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흉노 록’ 밴드 더 후(The HU)를 아시나요[시차적응]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5일 13시 00분


‘저 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지?’ ‘우리와는 어떻게 다르지’ 국내외 뉴스 속 궁금증을 콕 짚어 새로운 시각에 적응시켜 드립니다.


여러분은 ‘몽골’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우선 저는 광활한 사막과 초원의 자연 풍경이 떠오릅니다. 말을 타고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유목민의 모습도 그려지고요. 그렇게 멀다고 느껴지는 국가는 아닙니다.

그러다 최근 몽골 문화부와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어려운 취재는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준비를 시작했는데요. 곱씹다보니 제가 아는 몽골의 문화는 역사책에서 본 내용이나 여행 후기에서 접한 모습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Mongolian Tourism Organization 유튜브 캡처.

그때부터 초조해졌습니다. 몽골의 다른 문화 유산은 어떤 게 있지? 한국 독자들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 상황에서, 친바트 너밍 몽골 문화부 장관을 줌(Zoom)을 통해 만났습니다. 아직은 몽골 문화가 어색한데도, 문화 정책이 잘 진행 중인지 질문을 던졌는데요. 너밍 장관은 단호했습니다.

“몽골의 유목 문화는 유일무이합니다. 이런 문화유산에 오늘의 기술을 더해서, 우리는 세계 어디에도 없던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없느냐는 질문을 준비했던 저는 몇 번씩 말을 멈춰야 했습니다. 제가 좁게만 생각했다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찾아봤습니다. 너밍 장관의 의지와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는지, 몽골 문화 정책의 현주소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힙(Hip)’한 콘텐츠도 있었고, 한편으론 이런 콘텐츠가 얼마나 확산될 수 있을지 고민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합니다.

◆ 여기도 몽골이었어? 예능·드라마 촬영지로 부상하는 몽골
최근 몽골 여행을 다녀온 분들이 부쩍 많아졌죠. 2022년 6월부터, 90일까지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해진 점도 작용했을 테고요. 인기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연예인들이 몽골로 패키지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방영되며, 비교적 합리적인 비용으로 색다른 풍경과 문화를 즐기는 여행지로 몽골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진 듯합니다. TV 프로그램이나 소셜미디어에서 ‘몽골 여행’을 마주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실은 그 전부터도 다양한 방식으로 몽골을 접하셨을 겁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평양역이라고 촬영한 장소가 몽골 울란바토르 기차역이었단 점이 가장 잘 알려져 있죠. 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은 아예 주인공 강남순이 어린 시절을 몽골에서 보냈다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그 밖에 2013년 걸그룹 티아라부터 걸그룹 트와이스, 가수 헤이즈, 혁오 밴드 등도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몽골을 택한 바 있습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북한 평양역 장면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촬영됐습니다. 사진 출처 tvN 홈페이지
걸그룹 트와이스 ‘올해 제일 잘한 일’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몽골 울란바토르와 테를지 국립공원. 당시 설원하면 떠오르는 일본 홋카이도라는 소문은 돌았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JYP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처.


몽골이 한국 관광객과 제작진이 선호하는 장소가 된 이유는 뭘까요. 약 3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국가면서도,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드넓은 자연을 만날 수 있어서일 겁니다. 몽골 문화부도 해외 콘텐츠 제작자들이 몽골을 찾도록 적극 나서고 있다는데요. 너밍 장관은 관련한 지원책으로 2021년 8월 통과된 이른바 ‘영화 산업 발전법’을 꼽았습니다. 해당 법에 따르면 몽골에서 영화를 제작한 외국 제작진은 제작비의 5%를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몽골을 노출시켜 관광과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겠단 취지는 이해가 됩니다. 다만 광활한 초원이나 유목 생활이라는 몽골의 ‘이미지’ 소비에 그치지 않고, 몽골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콘텐츠에 세계적인 관심이 모일 수 있어야 할 텐데요. 세계에서 주목 받는 몽골의 고유한 콘텐츠는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 들어는 봤나 ‘흉노 록’… 유목 전통에서 쿨함을 찾다
장엄한 사막과 초원을 배경으로 드럼 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현악기 연주가 흘러나옵니다. 곧이어 전사 복장을 한 가수들이 격렬한 연주와 함께 갈라지는 듯한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분명 록 음악인데 전통 악기가 등장하니 혼란스럽고, 한 사람이 두 가지 목소리를 내는 유목민의 창법은 ‘정신 좀 차리라’는 주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몽골을 대표하는록 밴드 ‘더 후.’ 사진 출처 더 후 홈페이지

유튜브에 게재된 몽골 록 밴드 ‘더 후’ 영상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몽골을 대표하는 록 밴드 더 후(The HU)를 처음 본 저의 감상평입니다.

더 후는 자신들의 음악을 몽골 전통 음악과 헤비메탈을 접목한 ‘흉노(Hunnu) 록’이라고 설명합니다. 2018년 11월 유튜브에 처음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1년 만에 4500만 조회수를 넘기며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현재는 1억2000만).

팝의 전설 엘튼 존이 라디오에서 “최근 들어본 가장 신선하고 독창적인 밴드”라고 소개하기도 했죠. 2019년 4월 데뷔 앨범 ‘울프 토템(Wolf Totem)’은 미국 빌보드 ‘하드록 디지털 송’ 판매 순위 1위도 기록했습니다. 지금도 더 후는 북미와 유럽을 순회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더 후의 뮤직비디오나 공연 영상을 리뷰하는 해외 유튜버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입니다. 대부분 ‘신선한 충격’이라는 반응과 함께 독특한 음악 스타일을 칭찬합니다. 유튜브 썸네일 캡처.

