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가족들의 애끓는 反戰시위…“석방때까지 투쟁 멈추지 않을 것”[중동전쟁 9개월]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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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이달 7일로 9개월을 맞았다. 전쟁 당일 납치된 240여 명의 이스라엘 인질 중 절반만 풀려났을 뿐 나머지 120여 명은 아직 생사 여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인질 가족 또한 애타는 마음으로 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다.

지난달 23~27일 방문한 이스라엘에서 한국과 인연이 있는 인질 가족 2명을 만났다. 미국 반도체장비회사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의 이스라엘 지사에 근무하며 한국을 최소 15차례 방문했다는 예후다 코헨 씨(55),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 일본에 23년간 거주하며 한국을 수 차례 찾았다는 에프랏 마치카와 씨(56)다.

병역 의무를 수행 중이던 코헨 씨의 군인 아들 님로드(20)는 전쟁 당일 가자지구 근처 나할오즈 군기지에서 하마스에 납치됐다. 마치카와 씨의 고모부 가디 모제스(80) 씨는 인근 니르오즈 키부츠에서 납치됐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인질 귀환에 적극 협력해 달라는 두 사람의 애끓는 사연을 소개한다.

①아들 귀환 기다리는 예후다 코헨 씨

“님로드가 풀려날 때까지 나의 투쟁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텔아비브 예술미술관 앞 ‘납치자 광장(Kidnapped Square)’에서 만난 예후다 코헨 씨의 말이다. 이곳은 전쟁 발발 후 매주 토요일 인질 귀환, 전쟁 중단을 외치는 시위가 벌어져 일종의 시민 성지(聖地)로 부상했다. 인질 가족을 돕는 각종 단체 또한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코헨 씨는 부인 비키 씨와의 사이에 요탐(23), 님로드와 로미 남녀 쌍둥이(20) 세 자녀를 두고 있다. 님로드의 납치 후 가족 전체가 생업을 버리다시피하고 님로드의 귀환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도심에서 열린 ‘인질 귀환 및 휴전 촉구’ 시위에서 아들 님로드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예후다 코헨 씨. 그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속히 사퇴하고 새 총리가 귀환 협상을 지휘해야 한다”고 외쳤다. 텔아비브=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코헨 씨는 인질 복귀를 호소하는 민관 합동 대표단에 소속돼 미국 캐나다 영국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등을 방문했다. 올해 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만났지만 “우리가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다”고만 주장할 뿐 ‘귀환’이라는 성과를 못 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코헨 씨는 “아들이 납치되기 전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네타냐후 총리가 빨리 사퇴하고 누가 됐든 새 총리가 인질 귀환 협상을 지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지난 9개월 동안 성과를 못 냈다는 것은 네타냐후 총리로는 인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뜻”이라며 인질 귀환 및 휴전을 촉구하는 각종 시민 집회에 열심히 참석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5일 20세 생일을 맞는 님로드를 ‘조용하고 수줍으며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가족 안에서도 ‘평화 중재자(peacemaker)’ 역할을 담당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해외에서 인질 귀환 촉구 연설을 하던 중 딸 로미가 “내가 큰 오빠랑 싸울 때 늘 님로드가 중재자 역할을 해 줬다”고 말했는데 님로드가 가족 내에서도 ‘평화 중재자’인지 자신도 몰랐다며 아들을 그리워 했다.

그는 대학에서 전기공학 및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현재 반도체 제조 과정의 이미지 프로세싱 작업의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로 인해 1999~2022년까지 한국을 15회 이상 방문했다. 그는 “한국을 찾았을 때 이태원도 자주 갔다”며 “2년 전 압사 참사 때 세 자녀의 부모로 상당히 마음이 아팠다. 2년이 흐른 지금 나 또한 고통받는 부모가 됐다”고 했다.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예술미술관 앞 ‘납치자 광장(Kidnapped Square)’에 있는 인질 관련 시계. 지난해 10월 7일 전쟁 발발 후 264일 2시간 31분 38초가 지났다는 숫자가 표시돼 있다. 텔아비브=하정민 기자 dew@donga.com


②고모부 귀환 촉구하는 마치카와 씨

“이산가족의 아픔이 있는 한국 사회가 인질 가족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지난달 23일 ‘납치자 광장’ 인근에서 만난 에프랏 마치카와 씨의 말이다. 그의 고모부 가디 모제스 씨는 전쟁 당일 거주하던 니르오즈 키부츠에서 납치됐다. 고모인 마르갈릿 씨도 같은 날 납치됐지만 최근 풀려났다. 80세 고령이며 시력도 좋지 않은 모제스 씨의 생사는 알 수 없다. 지난해 12월 하마스가 부쩍 수척해진 그의 모습을 공개한 것이 전부다.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텔아비브 도심의 인질가족 관련단체 건물에서 만난 에프랏 마치카와 씨가 지난해 10월 7일 납치된 고모부 가디 모제스 씨의 사진을 들고 있다. 그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아는 한국 사회가 인질 귀환을 위한 국제 여론을 조성해 달라”고 당부했다. 텔아비브=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텔아비브 도심의 인질가족 관련단체 건물에서 만난 에프랏 마치카와 씨가 지난해 10월 7일 납치된 고모부 가디 모제스 씨의 사진을 들고 있다. 그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아는 한국 사회가 인질 귀환을 위한 국제 여론을 조성해 달라”고 당부했다. 텔아비브=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마치카와 씨는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일본식 성(性) 또한 남편을 따랐다. 그는 1990~2011년, 2022~2023년 두 차례를 통해 23년 간 일본에 거주했다. 당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강사, 도쿄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의 문화 담당관(attaché) 등으로 일했다.

그는 “일본에 사는 동안 한국을 수 차례 방문했고 일본에 온 한국 학생들에게 영어도 자주 가르쳤다”며 분단 역사와 이산가족의 아픔 등 한국 사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빔밥 또한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마치카와 씨는 “고모부는 10대 시절 내게 수학, 과학 등을 직접 가르쳐줄 정도로 자상한 인물”이라며 “내게는 단순한 가족을 넘어 ‘스승’”이라고 했다. 아시아 사회에서 스승의 의미가 얼마나 큰 지 잘 알지 않느냐며 또렷한 일본어로 ‘센세’라고 했다.

이어 “수자원 전문가인 고모부는 인근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폐수를 농업용수로 바꿔 사용하는 법을 가르친 인물”이라며 “그렇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왜 납치되어야 하느냐”고 했다. 이어 “ 이산가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한국인이야말로 인질 가족의 아픔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며 “고모부의 납치 후 온 가족이 9개월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마치카와 씨는 “전 세계가 인질 귀환이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통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을 인질로삼는 것을 용인한다면 다른 ‘악의 세력’에게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언제든지 민간인을 인질로 삼아도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격”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인질#납치자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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