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펼쳐지는 20여 개 선거 중 가장 주목받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총선의 막이 올랐다. 27일(현지 시간)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사전투표가 시작됐고 29일에 본투표가 실시된다. 남아공은 대통령을 의회에서 선출하는 간선제 국가라 이번 총선이 사실상 대선선의 성격도 함께 지니는 중요한 선거다.
이번 선거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30년간 집권해온 여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얼마나 득표할지다. ANC는 1994년 치러진 첫 민주 선거에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배출한 뒤 언제나 과반 득표로 압도적 우위를 점해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선 각종 여론조사에서 40%대 지지율을 얻는 데 그치고 있다.
남아공 총선은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렇게 선출된 국회의원 400명이 다수결로 대통령을 뽑는다. ANC가 과반 득표에 실패할 경우 남아공 최초의 ‘연립정부’가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
선거 구도를 뒤흔드는 막판의 핵심 변수는 지난해 12월 창당한 움콘도 위시즈웨(MK)의 약진이다. 남아공 eNCA방송과 여론조사업체 마크데이터가 2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MK의 지지율은 14.4%이다. 제2야당인 경제자유전사(EFF·11.4%)를 뛰어넘고 제1야당인 민주동맹(DA·18.6%)도 넘보는 수준이다.
6개월 된 신생정당을 이끄는 인물은 바로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82)이다. 2018년 각종 부패 혐의로 물러난 뒤 2021년 실형을 선고까지 받은 그는 총선 후보로는 직접 출마할 수 없지만, 현 정권에 대한 심판론을 내세워 정치적 파급력을 키우고 있다. AP통신은 “주마 전 대통령은 ANC의 지지를 상당 부분 빼앗으며 이번 선거에서 ‘와일드카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은 MK는 ANC를 그대로 ‘복사’한 당에 가깝다. MK라는 이름과 당 로고부터 1960~70년대 만델라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ANC 지하 무장조직 ‘움콘도 위시즈웨’에서 따왔다. 남아공의 국민과 영토, 자원을 각각 상징하는 검은색, 녹색, 금색으로 된 ANC의 상징색마저 MK는 그대로 베꼈다. 하지만 ANC가 낸 저작권 소송을 지난달 법원이 기각한 뒤, MK는 “우리야말로 ANC의 적자”라는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달아오른 정치권 분위기와 달리, 유권자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싸늘하다고 한다. 경제난, 특히 높은 실업률과 심각한 빈부 격차가 주요 원인이다. 남아공의 청년 실업률은 올해 1분기(1~3월) 기준 45.5%에 이를 정도다. 1994년 만델라 전 대통령이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한 뒤 태어난 청년들은 ANC에 대한 유대감보다 현재의 경제난에 대한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인종차별 정책은 종식됐지만, 여전히 극심한 흑인과 백인의 경제·사회적 격차도 정치 혐오를 키우고 있다. 2022년 세계은행(WB)은 “남아공을 비롯한 남아프리카 국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이라고 지적했다. ANC의 시릴 라마포사 현 대통령은 “그동안 ANC가 펼쳐온 ‘흑인 경제역량 강화(BEE)’ 정책을 더욱 강화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25일 약속했다. 하지만 미 CNN방송은 “오히려 BEE가 민간과 공공부문의 부패를 초래한 주범이란 비판이 나온다”고 전했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농지 재분배’ 공약이 실패한 것도 ANC 지지율을 끌어내린 주요 요인이라고 짚었다. ANC는 1913년 박탈됐던 토지를 국민에게 반환하고 농지개혁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수십 년간 공언해왔다. 그러나 실제 반환된 규모는 여전히 절반에 불과하다고 한다.
ANC는 아직은 과반 득표에 집중하겠다며, 향후 연정 상대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외신들은 “ANC가 50%에 가까운 득표율을 얻게 되면, 세 개의 주요 야당보다 군소 정당들을 노릴 가능성도 크다”고 관측했다. 남아공 총선은 현재 70개의 정당이 난립한 상황이다. CNN은 “ANC는 전례 없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오히려 이를 개선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남아공 선거 당국은 “다음달 2일 최종 개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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