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가 28일 치러진 대선 결과를 둘러싸고 큰 혼란에 휩싸였다. 선거 전 여론조사나 선거 당일 출구조사에서는 2013년부터 집권 중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패배가 확실시됐지만 친(親)여당 성향인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마두로 대통령의 승리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승리를 장담했던 야권은 부정 선거를 외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야권 대선 후보인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와 그를 지지하는 마리아 마차도 전 국회의장은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가 70% 이상 득표했다. 부정 선거”라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 등도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가세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베네수엘라 대선이 부정으로 얼룩졌다”고 비판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22일 선거 유세 때 “내가 대선에서 지면 나라가 피바다가 될 수 있다”며 일찌감치 대선 불복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마두로 정권이 이번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반정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할 가능성마저 제기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언론 인포베는 수도 카라카스에 무장 경찰과 군인들이 배치되고 있다고 전했다.
● 5년 전 이어 또 부정선거 의혹
AP통신 등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29일 “약 80%가 개표된 상황에서 마두로 대통령이 51.2%, 곤살레스 우루티아후보가 44.2%를 득표했다”고 밝혔다. 이 결과가 확정되면 마두로 대통령은 2013년 대선, 2018년 대선에 이어 3선에 성공한다.
이는 서구 주요 언론의 출구조사와 완전히 상반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출구조사 결과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가 65%를 얻어 마두로 대통령(31%)을 30%포인트 이상 앞섰다고 보도했다.
선관위는 실시간 개표 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일부 야권 지지자가 개표 과정 검증을 위해 개표 장소에 입장하려 하자 당국자들이 이를 저지하며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되자 28일 밤부터 카라카스 등 전국 곳곳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정확한 개표 결과를 공개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마두로 정권은 대선 직전 중남미 주요국 인사로 이뤄진 해외 선거감시단의 입국도 거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부 시민들은 항의 표시로 거리에서 냄비를 두드렸다.
마두로 대통령은 2018년 재선에 성공할 때도 부정 선거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에도 부정 선거 우려가 제기됐고 많은 국민들이 투표에 불참해 투표율이 50%를 밑돌았다. 미국, 유럽연합(EU) 등도 당시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 ‘차베스 후계자’ 마두로
마두로 대통령은 버스 운전사 출신으로 대통령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1962년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대 버스 운전사로 근무하며 운수노조에서 활동했다. 1992년 쿠데타 기도로 감옥에 갇혀 있던 남미 좌파의 대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을 도우며 인연을 맺었다. 1999년 차베스 전 대통령이 집권하자 마두로 대통령 또한 국회의장, 외교장관, 부통령 등 출세 가도를 달리며 ‘차베스의 황태자’로 불렸다. 2013년 3월 차베스 전 대통령이 암으로 숨졌고 같은 해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집권 내내 종종 군을 동원해 반정부 시위를 탄압하고 경제난을 가중시켜 큰 비판을 받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2년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은 마두로 대통령이 처음 집권한 2013년에 비해 약 80% 감소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적인 원유 보유국이지만 좌파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로 나라 곳간이 거덜난 상태다. 차베스 정권 때부터 석유 기업들을 무리하게 국유화했고, 원유 수출로 번 돈을 무상 의료, 무상 교육, 저가 주택 공급 등에 쏟아부었다. 또 식품, 의약품, 화장지 등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했다.
과도한 복지 예산으로 2018년엔 6만 %가 넘는 초(超)인플레이션을 겪기도 했다. 유엔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빈곤율은 82%에 달하고, 지난해 말까지 인구 30%에 달하는 770만 명이 경제난을 견디다 못해 해외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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