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년 스위스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 몰락을 부르고, 그 자신도 일주일 만에 재산 360억 달러(50조 원)를 날린 남자.
2021년 미 월가를 충격에 빠뜨린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사태의 주인공 한국계 투자자 빌 황(60·한국명 황성국)의 재판이 미 뉴욕 맨해튼 남부지법에서 8일(현지시간) 열린다. 뉴욕남부지검이 2022년 4월 아케고스 캐피털 매니지먼트 설립자인 그를 사기 등 혐의로 기소한지 2년 만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나 블룸버그통신, CNN 등 외신은 일제히 황 씨의 재판 소식을 전하며 미스터리 같았던 아케고스 마진콜 사태를 되짚어보는 분석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황 씨의 도박에 가까운 파생상품 거래로 아케고스는 파산, 은행들은 총 100억 달러(14조 원) 손실을 입었으며 이중 절반인 55억 달러(7조5000억 원) 손실을 본 CS는 결국 지난해 UBS에 합병됐다. 미 검찰은 황씨가 금융회사들에 속여 거액의 돈을 빌리고, 이 돈으로 특정 주식을 집중 매입하도록 해 주가를 조작했다고 보고 있다.
빌 황의 도박에 가까운 대범한 투자와 드라마틱한 손실, 월가의 전형적 투자자와 다른 면모 때문에 그의 사건은 특히 주목을 받아 왔다. 황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2년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1.5세대다. 미 UCLA와 카네기멜런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1990년 현대증권 뉴욕 법인에서 업무를 시작하다 거물 투자자 줄리언 로버트슨의 눈에 들면서 월가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사실상 한국계 최초의 월가 ‘인사이더’ 그룹에 든 셈이다.
승승장구하다 2012년 내부자거래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고발을 당한 뒤 조용히 지내던 황 씨는 개인 투자펀드나 다름 없는 가족운용회사(패밀리오피스) 아케고스로 돌아왔다 더 큰 사고를 치게 된다. 은행돈을 끌어 매수한 특정 종목 주가가 오르면 황 씨가 돈을 벌고,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은행이 마진콜을 통해 차액 충당을 요구하는 ‘스왑’ 계약을 여러 은행에 문어발식으로 벌인 것이다. 결국 주가 하락기에 몰려오는 마진콜을 감당 못해 아케고스는 파산하고 은행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 거래는 은행이 주식을 소유하는 형태이고, 아케고스는 고객돈이 아닌 자기 돈으로 투자하는 패밀리오피스라 규제가 느슨해 각 은행도 규제당국도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문제를 감지한 골드만삭스가 가장 먼저 마진콜 후 매물을 던지며 이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주가가 폭락한 뒤에 보유 매물을 던진 CS는 이 손실로 계속해서 휘청거리다 글로벌 긴축 파고와 시장의 불신을 넘지 못했다.
노련한 투자자가 왜 이런 도박을 감행했나. 월가의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다. FT는 판사가 황 씨도 빈털터리가 됐는데 ‘사기’의 동기는 무엇인지 물었지만 검찰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황 씨는 다른 투자자들처럼 사치를 즐긴 것도 아니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신앙을 전하기 위해 투자를 한다고 믿어왔다고 한다. 뉴저지주 소박한 자택에서 코스트코에서 산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곤 했다는 것이다.
또 그가 설립한 기독교 재단에는 예수의 피로 죄에 물든 뉴욕을 씻어내는 작품이 걸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황 씨가 꿈에 본 비전을 제작해 달라며 2016년 유명 아티스트인 박승모 작가에게 의뢰한 작품이다.
황 씨의 재판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법원인 점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담당 판사 앨빈 헬러스타인(90)은 지난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형사 재판을 연방법원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던 판사다. 샘 뱅크먼프리드 FTX 창업자도 이 법원 옆 연방법원에서 25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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