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에 뜬 ‘성덕’ 준구형과 작가들…몸값 4조에 “시트콤인가 얼떨떨”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8일 0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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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웹툰 27일 나스닥 상장, 주가 10%
사원에서 웹툰 창업자된 김준구 대표
“나는 덕후…아시아의 디즈니 될 것”
웹툰 1세대 작가들 “작가 위상이 달라져”

27일(현지시간) 미 뉴욕 타임스퀘어에 위치한 나스닥 빌딩 앞에서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가운데)와 손제호, 김규삼, 조석 작가 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네이버웹툰 제공


“여기 제가 어울리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덕후였는데…”

27일(현지시간) 미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위치한 나스닥 빌딩. 기술주들의 고향인 이곳에서 마주친 김준구 네이버 웹툰 대표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네이버웹툰이 공모가 주당 21달러로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 직후였다.

김 대표는 만화를 좋아하는 ‘네이버 사원’으로 시작해 김규삼, 손제호, 조석, 기안84 등 쟁쟁한 작가들을 웹툰 무대에 끌어들이며 웹툰 시장을 연 인물이다. 네이버웹툰이 네이버로부터 분사하고 미 증시 상장에 성공함에 따라 김 대표는 사원 출신 ‘창업자’로서 1000억 원에 가까운 주식 부자가 된 월급쟁이 성공 신화가 됐다.

네이버웹툰의 북미법인인 웹툰엔터테인먼트는 이날 상장 직후 주가가 장중 14%까지 치솟으며 상장 첫날 흥행 몰이에 나섰다. 종가로는 공모가보다 9.5% 높은 23.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에 따라 시가총액은 약 29억달러(약 4조24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김 대표는 이후 간담회에서 “나스닥 상장식에서도 얼떨떨했다. (2000년대 초반) 엄청난 만화 팬이라 더 많이 보고 싶은데 당시 출판 시장이 어려워 새로운 콘텐츠가 안 나오는 상태였다”며 “어떻게 하면 신작을 많이 볼까 고민하다 웹툰 플랫폼을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 “좌절할 때 만난 준구”

27일(현지시간) 미 뉴욕 나스닥 빌딩에 모인 웹툰 1세대 작가들. 왼쪽부터 김규삼, 손제호, 조석 작가.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저는 지금 네이버 웹툰이 성공했을 때를 가장한 시트콤을 찍고 있는 것 같아요.(‘마음의 소리’ 조석 작가)”

“처음엔 정말 작게 시작했는데, 어느순간 글로벌 서비스가 되다니 얼떨떨합니다.(‘노블레스’ 손제호 작가)”

“예전에는 작가들이 수입 때문에 만화계를 떠났어요. 여자친구 집에 만화가라고 소개하면 그냥 밥이나 먹고 가라 느낌의 직업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의사도 그만두고 웹툰을 한다는 말에 위상의 변화를 실감합니다.(‘천리마 마트’ 김규삼 작가)”

나스닥 상장을 기념해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팬 사인회를 마치고 온 작가들의 표정도 김준구 대표 만큼이나 어리둥절해 보였다. 해외 팬들이 예상보다 많아 놀랐다고도 했다. 이들은 2000년대 김준구 사원을 만나 ‘정통 만화가’들이 “그게 만화냐”라고 경시했던 웹툰 초창기에서 20년 만에 세계 무대에서 주목을 받는 자리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27일(현지시간)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진행된 웹툰 작가들 사인회. 네이버웹툰 제공
드라마라도 만들어졌던 ‘쌉니다 천리마마트’ ,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로 유명한 김 작가는 20대의 끝자락이던 2006년 김준구 사원을 만났다고 한다. 당시 만화가는 출판 잡지를 통해 작품을 이어갈 수 있었는데 연재에서 잘리고 시장에서 퇴출당했다고 느끼던 29살이었다. 그는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직업은 다 이유가 있구나’, ‘내 20대를 버렸구나’ 좌절하며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려는데 준구가 전화했다”며 “지금도 분당에서 준구를 만났던 때가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이어 “대학 중퇴까지 하며 시작했던 만화가 끝이 났다고 생각했을 때 웹툰으로 그릴 통로가 생겼고 그때 쓴 작품이 ‘정글고’”라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주주로서도 가족이 되고 싶었다”며 10억 원 가량을 웹툰엔터테인먼트에 투자했다“고 한다. 손 작가는 “해외에서 의외의 독자가 연락을 해오고,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직업 만화가가 요즘에는 초등생이 선호하는 직업이 됐다는 것이 신기하다”며 “작품을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공략하며 만들기 보다 국내 독자들에게 일단 재미있게 써보자라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작가는 주식에 관심이 없어 “안 살 것”이라면서 “아는 형(김준구 대표) 한테 좋은 일이 생겼나보다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 “넥스트 피카추? 월가 반응 좋다”

“처음에는 1억 버는 작가를 만들자, 그 다음에는 10억…크리에이터들이 잘돼야 우리가 잘된다는 게 강력한 플랫폼이 됐다.”

작가들의 ‘아는 형’ 김준구 대표는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앵커 투자자로 기업공개(IPO)에 참여하는 등 월가의 반응이 좋았던 이유로 크리에이터 플랫폼 생태계를 들었다. 미국 작가들이 미국 네이버웹툰 플랫폼에 늘어나면 이를 본 프랑스 작가들이 차며하며 전세계적 선순환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김 대표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 블랙록이 우리의 비전을 높게 평가한 것은 ‘모두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능력있는 작가들의 놀이터가 됐다는 의미다. 이어 “웹툰 초창기에 한 만화학과 교수님이 ‘왜 웹툰 작가를 만화가라고 하는 인터뷰가 나오느냐’는 항의 전화를 걸어 왔다. 그 때 이를 악물고 작가들의 위상을 올려보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며 나스닥 상장날 당시 일이 생각이 났다고 덧붙였다.

김용수 최고전략책임자(CSO)는 “나도 이력서 한장 들고 무작정 김 대표를 찾아가 ‘웹툰에서 일하고 싶다’고해 입사했다”고 웃으며 “전 세계적으로 2400만명의 창작자가 웹툰엔터테인먼트에 들어와 있고, 5천500만개의 콘텐츠가 있는데 ‘넥스트 해리포터’, ‘넥스트 피카츄’는 여기서 나올 수 있지 않겠냐는 공감대가 글로벌 투자자에게도 어필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우리의 목표는 ‘아시아의 디즈니’”라며 “이는 디즈니처럼 훌륭한 작품들을 글로벌로 배급할 수 있는 배급망과 지식재산(IP)을 갖춤과 동시에 디즈니처럼 100년 넘게 가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웹툰엔터테인먼트 상장 기념 타종 행사에는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도 참석했다. 김 대표는 “투자자들이 네이버와 웹툰엔터테인먼트의 관계를 물으면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살다가 아들이 독립하고 나선 상황’이라고 설명한다”며 “이해진 GIO에게 ‘아버지는 독립한 아들에게 아들아 나보다 더 성공한 삶을 살아라.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하라고 말하면 된다’고 하자 이 GIO도 맞다며 웃었다”고 전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나스닥#네이버웹툰#김준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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