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남발했는데, 그 대통령은 왜 인기있었을까[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5일 17시 00분


코멘트

거부권 남발해도 존경받는 대통령의 비결
헌법 1조 7항 명시된 입법권 남용 방지 권한
7%만이 거부권 무력화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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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공기 청정도 자료를 들고 자동차 대기오염 기준 완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I strongly opposes this political ploy.”
(이런 정치 공작에 강력히 반대한다)
최근 한국에서 대통령 거부권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정치 문화가 크게 달라서 거부권 이슈를 단편적으로 비교하기는 힘듭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야당의 권력이 커질수록 거부권 문제가 부각된다는 것입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1월 출범했지만, 거부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2023년부터입니다. 2022년 말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이 장악하고부터입니다. 공화당은 환경 노동 등의 분야에서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무력화하는 법안을 많이 만들어 통과시켰고. 바이든 대통령은 열심히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1번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기 8년 동안 각각 12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4년 동안 10번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많은 숫자입니다.

거부권을 행사할 때마다 바이든 행정부과 공화당 사이에서 불꽃 튀는 여론전이 벌어집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단골 멘트입니다. ‘ploy’는 ‘술책’ ‘공작’이라는 뜻입니다.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술수라는 뜻입니다. 요즘 한국 정치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단어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거부권 역사를 알아봤습니다.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의 반려견 ‘비토’와 비슷한 뉴파운드랜드종. 위키피디아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의 반려견 ‘비토’와 비슷한 뉴파운드랜드종. 위키피디아


To give Congress the middle finger.”
(의회를 엿 먹이려고)
미국 대통령들은 백악관에서 반려견을 키우는 전통이 있습니다. 20대 대통령을 지낸 제임스 가필드는 무시무시하게 덩치가 큰 반려견을 키웠습니다. 뉴파운드랜드종으로 몸무게가 50kg에 육박하고 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였습니다. 백악관에 입성하는 대통령 가족보다 개를 보러 더 많은 구경꾼이 몰려들 정도였습니다.

외모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은 개의 이름. ‘거부권’이라는 뜻의 ‘비토’(veto)였습니다. 한국식으로 하면 “비토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러더퍼드 헤이즈 전임 대통령이 박력 있게 의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 감명받아 개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한 유명 정치학자는 이런 이름을 붙인 가필드 대통령의 속마음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미국인들이 욕 대용으로 쓰는 ‘give the middle finger’(셋째 손가락을 주다)는 ‘엿 먹이다’라는 뜻입니다. ‘middle’을 생략해도 됩니다. 마음에 안 드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개집에 처박겠다는 메시지입니다.

실제로 가필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I might not sign all of the bills Congress passed”(의회를 통과한 모든 법률안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다). ‘비토’는 가필드 대통령을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마구간을 엉망으로 만든 말을 제압하고, 불이 났을 때 요란하게 짖어서 주인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이 정도면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가 아니라 ‘인간보다 더 나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가필드 대통령은 ‘비토’의 이름에 걸맞은 거부권 한 번 행사해보지도 못하고 취임 6개월 만에 암살된 비운의 대통령입니다.

재임 기간 중 대통령 거부권을 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은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마운트버넌 홈페이지
재임 기간 중 대통령 거부권을 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은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마운트버넌 홈페이지


If he approve he shall sign it, but if not he shall return it.”
(만약 대통령이 승인하면 서명하고, 그렇지 않으면 돌려보낸다)
견공 ‘비토’ 사례는 미국 정치에서 대통령 거부권의 위상을 잘 보여줍니다. 미국이 세계 최초로 만든 제도로 삼권 분립만큼 미국 정치의 근간이 되는 원칙입니다. 헌법 1조 7항입니다. ‘veto’ 대신 ‘return’(의회로 돌려보내다)이라는 단어로 거부의 의미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미국 헌법은 많은 수정을 거쳤지만, 거부권 조항은 처음 헌법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있었습니다. 건국 때부터 입법부와 행정부의 충돌을 예견하고, 권력 균형 방법을 찾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거부권이 만들어진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The Framers of the Constitution gave the President the power to veto acts of Congress to prevent the legislative branch from becoming too powerful.”(헌법 입안자들은 입법부가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의회의 행위에 대한 거부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했다)

