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취임식을 치른지 닷새 만인 12일 첫 개각을 단행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상황에서 군 사령탑인 국방장관을 베테랑군인인 세르게이 쇼이구(69)에서 경제학자 출신인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전 제1부총리(65)로 전격 교체했다.
2년 3개월째 이어진 전쟁에서 최근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는 러시아가 전쟁의 총괄 책임자로 경제 전문가를 택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전쟁 발발 뒤 가장 큰 변화”라는 평가가 잇따르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이 이번 전쟁을 장기적 관점에서 서방과 맞서는 ‘쩐의 전쟁’으로 인식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안 그래도 무기 및 자금난에 허덕이는 우크라이나로선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지원이 더욱 절실한 형편이다.
●“국방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인물 선택”
이날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쇼이구 국방장관을 벨로우소프 전 제1부총리로 교체하는 방안을 공식 제안했다. 3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푸틴 대통령은 이달 7일 취임식을 가진 뒤 정부개편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에선 국방장관 등 대통령이 직접 보고를 받는 부처의 수장들은 대통령이 후보를 지명하면 상원의 검토를 거쳐 결정된다.
쇼이구 장관은 상급부처인 국가안보회의 서기로 임명돼 겉으로 봤을 땐 영전에 해당한다. 하지만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축출(oust)된 분위기”라며 사실상 해임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반(反)정부 언론인 베르스트카는 “쇼이구의 인사이동으로 국가안보회의는 푸틴의 ‘전직’ 핵심인물들이 가는 거처가 되고 있다”며 “놓아줄 순 없지만 더 이상 배치할 곳도 없는 이들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경제 전문가인 벨로우소프 전 제1부총리를 국방장관에 앉힌 배경에 대해 “올해 국방 예산이 국내총생산(GDP)의 6.6%로 급증해 소련 붕괴 이후 최대로 불어났다”며 “이를 특별히 주의해 관리할 인물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전장에서 혁신에 더 개방적인 사람이 승리한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국방비를 효율적으로 지출하고 조달해 군수산업을 제대로 키우려는 취지라고 분석했다.
●“세계 경제 전쟁 승리를 위한 포석”
벨로우소프 전 제1부총리는 모스크바국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다. 푸틴 대통령이 총리로 재직하던 2008년에 경제부 국장으로 행정부에 입문했다. 이후 경제개발부 장관을 맡은 뒤 푸틴의 경제 보좌관을 지냈으며, 2020년 1월부터 제1부총리로 재직했다.
그는 경제관료로 요직을 두루 맡아왔지만, 군 경력은 전혀 없는 민간인 출신이다. 전직 러시아 외교관인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알렉산드르 바우노프 선임 연구원은 로이터통신에 “민간인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겠다는 건 푸틴 대통령이 세계와의 ‘경제 전쟁’에서 승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미 장기화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됐으며 앞으로도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때문에 양국은 물론 유럽 등 세계가 경제적인 영향을 크고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전쟁의 여파로 서방 국가들은 국방비를 경쟁적으로 늘리는 있으며, 러시아 역시 올해 국가 예산의 약 3분의 1을 국방에 배정했다.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지원이 지연되는 동안 공세를 강화해 전쟁의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 이를 유지하고 유리하게 전쟁을 끝내려면 더욱 제대로 된 국방비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서방의 제대 등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고물가에 시달리는 등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점도 한몫했다.
푸틴 대통령의 벨로우소프 임명은 러시아가 전쟁자금 조달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서는 신호탈일 가능성이 높다. 베르스트카는 벨로우소프 전 부총리에 대해 “전쟁과 군비 지출 증가를 위해 국가 경제의 동원을 지지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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