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는 오지 탈출”… 50도까지 치솟는 폭염에 지구촌 ‘신음’[글로벌 포커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6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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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 대응 ‘전 세계 비상사태’
파키스탄-인도 등 봄부터 ‘불볕더위’… 주민들, 잦은 정전에 농촌서 도시로
인도네시아, 해수면 올라 수도 이전… 파나마는 섬 주민 본토 이주 추진
이상기후로 전력난-식량부족 심화… 저개발국에 집중된 기후피해도 문제

이상 고온이 이어진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올 5월 시민들이 열사병 예방을 위해 제공된 설탕물을 받으려고 몰려들었다. 카라치=AP 뉴시스
이상 고온이 이어진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올 5월 시민들이 열사병 예방을 위해 제공된 설탕물을 받으려고 몰려들었다. 카라치=AP 뉴시스

‘세계에서 가장 더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파키스탄 남부 자코바바드에선 여름마다 주민의 약 25%가 더위를 피해 이곳을 떠난다. 올해 5월 최고 기온이 무려 52도를 기록했다. 잦은 정전과 식수 부족으로 많은 주민은 극한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얀셰르 코소 씨(38)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2018년 코소 씨의 어머니가 열사병으로 쓰러졌다가 겨우 회복한 뒤 그는 매년 4월부터 그해 가을까지 상당한 비용을 감수하고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을 상대적으로 시원한 북부 퀘타로 보낸다. 길면 하루 20시간씩 정전이 이어지는 자코바바드의 환경이 어머니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판단에서다.

코소 씨가 일하는 인근 대도시 카라치 또한 50도 안팎의 고온에 시달린다. 다만 그는 뉴욕타임스(NYT)에 “카라치는 비교적 정전이 적고 일자리를 찾기도 쉽다”며 계속 카라치에 머물면서 돈을 벌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달 카라치에선 닷새 동안 열사병으로 568명이 숨졌다.

파키스탄은 물론이고 이웃 인도에서도 올 4월부터 석 달째 최고 기온 섭씨 40∼50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곳곳에선 “자동차 운전대를 잡았다가 화상을 입었다” “수도꼭지에서 끓는 물이 나온다”는 증언이 속출한다. 유럽, 아프리카, 북미, 남미에서도 올해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 치운 곳이 대부분이다.

● “에어컨 있는 도시로”… 농촌 탈출

인도 뭄바이의 한 남성이 올 5월 50도를 넘나드는 날씨에 하수구를 청소하다 물을 마시고 있다. 뭄바이=AP 뉴시스
인도 뭄바이의 한 남성이 올 5월 50도를 넘나드는 날씨에 하수구를 청소하다 물을 마시고 있다. 뭄바이=AP 뉴시스
극한의 이상(異常)기후가 정상(正常)처럼 느껴질 지경에 이르자 각국 정부와 주민들은 다급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거주지를 옮기는 선택이다. 아시아에서는 코소 씨처럼 일시적인 이주가 아니라 삶의 터전 자체를 뿌리째 옮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저개발국의 ‘기후 이주민’은 대부분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이촌향도(離村向都)’를 택한다. 농촌은 일반적으로 녹지가 적은 도심지보다 온도가 낮다. 하지만 선풍기조차 돌리기 어려울 만큼 전력이 부족한 데다 이상 고온으로 농업 생산량까지 급감하면서 많은 이들이 ‘기후 위기’와 ‘생활고’를 동시에 겪고 있다.

예일대 환경대학원 연구진이 인도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뒤 올 5월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4%가 “극심한 더위, 가뭄, 홍수 등으로 이미 이사를 했거나 이사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국제 환경단체 ‘남아시아기후행동네트워크’는 2050년까지 기후 영향으로 이주해야 하는 인구가 인도에서만 4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 가라앉는 섬 주민들은 탈출


해수면 상승에 직면한 많은 나라도 기후 재해를 타개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파나마는 해수면이 점점 빠르게 높아지면서 잠기는 섬 주민들을 본토로 이주시키고 있다. 해발 고도가 0.5m에 불과한 수그두브섬의 300가구는 정부가 지은 임시 주택으로 지난달부터 이주를 시작했다. 강풍이 불면 집까지 물이 들어차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더는 버티기 어려워진 것이다.

파나마는 수그두브섬을 시작으로 62개 공동체의 3만8000명을 수십 년에 걸쳐 이주시키기로 했다. 비용은 최소 12억 달러(약 1조6800억 원)로 추정된다.

인도네시아 또한 다음 달 17일부터 보르네오섬의 누산타라로 수도 이전을 시작한다. 역시 해수면 상승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구 1000만 명의 현 수도 자카르타가 위치한 자바섬은 인구 과밀과 해수면 상승으로 해마다 25cm씩 가라앉고 있다. 기반시설이 거의 없는 ‘열대우림’ 누산타라로의 수도 이전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이미 세 번이나 홍수를 겪은 브라질 남부 히우그란지두술주는 5월에 80년 만의 대홍수가 덮쳐 170여 명이 사망하고 5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주민 마리아 베나시우 씨는 지난해 홍수로 집을 잃고 임대주택으로 옮겼지만 그마저도 올해 다시 잃었다. 그는 로이터통신에 “이 마을은 언젠가 강이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당국은 마을 40%를 다른 곳에 재건해 주민들을 이주시킬 계획을 세웠다.

