절차에 따라 서명한 공식 보고서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보도를 에둘러 반박했다. 이어 “전문가 패널은 정치적으로 (서구권에) 편향된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낸 마지막 공식 보고서에는 ‘러시아가 대북제재를 위반했다는 증거물을 찾지 못했다’라는 내용이 들어있다”라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종전구상엔 “이런 최후통첩으론 불가능”
그는 2022년 2월 발발해 최근 개전 800일을 돌파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들에 장기화의 책임을 돌렸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러시아의 항복을 요구하는 우크라이나의 현재 평화공식(Peace Formula)에 따라서는 합의가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평화공식은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내놓은 종전 구상이다. 러시아군 완전 철수, 전쟁포로 교환, 우크라이나 주권 보장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지노비예프 대사는 “내실 있는 합의를 하려면 최소한의 건설적 태도를 보여야 하는데, 우크라이나는 지금도 최후통첩과 불가능한 요구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종전 논의과 관련해서 그는 “모든 전쟁엔 끝이 있고, 이 전쟁도 역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면서도 “서방의 간섭만 없었다면 이미 끝났을 것”이라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이어 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나치 국가’로 묘사하며 종전 조건으로 요구한 “우크라이나의 비나치화 및 비무장화”와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프리자 헤르손 등 러시아가 10월 초 합병 절차를 끝낸 4개 도시를 러시아 영토로 병합을 재차 강조했다.
한편 지노비예프 대사는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선 “딱히 좋지 않다는 평가에 동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낙관주의자’를 자임하며 “한-러 관계가 나빠진 이유는 양국의 내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서방 국가들이 제공한) 외부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라며 “양국 관계가 빠르게 복원될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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