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 테리 사건으로 본 ‘동맹국 첩보전’의 역사[김상운의 빽투더퓨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22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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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英 대미 첩보전의 역사

최근 수미 테리 사건으로 외교가와 국내 정치권이 연일 시끄럽습니다. 이 사건은 ‘동맹국에 대한 첩보 활동’과 ‘정보기관의 정치화’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습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둘러싼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면 이 사건을 새롭게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먼저 제1차 세계대전 당시로 시계를 돌려보겠습니다.

‘침머만 전보 사건’과 영국의 대미 첩보전
수미 테리 전 CIA 분석관이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자신이 제작한 북한 인권 다큐멘터리 ‘비욘드 유토피아’ 상영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일 수 있는 물건이 하나 잡혔습니다.”
1917년 1월 17일 영국 해군정보부 40호실의 신호정보(SIGINT) 분석관 나이절 드 그레이가 상관인 레지널드 홀에게 의미심장한 보고를 합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오가던 신호정보를 감시하던 그에게 독일 외무장관 아르투르 침머만이 워싱턴 주재 독일 대사관에 보낸 전문이 포착된 것. 최종 수신처는 멕시코 주재 독일 공사관이었습니다. 암호해독 후 파악된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1917년 1월 19일
우리는 무제한의 잠수함 전쟁을 2월 1일 개시하려고 합니다. 이 전쟁을 벌이더라도 우리는 미국의 중립국 유지를 위해 노력할 겁니다. 이 노력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멕시코에 동맹을 제안합니다.
전쟁을 함께 벌이자. 평화를 함께 이루자.
우리 측에선 멕시코가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의 실지를 탈환하도록 관대한 재정지원을 약속합니다. 귀하는 미국과의 전쟁 발발이 확실해지자마자 가장 은밀하게 위의 사항을 멕시코 대통령에게 알리고, 그가 자발적으로 일본에 즉각적인 동조를 요청하는 동시에 우리와 일본 사이를 중재하는 방안을 그에게 제시하기 바랍니다.

한 마디로 이 전문은 유럽에 이어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할 경우 미국과 영토를 맞대고 있는 멕시코와 전시 동맹을 맺으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 과거 멕시코의 영토를 회복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 겁니다.

영국에 의해 침머만 전문을 전달받은 미국은 큰 충격에 빠집니다. 당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중립을 지키며 독일과 영국 사이에서 평화조약을 모색하고 있었죠. 하지만 그 사이 독일은 미국의 뒷통수를 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겁니다.

독일의 ‘침머만 전보’ 내용을 1면 헤드라인으로 넣은 1917년 3월 1일자 뉴욕타임즈.        위키피디아 제공
독일의 ‘침머만 전보’ 내용을 1면 헤드라인으로 넣은 1917년 3월 1일자 뉴욕타임즈. 위키피디아 제공
1917년 3월 1일 뉴욕타임스 등 주요 신문의 1면 헤드라인을 침머만 전문이 장식하자, 미국 내 참전 여론이 들끓게 됩니다. 결국 윌슨 대통령은 한 달 뒤인 4월 2일 미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요청하며 이런 연설을 남기게 됩니다.

“멕시코 주재 독일 공사에게 보낸 절취된 전문은 바로 우리 집 앞의 이웃을 적으로 만들려는 독일의 의도를 웅변하는 증거입니다.”

이로부터 나흘 뒤 미국은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합니다. 독일의 맞서 싸울 영국의 강력한 우군이 생긴 겁니다. 그날 밤 침머만 전문을 입수한 드 그레이와 책임자 레지널드 홀은 축배의 샴페인을 떠트렸다고 합니다.

‘동맹국 도청’ 출처 위장한 英 기만작전
그런데 이 침머만 전보 사건 안에는 영미 간에 심각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영국이 그동안 미국의 대서양 횡단케이블을 지속적으로 도청해 적국인 독일뿐 아니라 우방인 미국의 외교 통신도 가로챘다는 사실이죠. 지금 수미 테리 사건처럼 최대 우방국에 대한 첩보 행위가 들통이 난 셈입니다. 침머만 전문을 처음 보고받은 해군정보부 40호실 책임자 레지널드 홀도 이를 매우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취한 전문을 활용하기에 앞서 그 출처를 위장하는 작전을 벌이게 됩니다. 멕시코시티 주재 영국 총영사였던 에드워드 더스턴에게 요청해 현지 전신국으로부터 침머만 외교 전문 사본을 입수토록 한 겁니다. 즉, 워싱턴 주재 독일 대사관이 멕시코시티 공사관에게 보낸 전문을 입수한 것처럼 꾸며서 미국 정부에 알려준 거죠. 이미 워싱턴에서 전문을 절취한 사실을 가리기 위한 공작이었습니다.

독일 외무장관 아르투르 침머만(오른쪽 아래 인물)이 워싱턴을 거쳐 멕시코 공사관에 보낸 비밀 외교 전문. 위키피디아 제공
이와 함께 런던 주재 미국 특파원을 속이는 기만 작전도 벌입니다. 미국 비밀요원들이 전문을 입수한 것처럼 기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슬쩍 흘린 거죠. ‘국뽕’에 취한 미국 기자들이 이를 대서특필 할 거라는 점을 노린 겁니다. 레지널드 홀은 뉴욕 주재 해군무관 가이 곤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미국 기자들은 자국 비밀기관이 침머만 전문을 확보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국 내 도청 라인은 계속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동맹 첩보활동은 유럽 ‘세력균형 외교’의 산물
1차대전 당시 영국의 대미 첩보활동은 사실 새로운 건 아니었습니다. 국가간 힘의 배분에 따라 적과 동지를 수시로 바꾼 유럽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외교에선 늘상 있는 일이었죠. 17세기 베스트팔렌 체제 수립으로 유럽 각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외교 공관은 첩보활동의 온상이 됐습니다.

