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민주당 대선 후보직 사퇴 결정은 영화 ‘007 작전’처럼 빠르고 소리 없이 이뤄졌다. 그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사퇴 당일인 21일(현지 시간) 오전 전화로 통보했다. 특히 백악관 및 바이든 대선 캠프의 주요 관계자에겐 발표 1분 전 화상 회의를 열고 사퇴를 알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전히 대선 완주 의지가 강했지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 당내 주요 인사의 사퇴 요구가 계속되자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완주하면 11월 5일 대선과 같은 날 치러지는 상하원 중간선거에서도 민주당이 패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대통령을 거듭 압박해 왔다. CNN은 “바이든이 정치인으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렸다”고 평했다.
다만 이날 하루에만 민주당에는 약 5000만 달러(700억 원)의 기부금이 몰렸다. 2020년 대선 이후 민주당의 하루 온라인 기부액 중 가장 많은 규모다.
●극비리 사퇴 준비, 숨 가쁜 48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사퇴를 고려한 것은 19일 오후다. 이후 21일 오후 사퇴를 발표하기까지 숨 가쁜 48시간이 이어졌다.
젠 오맬리 딜런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은 19일 오전 MSNBC에 나와 “대통령은 확실히(absolutely)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민주당 대선 캠프에는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며 “기부를 중단하겠다”는 항의가 쏟아졌다.
악화된 여론을 체감한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오후 델라웨어주 러호버스비치 별장 인근 사저에서 사퇴 결심을 굳혔다. 그는 부통령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최측근 스티브 리셰티 백악관 선임고문에게 전화를 걸어 “마이크 도닐런 백악관 선임고문과 함께 사저로 오라”고 했다.
두 고문은 같은 날 오후 4시경 사저에 도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두 사람과 밤늦게까지 극비리에 사퇴 서한을 작성했다.
그는 성명 작성을 마친 후 질 여사, 아들 헌터 등 가족에게 사퇴 사실을 알렸다. NYT는 “사저 바깥의 관계자 대부분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며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오후 1시 45분경 백악관 및 대선 캠프 참모와 단체 통화를 나누며 사퇴를 공개했다. 1분 뒤 제프 자이언츠 백악관 비서실장을 시켜 ‘X’에 사퇴 성명을 게재했다. 충격에 빠진 일부 백악관 직원은 “가짜뉴스 아니냐”며 눈물을 흘렸고 일부는 안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질 여사는 ‘X’에 남편의 사퇴 성명을 리트윗한 후 분홍색 하트가 2개 달린 이모티콘을 덧붙여 남편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간 남편의 완주를 강하게 원했던 질 여사에게는 ‘자진 사퇴’처럼 보이는 형식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정치매체 폴리티코가 진단했다.
● TV토론 참패 후 예견된 사퇴
여러 정황을 감안하면 그의 사퇴는 시간문제였다는 분석도 많다. 지난달 27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와의 TV토론에서 참패한 후 토론 때 제기됐던 인지기능 저하 및 건강 이상설 우려를 전혀 잠재우지 못했다.
그는 앞서 1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해리스 부통령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고 잘못 칭했다. ‘한국’과 ‘북한’도 혼동했다.
이틀 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대선 유세 중 벌어진 총격 암살 시도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두 손을 불끈 쥐어 보인 트럼프 후보의 모습과 멍한 표정으로 자주 말실수를 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이 극적으로 대조된다는 평가가 나왔다.
17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세 번째로 감염되어 ‘건강 우려’가 재차 불거졌다. 결국 지난해 4월 대선 도전을 공식 선언한 지 약 1년 3개월 만, TV토론에서 참패한 지 24일 만에 재선 도전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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