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은 걸쭉하게, 사과는 품위있게 하는 美 정치인들[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8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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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한 섹스 스캔들에 사과는 고품격’
미국 대통령은 어떻게 사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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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간도 불법적이지 않다’라는 플래카드를 든 시위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남미 이민자에게 ‘불법’(illegal)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사과했다. 오픈유니버시티 홈페이지
‘어떤 인간도 불법적이지 않다’라는 플래카드를 든 시위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남미 이민자에게 ‘불법’(illegal)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사과했다. 오픈유니버시티 홈페이지


I owe her an apology. I shouldn’t have been such a wiseguy.”
(그녀에게 사과하겠다. 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았어야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사과했습니다. 한 여기자로부터 “미국-러시아 관계를 너무 낙관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자 “내가 언제 낙관했나. 당신 직업 잘못 택한 것 같다”라고 쏘아붙인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한 것입니다. ‘owe an apology’는 ‘사과를 빚지다’라는 독특한 영어 표현입니다. ‘I apologize’보다 사과 강도가 높습니다. ‘wiseguy’(와이즈가이)는 마피아 해결사에서 유래한 단어로 똑똑한 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임기 초 사과를 소환한 것은 최근 중남미 이민자에게 ‘불법’(illegal)이라는 단어를 쓴 것을 사과했기 때문입니다. “I regret using that word”(그 단어를 쓴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행동이 빠른 편이 아닌데 사과는 언제나 초고속입니다. 사과의 언어도 ‘apology’ ‘regret’ 등 다양합니다. 바이든 대통령뿐만이 아닙니다. 한국 문화에서 보면 신기할 정도로 미국 지도자들은 사과에 능합니다. 사과의 기회를 놓치면 그 대가가 더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자녀가 잘못했을 때 부모가 타이르는 말이 있습니다. “It’s never too late to say sorry”(미안하다는 말에 늦은 때란 없단다). 사과는 결코 나약함이나 패배의 증거가 아니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랍니다. 사과에 인색한 이들이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미국 역사에 남는 대통령의 사과를 알아봤습니다.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빌 클린턴 대통령. 빌 클린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I misled people, including even my wife. I deeply regret that.”
(나는 아내 힐러리를 포함해 국민을 오도했다.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졌을 때 빌 클린턴 대통령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I did not have sexual relations with that woman, Miss Lewinsky”(나는 그 여자, 르윈스키 양과 성관계를 맺지 않았다). 명언이기는 한데 거짓말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은 거짓말을 싫어하는 민족입니다. 어떻게 사과했을까요.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regret’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the president used the R word’(대통령이 R 단어를 썼다).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을 때 중대한 의미가 있는 단어라는 것입니다. 격식을 갖춘 ‘sorry’에 해당합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국가 간에, 공식 문서에서 쓰는 1급 사과입니다.

이건 1차 사과였습니다. 나중에는 ‘sorry’도 동원했습니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되고 상원으로 넘어가자 급해졌습니다. 상원 표결 5분 전 로즈가든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I am profoundly sorry for all I have done wrong in words and deeds”(나의 모든 잘못된 말과 행동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 검은 옷의 힐러리 여사가 옆을 지켰습니다. 상원에서 부결되면서 대통령 자리를 지켰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때 이재민을 위로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조지 W 부시 대통령 센터 홈페이지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때 이재민을 위로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조지 W 부시 대통령 센터 홈페이지


To the extent that the federal government didn’t fully do its job right, I take responsibility.”
(연방 정부가 제대로 일하지 못한 범위 내에서 내 책임이다)
또 다른 ‘R 단어’가 있습니다. ‘responsibility’(책임)입니다. 책임을 인정하는 식으로 사과하는 것입니다. 미국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된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썼던 사과법입니다. 바람직한 사과는 잘못 인정, 참회, 개선 의지 등 3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합니다. ‘responsibility’ 사과는 참회가 빠진 ‘반쪽 사과’라는 비판도 있지만,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리더십이 강조되기 때문에 지도자들이 선호합니다.

