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젊은 세대의 이기심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인 경제·사회적 상황이 빚어낸 결과라는 외신의 진단이 나왔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는 ‘많은 미국인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가운데 출산율 감소 원인을 들여다봤다.
NYT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62명이다.
이는 한국(0.72명)에 비하면 높은 수치이지만 미국에서는 사상 최저 출산율이다. 전문가들은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 마지노선인 2.1명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미국 출산율 감소세는 경제 상황이 개선된 뒤에도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미국 저출산이 “젊은 세대의 ‘도덕적 몰락’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젊은이들이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개인적 욕구를 앞세워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 J D 밴스(39)는 2021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향해 “자식 없어 비참한 ‘캣 레이디들’이 국가도 비참하게 만들려 한다”고 발언해 논란을 불렀다. ‘캣 레이디’는 아이를 낳지 않고 고양이를 키우는 중년 독신 여성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해당 발언이 논란이 일자 밴스는 “우리 사회 전체가 자녀 출산 계획을 회의적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혐오하게 됐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의도였다”고 해명했다.
미국의 청년 보수 논객 애슐리 세인트 클리어(31)는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결혼하지 않는 청년들을 향해 “그들은 밤새 술을 마시고 비욘세 콘서트에 가는 쾌락만을 추구한다”며 “가족을 이루는 성취 대신 자기만족에 취해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NYT는 전문가들의 연구와 견해를 인용해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젊은 세대의 이기심이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하버드대 저출산 연구자 매리 브린튼은 “미국인 청년들은 가족을 향한 헌신이 부족하지 않다”며 “저출산은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책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저출산의 원인을 개인과 세대의 특성으로 좁게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양육 비용과 대출 금리 인상 등 경제적 요인들이 출산을 미루거나 단념하게 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인구학자인 카렌 벤저민 사회학 박사는 “아이를 갖기 전 집을 사고 학자금 대출을 갚는 등 경제적 이정표에 먼저 도달하고 싶어하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의 특징”이라며 “그 후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미래가 아니라면 차라리 출산을 포기하는 선택지가 낫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사회학자들이 수행한 연구에서는 “미래세대의 앞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사회학 박사는 “기후 위기, 총기사고, 전 세계적 감염병 등 여러 요인이 미국 젊은이들로 하여금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며 “경제 및 복지 시스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현상이 여러 선진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고 전했다.
오하이오주립대 사라 헤이포드 인구연구소장은 “이제 미국에서 출산은 ‘선택’이 됐다”며 “자녀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없다면 부모가 되기를 꺼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베이비붐 시기(1946~1964년) 평균 20세였던 미국 여성의 첫 출산 연령은 2022년 27세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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