초기 대통령들은 조심스럽게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의회와의 갈등을 원치 않았습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8년 임기 동안 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2대 존 애덤스, 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아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거부권은 팽창기에 늘어났습니다. 국력 팽창과 함께 대통령의 권력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1800년대 후반 서부 개척시대, 1900년대 초중반 미국이 국제무대의 최강자가 되면서 거부권이 많아졌다가 지금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가운데)이 도널드 럼즈펠드 백악관 비서실장(왼쪽), 딕 체니 비서실 차장(오른쪽)과 얘기하는 모습. 제럴드 포드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제럴드 포드 대통령(가운데)이 도널드 럼즈펠드 백악관 비서실장(왼쪽), 딕 체니 비서실 차장(오른쪽)과 얘기하는 모습. 제럴드 포드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The hard lessons learned by the tragic Watergate experience must result in some positive achievement.”
(비극적인 워터게이트 경험으로부터 배운 힘든 교훈은 긍정적인 성과로 귀결돼야 한다)
미국 정보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은 국민 누구나 연방 정부 기록을 청구 열람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1966년 제정된 FOIA는 원래 정보 공개 범위가 넓지 않고, 공개 조건이 까다로웠습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후폭풍으로 FOIA법의 정보 공개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FOIA 개정안이 의회를 통과해 대통령 앞에 도착했습니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나중에 기밀 해제된 정부 문서에 따르면 도널드 럼스펠드 백악관 비서실장, 딕 체니 비서실 차창이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라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대통령을 설득했습니다.

재역전 드라마가 펼쳐졌습니다. 의회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하원에서 371 대 31, 다음날 상원에서 65 대 27의 압도적인 표 차로 다시 통과됐습니다. 대통령 거부권이 무효가 된 것입니다. 거부권 기각(overriding veto)은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3분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합니다. 역대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 중에서 7%만이 성공했을 정도로 어려운 절차입니다. 기각 표결을 주도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절대적인 국민 요구가 있다면 대통령 거부권은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명언의 품격
1935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의회에서 처음으로 거부권 행사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은 누구일까요.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여러 대통령의 롤모델인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으로 635회입니다. 1년에 60회꼴로 거부권을 행사하느라 바빴습니다. ‘veto president’(거부권 대통령). 아예 이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루즈벨트는 거부권 행사 이유를 공개적으로 설명하는 전통을 세운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대공황 막바지에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대우 문제가 대두됐습니다.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들을 돕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군인 보너스 법안’(Soldiers’ Bonus Bill)이 의회를 통과해 대통령 앞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국가 재정이 힘든 상황에서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단순히 거부권 행사에 그치지 않고 그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하기로 했습니다. 1935년 상하원 합동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연설 마지막 구절입니다.

I believe the welfare of the Nation, as well as the future welfare of the veterans, wholly justifies my disapproval of this measure.”
(나는 국가의 안녕과 참전용사들의 미래 복지가 이 법안에 대한 나의 거부를 정당화해줄 것으로 믿는다)
정부가 참전용사들에게 이미 많은 보상을 해주고 있고, 보조금 지급이 경기부양 효과가 없다는 점을 정부 예산을 거론해가며 조목조목 설명했습니다. 의회 본회의장을 가득 메운 의원과 일반 청중들은 42분 동안 초집중을 하고 대통령 연설을 경청했습니다. 명연설 많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꼽은 “가장 힘든 연설”이었습니다. 대통령은 법안에서 자신의 우려 사항이 무엇인지 확실히 밝혔습니다. 이듬해 의회는 이를 반영한 수정 법안을 다시 통과시켰고, 이번에는 대통령이 서명했습니다.