이 사과가 논란이 된 것은 ‘responsibility’가 아닌 ‘to the extent’ 때문이었습니다. ‘정도 내에서’ ‘하는 한’이라고 범위를 규정지었습니다. 듣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조건부 사과입니다. ‘to the extent that’을 빼야 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나중에 자서전 ‘결정의 순간들’(Decision Points)에서 카트리나 사태 때 ‘sorry’ 사과를 하지 않을 이유를 ‘정치적 고려’라고 해명했습니다. “Katrina presented a political opportunity that some critics could exploit”(일부 비판가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는 무사히 넘겼을지 몰라도 최악의 지지율로 퇴임한 대통령이 됐습니다.

의료보험 개혁 법안(오바마케어)이 의회를 통과하자 박수로 환영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가운데). 오바마 재단 홈페이지


I am sorry that they are finding themselves in this situation based on assurances they got from me,”
(나로부터 받은 약속에 근거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돼서 미안하다)
사과의 지존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입니다. 약자의 처지에서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2013년 의료보험개혁 법안 ‘오바마케어’ 시행 혼란 때 이렇게 사과했습니다. 오바마케어는 미국의 숙원인 전 국민 의료보험 가입을 가능케 했으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온라인 가입 사이트는 자주 고장을 일으켰고, 가입 절차도 어려웠습니다. 기업은 직원 의무 가입을 피하려고 고용을 꺼렸습니다. 보험사는 수지타산을 맞추려고 기존 가입자를 대거 탈락시켰습니다.

‘sorry’라고 확실하게 사과했습니다. ‘assurances they got from me’라고 잘못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이어 개선 의지도 밝혔습니다. “We are going to do everything”(정부는 모든 일을 하겠다). 이때뿐만이 아닙니다. 외국에만 나갔다 하면 사과를 하는 통에 ‘사과 순방’(apology tour)이라는 조롱까지 받았습니다. 유럽 방문 때 “America has shown arrogance”
(미국은 오만했다), 아랍국가 방문 때 “we have not been perfect”(미국은 완벽하지 못했다), 테러와의 전쟁 실패에 대해 “we went off course”(미국은 항로를 이탈했다) 등 다양한 언어로 사과했습니다. 예외적으로 일본 히로시마 방문 때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를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명언의 품격
인터뷰에 앞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오른쪽)과 언론인 데이비스 프로스트(왼쪽).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인터뷰에 앞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오른쪽)과 언론인 데이비스 프로스트(왼쪽).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나면서 임기를 마치지 못한 아쉬움으로 가득한 사임 연설을 했습니다. 사과는 없었습니다. 국민 비호감으로 찍혀 3년 동안 자서전을 쓰며 은둔생활을 하다가 영국 언론인 데이비드 프로스트와의 인터뷰를 계기로 다시 대중 앞에 섰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프로스트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거액의 인터뷰료를 제안받았기 때문입니다. 프로스트 측은 60만 달러(현재 가치 300만 달러)를 지불하겠다고 했습니다. 인터뷰는 힘들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과거에 프로스트와 인터뷰한 적이 있는 데 쉬운 질문들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판이었습니다. 프로스트는 1년 동안 사전 조사를 했습니다.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 치밀하게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인터뷰 과정은 2009년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으로도 제작됐습니다.

인터뷰 내용이 워낙 방대해 90분씩 4회에 걸쳐 방송됐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1회차 인터뷰는 4500만 명이 시청했습니다. 정치 인터뷰로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곤혹스러운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주변에 사과했느냐”라는 질문에 닉슨 대통령은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I let down the country. I let the American people down.”
(나는 나라를 실망시켰다. 미국 국민을 실망시켰다)
‘let’은 ‘놓아두다’, down’은 ‘아래로’라는 뜻입니다. ‘감정이 떨어지게 놔두다,’ 즉 ‘실망시키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독백하듯이 ‘let down’을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정식 사과는 아니었지만, 그의 속마음이 어떤지 잘 알 수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닉슨 대통령을 용서한 미국인들이 많습니다. 2013년 프로스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타임스의 부고 기사 제목입니다. ‘David Frost, Interviewer Who Got Nixon to Apologize for Watergate, Dies at 74.’(닉슨을 워터게이트에 대해 사과하게 만든 인터뷰어 데이비드 프로스트가 향년 74세로 타계하다)

실전 보케 360
뉴욕 컬럼비아대를 방문해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가 학생들로부터 야유를 받은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컬럼비아 데일리 스펙터 홈페이지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최근 미국 대학가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과 민간인 학살에 반대하는 시위가 거세게 번지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친(親) 이스라엘 정치인이 캠퍼스를 방문하는 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입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뉴욕 컬럼비아대를 방문했습니다. 학생들 앞에서 시위를 그만두지 않으면 학교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삭감하겠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이런 야유로 답했습니다.