이와 달리 반복되는 가뭄에 시달리는 멕시코는 2020년부터 ‘인공강우’로 대응하고 있다. 멕시코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5월 강우량은 한 달 동안 9.9mm로 1941년 이후 가장 가물었다. 수도 멕시코시티에서도 수시로 수도가 끊어져 빈곤 지역 주민들이 급수차에 의존해야 했다. 정부는 연 1회 이상 비행기나 드론으로 ‘구름 씨앗’이 될 요오드화은을 구름에 살포해 강수량을 늘리려 하고 있다.

● 그리스는 관광지 폐쇄… 美 근로자 보호법

선진국도 이상기후를 피할 수 없다. 특히 관광업 비중이 국가 경제의 20%에 달하는 남유럽의 위기감은 더 크다.

그리스에선 올 6월 한 달간 관광객 약 10명이 열사병 등으로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결국 당국은 낮시간 아테네의 유명 유적지 아크로폴리스 등의 방문을 제한했다. 지도에 에어컨이 설치된 아테네 공공건물 및 녹지 등을 표시하고, 목적지까지 가장 시원한 길을 안내해주는 ‘피서 앱’도 출시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호주 멜버른 등도 유사한 앱을 출시해 주민들에게 더위를 피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근로자 3600만 명을 더위로부터 보호하도록 의무화하는 산업안전법 개정안을 2일 발표했다. 작업 현장의 온도가 27도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고용주가 반드시 식수, 그늘, 냉방시설 등을 제공하고, 새 직원을 고용할 때 더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작업량을 단계적으로 늘리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보건복지부에 폭염 대책 전담 부서인 ‘기후변화 및 건강형평국’도 신설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다음 달부터 택시 면허 또한 대폭 늘어난다. 당국은 택시 노조의 거센 반발로 2006년 이후 신규 면허 발급을 제한해 왔다. 그러나 최근 기록적인 폭염으로 관광객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불만까지 더해지자 결국 주요 도시의 택시 면허 수를 20% 늘리기로 했다.

● 잦은 정전, 식량 부족도 심각

폭염 등으로 전력 사용량은 늘어나는 반면 발전과 송전은 불안정해지면서 각국에서 전력난 대응 또한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력 생산의 78%를 수력 발전에 의존하는 남미 에콰도르에서는 가뭄으로 댐 수위가 29%대까지 내려앉았다. 4월에만 두 차례 전력난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지난달 19일 20년 만에 전국적인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동유럽 발칸반도의 보스니아에서도 지난달 수도 사라예보 전체가 갑작스럽게 정전되면서 거리의 신호등이 꺼지고 교통 혼란이 벌어졌다.

중국에서는 북부에서는 가뭄이, 남부에서는 홍수가 동시에 발생하는 극단적 기후로 지난달에만 수십 명이 숨졌다. 중국은 남쪽의 물을 끌어다 북쪽에 공급하는 ‘남수북조(南水北調)’ 등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통해 위기를 해소하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인국 14억 명의 물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극한 기후로 농작물 생산도 대폭 감소했다. 미 외교매체 디플로맷 등에 따르면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에서는 이상 고온, 가뭄 등의 여파로 정부가 관리하는 밀 재고량이 지난달 기준 2990만 t에 그쳐 16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구 대국’인 인도와 중국 등이 안보 차원에서 식량 확보에 나서면 식량이 부족한 가난한 국가에서 분쟁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기후 위기도 ‘부익부 빈익빈’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가 제3세계 저개발국에 집중되는 현실도 문제다. 국민 대부분이 빈곤층인 나라들은 기후 변화 대응을 할 여력이 없고, 주민들 또한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하기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계속한다.

9명의 자녀가 있으며 10번째 아이를 임신 중인 파키스탄 임신부 사히바 씨는 AP통신에 “반나절만 놀아도 아이들이 굶는다”며 땡볕 아래서 밭일을 계속했다.

국제 비영리단체 국제구조위원회가 선정한 ‘기후위기에 취약한 10대 국가’에는 소말리아,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차드, 남수단 등이 포함됐다.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째 이어지는 내전이나 정치적 갈등으로 기후 변화 대응이 일종의 ‘사치’로 여겨지는 나라들이다.

온실가스를 주로 배출하는 나라는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인데 그 피해는 개발도상국이 대부분 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은 가난한 나라들이 부유한 나라의 오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 역사적 빚을 해결하라”라고 비판했다.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에어컨#오지 탈출#폭염#이상기후#지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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