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강보험 제도, 신약 들이기 어려운 구조…혁신해야 R&D 활성화”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6일 16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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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바이오무역협회 ‘파마’ 본보 인터뷰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와 한국 시장에서 신약 출시의 어려움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파마(PhRMA)의 리차드 케인 국제 정책 담당 부의장(왼쪽), 필립 첸 권익옹호 담당 부의장(오른쪽). KRPIA 제공
“한국은 신약을 빠르게 출시하기 어려운 시장입니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 시스템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처음 출시된 후 평균 약4년(45.2개월)이 지난 후에야 신약이 사용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은 한국 환자들 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기업들이 새로운 치료법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칩니다.”

지난 달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 (바이오 USA)’에 참석한 리차드 케인 파마(PhRMA) 국제 정책 담당부의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일본, 독일의공공건강보험에 비해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보장해주는 신약의 비중이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

케인 부의장과 필립 첸 파마 권익옹호 담당 부의장은 지난주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와 글로벌 제약사들의 신약 출시의 어려움 등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글로벌제약사들이 한국 출시를 늦추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한국에서 혁신 의약품을 개발하는 제약사들이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케인 부의장은 “한국은 혁신적인 생명공학 산업을 개발할 수 있는 곳”이라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혁신을 적절히 보상하고 투자하는 균형 잡힌 생태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파마(PhRMA)는 어떤 곳?
파마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가입돼 있는 미국 대표 제약바이오협회다. 미국을 대표하는 바이오 산업 협회는 바이오 (BIO)와 파마가 있으며, 바이오는 ‘바이오 USA’ 행사를 주최하는 협회로 주로 바이오 의약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벤처회사가 많이 가입해 있다. 두 협회는 모두 가입사들을 대변해 정부에 산업계의 의견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Q. 먼저 바이오USA 행사에서도 화두가 된 미국의 ‘생물보안법’에 대한 파마의 입장을 묻고 싶다.

생물보안법은 미 의회가 중국 바이오 기업과의 특정 거래를 제한하기 위해 발의한 법안으로 빠르면 연내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 생물보안법에는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의 위탁개발생산(CDMO)을 맡고 있는 우시앱택, 우시바이오로직스 및 유전자분석 기업 BGI를 포함한 특정 중국 기업들이 적시되어 있다. 한국, 미국 및 전 세계의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이러한 법안이 각각의 비즈니스와 사업 부문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영향을 고려하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필립 첸(이하 첸): 파마는 글로벌 경쟁력, 국가 안보 보장, 공중 보건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미국 정책입안자들과 건설적으로 협력하여 국가 및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고, 잠재적인 의약품 부족이나 의약품 연구개발(R&D) 중단으로 인해 환자들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Q. 생물보안법의 이름에도 나타나는 것처럼 미국이 바이오를 더이상 산업이 아닌 안보 측면에서보고 있는 것 같다.

첸: 미국 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와 의약품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탄력적인공급망 보장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해 왔다. 예를 들어, 미국정부는 전기차 및 대규모 에너지 저장 배터리에 필요한 핵심 광물과 금속, 반도체, 마이크로전자, 재생 에너지 생성 및 전송 분야에서 파트너들과 협력하고있다. 미국 정부는 파트너들과의 공급망 협력이 안정성을 증진시키고 국제 재난 및 비상 사태에 대응할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과 한국은 의약품 공급망을 강화하고 상호 간의 R&D 계획을 가속화하기 위해 양국 정부와 산업계가 참여하는 ‘바이오 트랙 1.5 채널’을 개설하기도 했다.
(올해 6월에 열린 바이오USA에서는 한국 국가안보실과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일본, 인도, 유럽연합(EU)이 제약 공급망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기 위해 ‘바이오제약 연합’을 출범한 바 있다.)