실전 보케 360
왕관을 자진 반납한 올해 미스 틴 USA 우마소피아 스리바스타바(왼쪽)와 미스 USA 노엘리아 보이트(오른쪽). 위키피디아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미국 최고 미인대회인 ‘미스 USA’ 우승자들이 잇따라 왕관을 반납했습니다. 일주일 사이에 미스 USA, 미스 틴 USA 우승자가 모두 자진 사퇴한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24세의 미스 USA는 정신 건강을, 17세의 미스 틴 USA는 대회 주최사와 개인적인 가치관이 맞지 않지 않는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습니다. 주최사인 미스 USA 조직위원회는 그동안 미숙한 운영, 성희롱 등의 논란이 일었으나 우승자가 사퇴까지 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CNN은 내부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Shock Miss USA resignations are just the tip of the iceberg, insiders say.”
(놀라운 미스 USA 사퇴는 단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내부자들은 말한다)
‘iceberg’(아이스버그)는 바다에 떠다니는 커다란 얼음 덩어리, 빙산을 말합니다. ‘tip’(팁)은 조그만 끝 부분을 말합니다. ‘tip of the iceberg’는 빙산의 끝부분을 말합니다. 우리 눈에는 아주 작은 부분만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닷속에 엄청난 얼음 덩어리가 잠겨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극히 일부라는 뜻입니다. ‘tip’은 ‘조금’ ‘작은’이라는 의미입니다. 서비스에 대한 보답으로 놓는 봉사료 ‘팁’이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간단한 해결책을 알려준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advice’가 중대한 충고라면 ‘tip’은 간단한 조언입니다.

‘tip’은 활용도가 높습니다. 할 말이 딱 생각나지 않고 혀끝을 맴돌 때 ‘on the tip of tongue’(혀끝에 있다)이라고 합니다. 눈앞의 것에 매몰돼서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것을 ‘can’t see past the tip of nose’(코끝을 지난 지점을 보지 못하다)라고 합니다. ‘tip’을 동사로 쓰면 ‘한쪽으로 기울이다’라는 뜻입니다. ‘tip the scales’는 ‘저울, 즉 상황을 기울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뒤에 ‘in favor of’(그쪽으로) 또는 ‘against’(반대쪽으로)가 옵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9년 1월 8일 게재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각료회의 모습입니다. 요즘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시대의 백악관 회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현안을 논의하는 각료회의는 사실 지루합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는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혼자 발언을 독점하며 이리저리 주제를 옮겨 다니며 얘기하는 통에 듣는 사람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은 짜릿한 맛이 있었습니다.

▶2019년 1월 8일자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190108/93593041/9

백악관 각료회의를 주재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첫 각료회의를 열었습니다. 95분 내내 혼자 열변을 토했습니다. 아니 횡설수설했습니다. 1시간 반 동안 얘기한 주제가 24개라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팩트체크를 해보니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75∼80%는 왜곡, 과장, 거짓 통계 인용 등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AP통신은 ‘fact-busting’(사실 때려잡기)이라는 단어로 요약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장관들에게 말할 기회 한 번 주지 않고 나홀로 발언을 이어가는 대통령의 모습을 ‘bizarre’(기괴한)라고 했습니다. 긴 발언 동안 배워둘 만한 영어도 꽤 많이 나왔습니다.

As long as it takes. I’m prepared.”
(아무리 오래 걸려도 괜찮다. 나는 각오하고 있다)
지금 미 연방정부는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중입니다. 국경장벽 예산 문제로 정치권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각료회의 시작 전 “셧다운이 얼마나 길어질 것으로 보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답입니다. 이 두 문장은 붙어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배짱을 부릴 때 씁니다.

We’re given no credit for it.”
(아무도 우리 공로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북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를 자랑하면서 “당신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만…”이라고 장관들을 약 올립니다. 이어 “김정은과 나는 세계 평화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라고 섭섭한 표정을 짓습니다. ‘credit’(크레딧)은 ‘신용’ ‘융자’라는 뜻의 금융 용어이지만 일상대화에서도 많이 쓰입니다. ‘give credit for’는 ‘인정하다’ ‘평가하다’라는 뜻입니다.

Better looking than Tom Cruise.”
(톰 크루즈보다 잘 생겼더라)
얘기의 방향을 확확 바꾸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입니다. 이란 핵문제 얘기 중에 갑자기 영화배우 톰 크루즈가 등장합니다. “국방부에서 장성들과 이란 문제에 대해 회의를 했는데 장성들이 너무 잘생겼더라. 톰 크루즈보다 더”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트위터에서 톰 크루즈 팬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Leave Tom Cruise Alone.”(톰 크루즈 가만 놔둬)

#대통령 거부권#거부권 남발#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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