이들 음악에는 과거 몽골 제국의 역사를 고취하거나, 자연과 함께하던 전통적 가치를 상실한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뮤직비디오 댓글창엔 “몽골인도 아닌데 몽골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몽골 제국이 왜 세계를 점령했는지 알겠다” 등등 전통을 살린 모습이 ‘쿨하다’고 추켜세우는 반응이 적지 않습니다. 더 후는 자국의 문화유산을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록 가수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평화예술인에도 선정됐습니다.

세계 록 음악 팬들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왜 너밍 장관이 유목 문화의 고유함을 강조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유목 문화를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몽골 문화의 매력이자 자산이라는 겁니다.

몽골에서 전통과 역사를 유독 강조하는 배경에는 구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과거의 영향도 존재합니다. 구소련 치하에서 샤머니즘적 성격을 가진 전통 유목문화는 탄압을 받았습니다. 이후 서양 문화가 급속하게 유입되면서, 독립과 함께 잊혀진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몽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칭기즈칸’ 박물관은 2022년에야 정식 개관했습니다. 주변국 문화의 유입과 빠른 도시화가 이어지는 지금도, ‘칭기즈 칸의 후예’라는 의식과 유목의 전통을 고취하며 몽골의 정체성을 깨우는 작업은 중요한 과제입니다.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는 칭기즈 칸 동상. 사진 출처 Mongolian Tourism Organization
고대 몽골의 역사를 주제로 한 뮤지컬 ‘몽골 칸(The Mongol Khan)’은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 콜리세움 극장에서 공연했습니다. 올해 10월에는 싱가포르에서 공연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사진 출처 몽골 칸 홈페이지

위 사진은 영국 런던에서 공연했던, 고대 몽골의 역사를 주제로 한 뮤지컬 ‘몽골 칸(The Mongol Khan)’입니다. 중국에서도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상영 직전 중국 당국이 금지했다고 합니다. 독립하지 않은 중국 내몽골 지역에서 분리주의 움직임을 부추길까 우려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문화 산업이 독립적인 발전을 꾀한다고 해도, 역사적·정치적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문화 강국’ 몽골의 꿈을 이루려면
다만 냉정하게 말하면, ‘몽골의 전통과 역사’라는 점만으로 세계인을 끌어들이기는 다소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밴드 더 후를 생각해봅시다. ‘전통과 현대의 결합’이라는 개념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2020년 밴드 음악에 국악을 접목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가 국내외에서 관심을 모은 바 있죠. 물론 동북아시아 문화 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몽골의 역사와 유목 문화는 그 자체로 흥미롭고 배울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콘텐츠의 원천만큼이나 이를 재해석하는 방식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보인 친구의 반응을 소개합니다. 몽골 아티스트에 대한 비방 의도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니 나쁘게 보지 말아 주세요. 요즘은 헤비메탈이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다보니 호불호가 더 갈릴 겁니다(이 친구는 K팝 아이돌 팬입니다).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고 싶다면, 현재 기후 위기와 빈곤으로 유목민 사회가 처한 어려움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몽골에선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이 이어져 풀이 자라지 않는 재해현상을 ‘조드’ 라고 하는데요. 몽골어로 재앙이라는 뜻이라네요. 최근 조드의 발생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추위와 폭설의 강도는 심해져 유목민들은 삶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합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조드는 전국 21개 주 중 20개 주에서 발생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의 약 9%에 해당하는 590만 마리의 동물이 폐사했습니다.

기후 변화는 몽골에서 전통적인 유목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을 낳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유니세프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최근 몽골의 문화콘텐츠는 영화 ‘바람의 도시’(2023년)입니다. 제목은 몽골 수도이자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인 울란바토르를 가리키는데요.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해 급속도로 성장한 울란바토르지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리며 과밀화 문제가 심각합니다. 유목민들은 도시 변방의 ‘게르 촌’에서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는 등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바람의 도시’는 샤먼(무당)인 고교생 주인공의 삶을 통해, 도시화·산업화로 인해 흔들리는 전통과 몽골 청년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줍니다. 몽골 사회의 특수성을 살리면서도, 도시의 젊은 세대가 겪는 성장통은 어느 사회라도 공감할 만합니다. 영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서 몽골 영화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섹션에서도 상영돼 국내 관객들과 만났습니다. 몽골다운 배경을 살린 콘텐츠가 세계와 맞닿을 수 있는 지점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바람의 도시’는 몽골 울란바토르에 사는 고등학생 무당인 제(Ze)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무속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거나 첫사랑에 빠져 혼란을 겪는 모습 등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진 출처 몽골 국립영화위원회 홈페이지.

몽골 문화 정책의 장기적인 목표는 “문화산업이 국가 경제에 기여할 만큼 독자적인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몽골은 석탄·구리·우라늄 등 지하 자원이 풍부한 ‘세계 10대 자원 부국’입니다. 광산업 덕분에 21세기 몽골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계 원자재 가격 변동이나 중국 등 핵심 수입국의 경기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경제 구조 다각화가 필수적이라고 하네요.

아직 몽골에서 문화 산업이 GDP에 기여하는 비중은 1% 내외로 추정됩니다. 독립적인 토대를 갖추려면 장기적인 투자를 필요할 겁니다. 그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국내외 과제들이 만만치는 않겠지요. 몽골은 그들이 염원하는 ‘문화 강국’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함께 지켜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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