예컨대 러시아의 ‘검은 방’이나 프랑스의 ‘흑실(cabinet noir)’은 전신이 도입되기 전부터 자국 수도에 주재하는 각국 외교공관 내 협조자를 포섭하고, 이곳을 오가는 각종 편지와 보고서를 가로채 첩보를 수집했습니다. 여기에는 동맹국이나 우방국도 예외가 아니었죠.

나폴레옹에 공동으로 맞서 전쟁을 벌인 영국과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이 1814~1815년 빈에서 연 국제회의에서도 이런 현상은 두드러졌습니다. 나폴레옹 시대 이후의 유럽 지도를 그리기 위해 개최된 빈 회의는 각국 군주와 외교관 등이 모여 당시로선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로 열렸습니다. 이때 각국은 상대국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다수의 스파이들을 대동합니다.

빈 회의 당시 모여있는 각국 대표단을 그린 장 밥티스트 이사베이의 그림. 이곳에선 동맹국을 가리지 않고 치열한 스파이 활동이 벌어졌다. 위키피디아 제공

예를 들어 각국 대표단의 수발을 드는 하인으로 위장한 스파이들이 대화를 엿듣고, 편지와 외교 문서를 몰래 복사하는 한편 휴지통이나 벽난로에서 타다 남은 문서까지 샅샅이 뒤졌습니다. 오스트리아 황제 궁전(호프부르크)에 머문 외빈들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죠. 이처럼 유럽의 장기 평화를 상징하는 유럽 협조체제(concert of europe)에서조차 우방간 스파이 활동이 치열하게 이뤄진 겁니다.

반복되는 국정원의 ‘정보 실패’
이번 수미 테리 사건에서는 국정원 요원들이 고급 가방을 사주고 비싼 식당에서 접대하는 장면이 FBI 카메라에 포착돼 국정원의 해외공작이 허술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최근 대통령실 관계자가 “문재인 정권때 일어난 일”이라며 감찰을 시사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 차원에서 전문적으로 외교활동을 할 수 있는 요원들을 다 쳐내고 아마추어 같은 사람들로 채워넣어 문제가 발생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국정원의 정보 실패가 수미 테리 사건의 본질이라고 밝힌 셈입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직후 국정원이 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도 정권 교체와 맞물린 대표적인 정보 실패 사례입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 원세훈 원장이 이끌던 국정원은 김정일이 사망하고 이틀이 넘도록 이를 알지 못하다 북측의 보도 이후에야 파악했죠. 이를 두고 이명박 정부 직후 국정원 개편 과정에서 대북전략국을 해체하면서 대북 정보망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는 역대 정부에서 계속 반복돼 온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전두환 정권에선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을 겸임하면서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해 약 300명의 요원들을 내보냈습니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안기부 명칭을 국정원으로 바꾸고 전체 직원의 약 11%를 구조조정했고, 김영삼 정부에선 안기부 직원 약 300명을 대기 발령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선 국정원에 ‘적폐청산 TF’를 설치하고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등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나섰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6월 국정원 내 1급 보직국장 27명 전원을 대기 발령했죠.

지난해 2월 국정원 청사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뒷벽에 붙은 별 표시는 임무 수행 중 순직한 정보요원들을 기리는 ‘이름 없는 별’이다. 동아일보DB
전문가들은 정권 교체기마다 국정원의 인적 청산이 대규모로 이뤄져 전문성이 떨어지는 폐해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 분야를 오랫동안 담당하며 쌓아놓은 정보망(인적 네트워크)이 대규모 조직개편 과정에서 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수미 테리 사건도 이런 현상과 무관치 않습니다.

역대 정부들에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건 국정원을 정권의 친위기관으로 여겨 ‘내 사람’을 심어야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정보기관의 정치화’입니다. 정책 결정자가 정보기관을 길들이려는 행태는 정보 실패로 이어집니다. 정보기관이 인사, 예산권을 틀어쥔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정보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정세를 왜곡하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잠시 요약하면,
①동맹국에 대한 첩보활동은 유럽 세력균형 외교에서 비롯된 것으로
②1차대전 당시 미국의 참전을 유도한 ‘침머만 전문 사건’도 영국의 대미 첩보활동의 결과였습니다.
③하지만 당시 영국은 이번 수미 테리 사건과 달리 출처를 위장하는 작전을 벌여 동맹국과의 관계 악화를 사전에 차단했습니다.
④국정원의 정보 실패는 역대 정권에서 반복되는 ‘정보기관의 정치화’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국정원의 대미 첩보활동이 이상하다고 볼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동맹국과의 갈등 소지를 없애기 위한 조치가 미흡했으며, 이는 국정원의 정보 실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국정원의 정보 실패를 근절하려면 정보기관을 최고 권력자의 친위기관으로 여기는 행태를 차단하는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미중 갈등으로 야기된 신(新) 냉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북핵 고도화, 북러 밀착 등 안보 위협이 커진 상황에서 국정원의 정보 실패를 막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지 않을까요.

[참고 문헌]
-크리스토퍼 앤드루·박동철 역, 〈스파이 세계사〉 1, 2, 3 (한울·2021년)

“모든 해답은 역사 속에 있다.” 초 단위로 넘치는 온라인 뉴스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연이은 뉴스들 사이에서 하나의 맥락이 보일 수 있습니다. 문화재, 학술 담당으로 역사 분야를 여러 해 취재한 기자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뉴스를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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