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한 발로 가족들을 모두 잃은 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홀로 남겨졌던 9살 소년 모하메드 샤힌이 극적으로 덴마크로 탈출한 사연이 알려졌다. 그 배경에는 포기하지 않았던 샤힌의 친척들과 해외 언론사, 튀르키예 등 전세계의 도움이 있었다. 샤힌처럼 가족을 잃은 채 홀로 전쟁터를 떠돌고 있는 가자지구 어린이들의 어려움도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26일(현지 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가자지구 가자시티에 거주하던 샤힌의 가족들은 지난해 이스라엘의 탱크를 피해 남쪽 누세이라트 단칸방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새로운 집도 공습을 피할 순 없었다. “새벽에 자고 있는데 방에서 폭발이 일어 다같이 깼어요. 이후 공격이 3번 더 이어졌고 결국 집이 무너지고 불이 났어요. 가족들이 건물 잔해에 깔려서 들어올리려 해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모하메드는 지난해 12월 7일 부모님과 8살짜리 누나, 4살짜리 남동생과 생이별한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그 날 덴마크에 거주하고 있는 샤힌의 큰아버지 후세인은 뉴스에서 동생이 지내던 지역이 폭격을 당한 장면을 봤고, 친구들로부터 조카를 제외한 나머지 동생 가족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후세인은 본능적으로 조카를 가자지구에서 빼내 덴마크로 데려오겠노라 결심했다. 하지만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를 척결한다며 경찰들을 공격해 경찰 시스템도 마비된 데다가, 병원들도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후세인은 “내가 아는건 샤힌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고 WSJ에 말했다.
낙담할 시간이 없었다. 후세인은 그 지역에 있는 모든 병원 등에 전화를 걸었다. 약 150통의 전화 끝에 얼굴 전체에 부상을 입은 채 긴급 안과 수술을 받고자 병원에 대기 중이던 샤힌을 찾아 냈다.
그러나 전쟁으로 국경이 거의 와전히 폐쇄된 가자지구에서 샤힌을 빼오는 일이 아직 남아있었다. 후세인은 구호단체와 고향 사람들, 그리고 해외 관계자들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했고 , 몇주 뒤 기적적으로 응답이 돌아왔다. 후세인의 제보를 받은 중동 매체 알자지라가 오른쪽 눈에 붕대를 감은 채 아파서 울고 있는 샤힌의 모습을 방송에 담았고, 이를 본 튀르키예(터키) 정부가 샤힌의 탈출을 돕겠다며 손을 내민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자지구에 살고 있던 샤힌의 다른 친척이 그를 구급차에 태워 ‘죽음의 길’을 통해 이집트 국경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WSJ에 따르면 이 도로는 이스라엘이 민간인들의 피난을 허용한 공식 통로였지만, 여전히 민간인들이 사격을 받는 일이 있었기에 이같은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샤힌과 함께 이동했던 친척은 “도로 도처에 시신이 가득했다”며 몸서리 쳤다.
다행히 국경에 무사히 도착한 샤힌은 이집트에서 튀르키예 앙카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튀르키예 정부가 지낼 곳을 마련해준 덕분에 샤힌과 친척은 안전하게 있다가 후세인이 있는 덴마크로 갈 수 있었다.
후세인은 WSJ에 “모하메드는 더이상 악몽을 꾸지 않지만, 그의 눈에 깊은 흉이 남아 선글라스를 쓰고 다닌다”고 근황을 전했다. 다만 함께 놀던 누나를 떠올리게 하는 장난감 등을 보면 여전히 공황발작을 일으킨다고 한다.
고초를 겪었지만 샤힌은 행운아 축에 속한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전쟁 전 가자지구 인구 220만 명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던 어린이들 중 수천 명이 전쟁 기간 숨졌다. 가족들이 죽거나 이스라엘의 명령으로 여러 차례 터전을 옮기면서 가족의 손을 놓친 어린이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집계는 불가능하지만, 유니세프는 과거 전쟁 패턴을 토대로 현재 약 1만7000명의 어린이가 홀로 전쟁터를 떠돌아다니고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WSJ는 아이들이 맨발로 무너진 건물들 사이를 혼자 배회하거나, 10대 청소년들이 빼곡한 보호소에서 자신보다 더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있다고 전했다. 영유아들은 이름도 모른 채 부서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국제구조위원회(IRC)의 팀장 아르빈스 다스는 “무너진 건물 잔해에 뒤덮인 채 혼자 인형 만을 꼭 안은채 발견되는 아이들이 있다”며 비극적 현장을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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