Q. 중국 기업과의 거래가 제한될 경우 중국 이외의 세계 의약품 공급에 미치는 영향이어느 정도인가?

케인: 파마와 글로벌 제약기업들은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위해 의약품 공급망의 안전성과 지속성을 보호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세계 각국의 환자들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견고한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해 왔다. 폭넓은 글로벌 공급망은 세계 각국의 환자들에게 지속적이고 탄력적으로 의약품을 공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의약품에 제한을 둔다면 중국 내 환자들은 심각 한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반면 중국에서 나가는 의약품에 대한 규제의 영향은 예측하기가 훨씬 어렵다. 혁신 브랜드 의약품(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 의약품 간의 시장 역학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오리지널 의약품제조사는 잠재적인 공급 중단을 대비해 견고하고 지속성 있는 공급계획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비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제네릭 의약품 제조사는 안정적 공급망을 위한 노력으로 두 개 이상의 생산기지를 갖추는 경우는 많지 않다.

위기 상황에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안정적 공급망을 유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전략은 지리적 다양성이다. 공급망의 지리적 다양성은 특히 전염병이나 기타 비상 상황 발생 시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유연성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Q. 최근 세계적으로 비만치료제 개발 경쟁이 뜨겁다. 그렇다보니 암이나 희귀질환 등 중증질환에 대한 개발 동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케인: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제약바이오 업계가 환자의 미충족 수요가 존재하는 영역을 발굴하고, 연구개발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파마에서 의뢰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 개발 중인 의약품은 8000개 이상이다.

최근 비만치료제나 대사 관련 치료제가 많이 개발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전체로 보면 중증 질환 치료제 역시 균형있게 개발되고 있다. 여러 신약들이 암, 신경계, 심혈관계 등의 영역에서 개발 중이다.

Q.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이 결국 환자에게잘 처방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최근 많은 제약사들이 한국 출시를 꺼린다는 업계의 의견이 있다. 실제 분위기는 어떤가?

케인: 한국은 신약을 빠르게 출시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출시된 신약의 25%만이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되고 있다. 이는 일본과 독일의 절반 수준이다. 2018년에는 글로벌 신약의 19%가 건보에 의해 보장됐지만, 5년 뒤인 2023년에는 10%로 되려 줄었다.

이마저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승인 후 건보에서 신약을 보장받기까지평균 22.5개월, 거의 2년이 걸린다. 일본의 경우 이 기간이 2.5개월, 독일은 6개월 정도가 걸린다.

이런 이유로 여러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에서 초기에 출시하는것에 주저하는 분위기다. 한국 환자들은 신약 접근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환자들은 글로벌 최초 출시된 신약이 보험을 적용 받고, 치료받기까지는 평균 4년(45.2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의 새로운 혁신 의약품 개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혁신 의약품을 개발하는 기업들은 신약의 보험 적용 속도가 느리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연구개발 투자 유치와 자본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이 강력한 과학적 기반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는 신속하고 폭넓은 신약 접근성을 갖춘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은 비교 국가들에서 더 많이 이뤄지고 있다.

Q.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메디케어가 보장하는 일부 의약품의 약값을 낮추고 있다. 제약산업에서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 약값이 낮아지는 것은 타격이 더 클 것 같은데.

메디케어는 65세 이상 혹은 자격 요건에 맞는 사람들에게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건강보험 제도다.

케인: 맞다. 많은 제약사들이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다. 미국 정부는 2026년부터 특정 의약품에 대한 공공건강보험(메디케어)가격을 설정할 예정이다. 그 대상이 될 의약품으로는 제네릭(케미컬의약품 복제약) 또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가 출시되지 않은 오리지널 의약품이며, 동시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최초 승인된 지 최소 9~13년(저분자의약품의 경우 9년, 생물학적제제는 13년) 이상인 의약품이다.

메디케어는 미국 의약품 시장의 약 30%를 차지한다. 메디케어 가격이 설정될 의약품의 수는 매년 증가할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제약사들은 미국 정부의 가격 설정 정책이 의약품의 가치를 크게 저평가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연구개발과 혁신을 저해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전체 글로벌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R&D와 임상 시험 등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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