Mike, you suck!”
(마이크, 당신 밥맛 없어)
‘suck’(썩)은 ‘빨아들이다’라는 뜻입니다. ‘형편없다’라는 욕으로도 씁니다. 왜 ‘빨다’가 욕이 된 것일까요. 원래 ‘suck ass’에서 ‘ass’(엉덩이)가 생략된 것입니다. 강하지 않은 욕이라 일상 대화에서 많이 씁니다. 외출하고 싶은데 날씨가 나쁘다면 이렇게 말합니다. “I want to go out, but the weather sucks.” 김 선생님 수업이 마음에 안 들면 학생들은 이렇게 불평합니다. “Mr. Kim’s class sucks.”

‘suck’을 의인화한 ‘sucker’(써커)도 많이 씁니다. 상대의 말을 잘 빨아들이는, 즉 잘 속는 사람을 말합니다. 상대를 속이고 나서 이렇게 놀립니다. “you sucker!”(이 바보야).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을 말하기도 합니다. “She is a sucker for romance movies.”(그 여자는 로맨스 영화 광팬이야)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연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2년 2월 7일 소개된 대통령 ‘핫마이크’ 사건입니다. 대중 앞에서 연설할 기회가 많은 대통령은 자나 깨나 마이크를 조심해야 합니다. 우연히 켜져 있는 마이크를 통해 사적인 대화 내용이 공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욕설이나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 창피도 그런 창피가 없습니다.

▶2022년 2월 7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07/111611535/1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밀담을 나누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오바마 재단 홈페이지
얼마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혼잣말로 기자에게 욕한 것이 방송돼 논란이 됐습니다. 공개하고 싶지 않은 발언이 마이크를 통해 고스란히 알려지는 상황을 ‘hot mic’(핫마이크)라고 합니다.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든 ‘핫마이크’ 사례들을 알아봤습니다.

He is a major-league asshole.”
(메이저리그급 나쁜 녀석이야)
2000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딕 체니 부통령에게 이렇게 말하다가 딱 걸렸습니다.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뉴욕타임스 기자를 가리키며 한 말이었습니다. 욕설이 공개된 뒤 사과는커녕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I’m a plainspoken fellow.”(나 솔직한 사람이야)

It’s important for him to give me space.”
(그는 나에게 여유를 줘야 한다)
2012년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핫마이크 사건이 있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나눈 미사일 방어(MD) 밀담이 우연히 마이크에 잡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MD 문제를 잘 처리할 테니 여유를 달라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당선인에게 전해 달라”라고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말했습니다. ‘space’는 ‘비어있는 공간’이라는 뜻에서 출발해 ‘시간적 공간적 여유’를 말합니다.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필요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I need some space.” 간곡하게 부탁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대화 톤 때문에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Yes, yes, yes. You are a one horse pony.”
(알아 알아. 실력도 변변치 않은 주제에)
이번에 바이든 대통령이 욕하다가 걸린 대상은 폭스뉴스의 피터 두시라는 기자입니다. 이전에도 두시 기자에게 불쾌감을 드러낸 적이 있습니다. 2020년 대선 승리 기자회견에서 두시 기자가 아들 헌터 바이든에 관해 묻자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원래 정확한 단어는 ‘one trick pony’입니다. ‘pony’(조랑말)는 서커스에서 다양한 재주를 부릴 줄 아는 요령 좋은 동물입니다. ‘원 트릭 포니’는 한 가지 재주밖에 부릴 줄 모르는, 즉 재능이 시원찮은 사람을 뜻합니다. 두시 기자가 잘난 척하지만, 실력은 형편없다고 비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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